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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8일 (목)부활 제3주간 목요일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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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고통을 기쁨으로(시시포스 콤플렉스)

63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6-12

[레지오와 마음읽기] 고통을 기쁨으로(시시포스 콤플렉스)

 

 

터크 가족은 여행 중에 트리갭이라는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샘물로 타는 목을 축인다. 이후 그 가족은 샘물을 마셨을 때의 몸이 그대로 유지되어,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았고 심지어 총을 맞아도 죽지 않게 되었다. 말 그대로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변함없는 그들의 모습을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겨 피했고, 결국 그들은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우연히 이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어 샘물을 마실 기회를 얻게 된 소녀 위니에게 터크 아저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끝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야. -중략- 죽는 것 없이는 사는 것도 없어.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것, 이것은 그러니까 사는 것도 아닌 거야. 우리 가족은 그저 있는 거야. 길에 놓인 돌멩이처럼 그저 존재할 뿐이야. 나는 다시 움직이고 변화하고 싶어”

동화 ‘트리갭의 샘물’(나탈리 배비트 글) 이야기 중의 한 장면으로 끝없는 반복의 힘듦을 잘 드러내고 있다.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변화 없이 반복되는 삶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시시포스이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코린트의 왕으로 꾀가 많아 사람뿐만 아니라 신까지 속이고 기만한 죄로 영원한 벌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산 위로 거대한 바위를 밀어 올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잔혹한 벌이 되는 것은 어렵게 밀어 올린 바위가 정상에 다다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시시포스는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한다는데 있다.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바위를 밀고 힘들게 산을 오르는 시시포스.

 

그의 이런 상황에 빗대어 1960년대 정신신체의학의 선구자였던 스튜어트 울프는 ‘시시포스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군분투하지만 만족과 기쁨 없이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런 성향의 사람을 ‘시시피안’이라 하는데, 이들은 큰 의미나 목적이 없이 짧은 목표의 일들을 열심히 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가족이나 건강 등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일하는 데만 급급하여 정작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목표 외에 자신만의 의미를 설정하지 못한 때문으로, 그 결과 그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반해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물론 새롭게 주어진 과제를 피하지 않고 도전해서 결국 성공으로 이끌기는 하지만.

 

 

‘시시포스 콤플렉스’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만족과 기쁨 없이 살아가는 것

 

Y자매는 언니의 권유로 협조단원을 하면서 묵주기도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행동단원이 되었다. 그녀는 첫 주회 때 단원들이 보고하는 묵주기도의 양을 듣고 놀랐고 매일 5단씩만 하는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 비결을 물어서 대부분의 단원들이 언제 어디서나 묵주기도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도 따라하기 시작했다. 집을 나설 때 기도를 시작하여 버스 안에서도 길을 가면서도 기도를 하니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는 것 같아 좋았고, 실제로 기도의 양도 많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기도가 부담이 되었고 생활 속의 기쁨도 사라졌다고 한다. 이에 자신을 돌아보던 중 묵주기도는 자투리 시간에만 하려고 했고, 어쩌다 가끔 앉아서 기도를 하게 되어도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많이 하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이후 그녀는 기도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그녀는 말한다.

 

“묵주기도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으로만 성모송을 하고 머릿속으로는 잡다한 생각을 하는 것은 멈추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으면 묵주기도의 참 맛을 알 수 없어요. 제 경험으로 보아 묵주기도야말로 성모님과 함께 주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기도이기에, 그 향기를 느끼기 위해서는 조금 더 천천히 집중하며 바쳐야 기쁨을 느낄 수 있더라고요.”

 

소설가 폴 부르제는 “의미를 찾으면서 자신의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생활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일은 그만큼 중요하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란 뜻을 지닌 일상(日常)은, 반복된다는 특성으로 말미암아 시간이 빠르다는 느낌만 크게  다가오고, 주어진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알기 어렵다.

 

오히려 우리는 일상에서 지루함과 권태를 느끼기 쉽고 특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의미를 찾기도 힘들다. 게다가 과정보다는 결과, 사랑보다는 업적을 중시하는 요즘 사회 분위기에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봉사자체도 일처럼 느껴져 힘들어진다. 사실 레지오 단원들에게 매주 두 시간 활동, 그리고 주회와 매일 묵주기도는 적은 부담은 아니다. 특히 하루 종일 직장생활을 한 후 피곤한 몸으로 주회 참석을 하는 것이나 주일에 쉬지 못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 이런 것들이 굳은 믿음의 표현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좋은 행위들도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봉사 자체에 매몰되어 결과에만 급급하여 의도하지 않게 부정적 결과를 낳게도 한다.

 

행동단원이나 협조단원의 입단뿐만 아니라, 심지어 성당에 관심이 있는 외인을 자기 Pr.에서만 돌보고자 하여 단원들끼리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 등은 좋은 예이다. 우리 모두 한 군대의 군사로 함께 힘을 합하여 한 영혼이라도 구해야 하고, 나아가 그 열매가 생긴다면 함께 즐거워해야 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이런 현상은 레지오 전체의 균열을 가져온다.

 

 

성모님이 자신의 영혼 안에 항상 활동하신다는 의식을 갖도록 노력해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쉽게 피로를 느끼며 늘 지쳐 있는가? 봉사를 하지 않으면 벌 받을 것 같아 불안한가? 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는 듯 하고 신앙인의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는가? 열심히 봉사하지만 봉사가 기쁨보다는 의무로 다가오는가? 그렇다면 나는 어느 정도 시시포스 콤플렉스에 빠져있을 지도 모른다.

 

이때는 “자신의 봉헌을 새롭게 하고, 성모님이 자신의 영혼 안에 항상 활동하고 계신다는 의식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레지오 단원들의 영혼은 몽포르의 루도비코마리아 성인처럼 “몸이 공기를 마시듯 내 영혼은 성모님을 마신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살아 움직여야 한다.”(교본 48쪽)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한 점의 작은 불빛이 온 방을 밝히듯, 레지오 단원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임무가 일주일 내내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어 준다.”(교본 341쪽)는 아름다운 결과를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기쁨이며 봉사또한 기쁨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통이 가지는 이러한 의미를 알게 된다면 그 고통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지 않겠는가? 고통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께서 내 가까이 현존하심을 느끼는 것이다.”(교본 95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6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행복디자인심리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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