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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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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자료
2019-06-16.....삼위일체대축일 다해

2308 이철희 [gold] 스크랩 2019-06-15

 

삼위일체 대축일 (다해)

잠언 8,22-31        로마 5,1-5        요한 16,12-15

2019. 6. 16.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을 알아듣기

오늘은 우리가 만나는 하느님에 관해서 알아듣자고, 하느님의 특성을 구별해서 얘기하는 삼위일체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라는 표현은 신학의 용어입니다. 이 삼위일체는 사람이 구별하는 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다른 존재인 하느님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이신 하느님이시라고, 신앙으로 고백하는 낱말입니다.

 

물론 하느님을 하나로 셈하든, 셋으로 셈하든, 사람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지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며, 확인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삼위일체는 신앙의 선언이고, 하느님의 계시로 알려진 일인데, 하느님을 여럿이라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범한 잘못된 행동하면서 하느님께 책임을 넘기는 대상으로만 사용할 것입니다. 그런 처지에서 우리는 신앙의 진리를 바르게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특성을 사람이 알아듣기 위한 유비(類比)적인 표현으로, 사람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사랑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자체로 충만한 존재인 성부는 사랑으로 성자를 낳았고, 성부와 성자의 사랑에서 성령이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말에는 사랑을 설명하는 표현이 부족하여, 그 사랑의 의미를 하나로 설명하든, 셋으로 설명하든, 우리가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만, 서양의 신학에서는 이 사랑을 서로 다른 낱말을 사용하여 해석합니다.

 

사랑이나 사랑의 관계로 설명하며 알아듣는 하느님을 사람의 처지에서는 그 관계를 앞/[선후]관계나, /아래[상하]관계나 주인과 종[종속]의 관계라는 표현으로 설명해야만 알아듣기가 쉬운 단점이 있습니다. 사람의 세상이 그런 이론을 전제로 하기에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신학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는 선후나, 상하나, 종속의 관계로 설명할 대상이 아니라, 동일한/하나인 본성이고, 동일한/하나이신데, 사람이 능력이 모자라서 같은 분이나, 같은 대상으로 알아듣지 못하고 다른 대상으로 구별하는 대상일 뿐입니다.

 

신학의 내용을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고는 했습니다만, 사람이 알아듣는 삼위일체는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자기를 대단하고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하여 자기가 그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수준이라야만 진실이고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그러한 논리로 삽니다만, 하느님에 관한 신앙의 진리까지 그렇게 해석할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각일 뿐입니다.

 

하느님의 진리는 인간의 이해나 수용을 전제로 하여 만들어진 일도 아니고, 성립된 일도 아닙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셨을 때, 삼위일체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를 말하는 이론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400년쯤이 지난 아우구스티누스의 등장 이후에 신학으로 성립되었고, 지금은 하느님의 계시로써 우리가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내용이 되었습니다.

 

신앙의 내용은 사람의 동의를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진리에 관하여 사람이 드러낼 행동은 신앙에서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든지, 거부하든지 둘 중의 한 가지일 뿐입니다. 받아들이고 따르면 교회와 일치하여 하느님의 축복을 이야기할 것이고, 거부하면 인간을 하느님보다 더 뛰어난 존재로 만든 결과로 하느님과 등지게 되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존재가 되고 말 일입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지 사람의 판단에 따라 사람에게 남는 결과와 영향만 달라집니다. 사람이 행동하는 결과에 따라 하느님에게 끼칠 영향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 잠언서-독서는 활동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하느님의 성령에 관한 말씀입니다. 성령은 세상창조의 순간부터 하느님과 함께 있던 분이시라고 설명합니다. 둘째 독서인 로마서는 하느님의 활동하는 힘이신 성령을 받은 사람이 움직이는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복음은 하느님의 힘인 성령을 받은 사람이 드러낼 삶의 자세는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양한 표현으로 하느님의 힘이신 성령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실제로 그 하느님을 대하면서, 세상에서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는 내가 결정하는 일입니다. 물론 성령의 힘을 받아야 가능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힘과 그 의도를 따라서 우리가 살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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