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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구석구석 로마 구경: 띠베리나 섬의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

183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7-12

[구석구석 로마 구경] 띠베리나 섬의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밖에서 뛰어 노는 것보다 유독 TV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내게 어머니께서 즐겨하시던 말씀이 하나 있었다. “고마, TV 속에 들어가겠구만!” 이런 내가 꼭 챙겨보는 만화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옛날 옛적에’란 프로였다. ‘배추도사’와 ‘무도사’가 나와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만화였는데, 두 도사님의 동화 이야기에 흠뻑 빠져서 정말 TV 속으로 들어갈 뻔 한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오늘은 내가 배추도사, 무도사처럼 로마의 ‘치뽈라(양파)도사’가 되어서 신비한 전설을 하나 이야기할까 한다. 그럼 이 도사를 따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옛날 옛적 로마에 큰 전염병이 돈 적이 있었다. 어떠한 방법을 써도 병이 번지는 것을 막지 못한 로마인들은 병을 치유하려고 치유의 신(神)인 에스꿀라삐오(Esculapio)의 도시인 에삐다우로(Epidauro)를 향해 배를 띄었다. 배를 타고 도착한 로마인들이 치유 기원 예식을 거행하는 동안 에스꿀라삐오 신전에서 거대한 뱀이 나와서 그들이 타온 온 배에 숨었다. 사람들은 그 뱀이 에스꿀라삐오 신의 환신이라 여겨 서둘러 로마로 돌아갔다. 그렇게 배가 떼베레(Tevere)강의 작은 섬인 띠베리나(Tiberina)에 도달했을 무렵, 배에 숨어 있던 뱀이 강으로 뛰어들어 섬까지 헤엄쳐 가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에 사람들은 뱀이 사라진 곳에 에스꿀라삐오 신전을 세워 치유를 기원하였다. 그리하여 전염병이 사라지고 그 신전은 아픈 이들이 치유를 위해 찾는 신전이 되었다.

 

이 신전은 실제로 병을 고치려는 고대 로마인들이 즐겨 찾는 장소였다.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기도를 바치고 신전 안에 있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병을 고쳤다고 한다. 아픈 몸을 치유하던 신전 자리에 지금은 영혼을 위로하는 하느님이 집이 들어서 있는데, 오늘 우리가 방문할 ‘섬에 있는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Basillica di San Bartolomeo all’Isola)이 그곳이다.

 

띠베리나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륙과 맞닿아 있는 두 다리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아주 오래된 파브리치오 다리(Ponte Fabricio)이다. 예전에 이 섬에는 유다인들의 주거지가 있었는데, 이와 관련하여 이 섬은 그리스도교 전파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처음 로마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사도들이 설교를 위해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 바로 이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바오로 사도도 이 다리를 지나 섬에 가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을 하며 성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다가 광장에 들어섰다. 이 광장의 중앙에는 네 명의 성인들 – 성 바르톨로메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놀라의 성 파울리노, 하느님의 성 요한 – 이 기둥의 각 면에 조각되어 있는 비오 9세의 기둥이 서 있다. 성인들이 조각된 이 기둥은 예전에 ‘불명예의 기둥’(colonna infame)이라고도 불렸는데 그것은 이 기둥에 ‘부활절 미사에 참석하지 않은 이들은 도적과 같다’는 글과 함께 그 명단이 떡하니 붙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광장을 지나 마주한 성당의 전면(facciata)은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을 보여준다. 아치형의 구조와 벽감, 외부로 돌출된 기둥 그리고 창들은 전면에 역동성을 부여하여 이 건물을 특징을 그 모습으로 말해준다. 사실 이 성당이 처음 세워진 것은 997년, 오토 3세 황제가 프라하의 성 아달베르토를 기리는 성당을 파괴되어 방치되어 있던 에스굴라삐오 신전 자리에 세웠다. 그러다가 1180년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의 유해가 봉헌되면서 그 이름이 지금과 같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모습은 강의 범람에 의한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며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다.

 

우선 성당을 들어서면 다른 성당들과 달리 특이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성당의 중심 제대를 오르기 위한 계단의 하단부에 작은 우물이 떡하니 놓여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이곳은 원래 신전으로 사용되던 장소였다. 이 우물에서 나오는 기적수를 병을 고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성당 안에 자리한 우물이 옛 이교 신전의 전통을 말해주고 있다. 성당이 강 곁에 위치해 있어서 인지 몰라도 중심 제대는 한층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 중심 제대는 반암으로 만들어진 욕조 모양인데 그 안에 성 바르톨로메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제대를 중심으로 하여 건물의 좌우측 익랑에는 작은 경당이 두 곳 봉헌되어 있다. 그 중 오른편에 감실이 모셔져 있는 오르시니 경당(Cappelia degli Orsini)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경당으로 향하는 계단의 양 편에는 대리석으로 장식된 포효하는 작은 사자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사자상은 13세기 작품으로 마치 주님의 거룩한 성체를 수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경당의 양쪽 벽에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가 프레스코화로 표현되어 있다. 성모님의 생애를 한 눈으로 담다가 문득 이상한 장식에 눈길을 멈추게 된다. 그것은 벽의 왼편에 박혀 있는 포탄 때문이다. 성체가 모셔져 있고, 성모님의 생애가 그려진 경당에 웬 포탄일까? 그 이유를 알면 더 놀라는데 이 포탄은 1849년 프랑스군이 이 성당을 파괴하기 위해 발사한 것이었다. 당시 성당에는 신자들로 가득했는데, 이 포탄은 성당 벽을 부수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포탄이 강타한 자리에 포탄을 장식처럼 박고 주님의 보호하심에 감사드리며 그것을 기념한다.

 

주님의 섭리에 감탄하며, 섬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이교 신전과 하느님의 집을 비교해 보았다. 같은 자리에 서 있던 이교 신전은 병원과 같은 곳이었다.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자연스레 신전에 와서 치유를 기원하였다. 그렇다면 영혼의 위로처인 하느님의 집은 영적 치유를 원하는 이들이 자연스레 찾아야 할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성 안셀모 수도원이 있는 아벤띠노 언덕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내 등뒤로 석양이 포근히 내려 앉는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9년 여름(Vol. 46), 글 · 사진제공 강찬규 포에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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