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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홈리스 위기를 만나면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일

175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7-08

[알아볼까요] ‘홈리스’ 위기를 만나면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일

 

 

성서에는 강도 만난 이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야기는 강도를 만난 사람보다는 그를 스쳐가는 성직자, 관료, 평범한 시민의 태도를 비교해서 보여주는데 집중합니다. 하지만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못지않게 어려움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 글을 통해 ‘강도 만난 사람’, 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 합니다.

 

 

집이 없다는 것

 

집이 없다는 것은 어떤 불편함을 가져올까요? 사실, 집이 주는 이로움은 몇 가지로 간추릴 수 없을 만큼 광활합니다. 혈연이든 비 혈연이든 집은 가족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터전이 됩니다. 다음 날 출근해 일할 수 있도록 재충전을 하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친구나 종교 단체의 구성원들과 친목 모임을 일궈가는 곳, 아픈 구성원이 있다면 돌보고 간병하는 치료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외부 침입과 공격으로부터 안전을 지키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집이 이렇게 많은 역할을 한다는 것은 곧, 집이 없을 때 이 모든 것들을 놓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나며 만나는 홈리스 분들이 ‘이상해’ 보였다면 아마도 이런 사정이 큰 이유일 것입니다.

 

 

홈리스가 되는 이유

 

홈리스 상태로 들어오게 되는 이유는 한 가지 특정사건에서 비롯되기보다 살면서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많은 연구들에서 말하듯 홈리스 상태의 진입은 경제적 여건의 악화, 가족해체가 주를 이룹니다. 특히 3D 업종·저임금의 일자리, 경제요인에 의한 불안정한 결혼생활, 가족해체, 경기불황에 따른 실직 또는 사업실패 등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이들 요인이 영향을 미쳐 주거 수준이 하향되거나 바로 노숙 상태로 진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제상황의 악화와 복지 축소와 같은 사회경제적 조건의 악화가 홈리스 상태를 유발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특히 한국은 IMF 경제위기 시기 이를 극명하게 확인했는데, IMF 구제금융 체결 직후인 1998년 4월 650명에 불과했던 서울지역 거리 홈리스의 수는 불과 4개월 만에 2400명으로 약 4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설문조사(2019, 서울시립노숙인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 따르면, ‘노숙을 하게 된 주요 요인’에 대한 질문에 ‘실직 및 사업실패’와 ‘부채 및 신용불량’이 49.4%로 제일 많았습니다. 그들이 하던 일 역시 ‘일용/건설직’이 33.1%, ‘서비스업(요식업)’이 18.7%로 다음으로 나타났습니다. 더불어 고용형태를 보면 ‘정규직(상용직)’이었던 이들의 비율은 21.7%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즉, 현재 거리 노숙으로 나온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저임금-불안정한 일자리를 생업으로 갖고 있던 이들이란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왜 ‘홈리스’라는 용어를 쓰는가?

 

2011년 ‘노숙인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노숙인 등’이라는 정책 용어가 생깁니다. 그럼 ‘노숙인 등’은 누구일까요? 법은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가.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나. 노숙인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다.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 이들의 수는 얼마나 될까요? 2016년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노숙인 등’의 상태에 있는 사람의 수는 1만7532명이라고 합니다. 얼핏 봐도 포함하는 범위에 비해 굉장히 적은 숫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관건은 어디까지를 ‘노숙인 등’으로 볼 것인가,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을 어디까지로 인정할 것인가입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24시간 패스트푸드점에서 천 원짜리 커피를 시켜놓고 밤을 보내는 이, 사우나에 목욕이 아닌 잠을 자러 가는 이, 시간 당 몇 백 원 정도하는 피시방에서 밤을 보내는 이… 이런 사람은 ‘노숙인 등’일까요? 2018년 서울 종로구의 국일 고시원에서 화재가 나 6명이나 되는 입주민들이 화마로 생명을 잃었습니다. 건물이 낡고 대피시설이 제대로 안 된데다 창문이 없는 소위 ‘먹방’ 구조였기에 탈출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곳에 사는 이들은 ‘노숙인 등’일까요? 정부는 전부 아니라고 합니다. 오로지 ‘쪽방’만을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 포함합니다.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2018년 국토교통부가 진행한 ‘주택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와 같은 거처에 사는 이들은 전국적으로 약 37만 가구에 달합니다. 과연 어떤 통계가 현실을 대변할까요? 복지부는 ‘노숙인 등’ 복지의 주무부서로 정책 대상의 수를 늘리는 걸 원치 않고, 그 숫자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일선 지방정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주거취약계층’, ‘주거빈곤층’, ‘홈리스’…가 아니라 ‘노숙인 등’이란 용어를 채택한 것입니다. ‘이슬을 맞고 자는 사람’이란 뜻의 ‘노숙인(露宿人)’이란 말은 어떤 형태이든 주거가 없는 상태만을 일컫기 때문에 다양한 비적정 주거(사우나, 피시방, 고시원 등) 거주자까지 정책대상을 확대하지 않아도 되게끔 브레이크를 걸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사회적 지원이 제공되도록 목소리 내야

 

서울역 북쪽 염천교를 건너면 서소문역사공원이 나옵니다. 이곳은 IMF 직후 거리로 나온 홈리스들이 텐트를 치고 삶을 의탁한 대표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런 역사를 기념하고자 한 것은 아님에도, 2019년 역사공원으로 재개장하며 공교롭게 “노숙자 예수”라는 조각상이 설치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여전히 조각상이 아닌 ‘인간’ 홈리스가 존재합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과거와 달리 공원이나 철도역사 등 공공장소에 머무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 정도일까요?

 

공공장소를 무단 점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행해지는 강제퇴거 조치는 점점 더 홈리스들의 설 자리를 좁히고 있습니다. 사적 공간을 단 한 뼘도 못 갖고 있는 홈리스들이 공공장소에서 쫓겨난다면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이런 방식이 아니라 홈리스에게 적절한 주거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바꾸게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아직도 한국사회의 ‘노숙인 복지’는 주거가 아닌, 입소 생활시설에 들어가게 하는 데 몰두하고 있습니다. 저비용·고효율을 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복지선진국들의 경험에 따르면, 이런 시설정책은 고비용·저효율임은 물론 반(反) 인권적이란 것이 드러났습니다.

 

우리사회 역시 입소생활 시설 중심의 정책이 홈리스 상태를 끝내지 못하고 시설과 열악한 주거를 반복하는 ‘회전문 현상’을 만드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시설에 20년 이상 입소해 있는 이들의 비율이 36.5%(2016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이릅니다. 이런 현실을 더 지속시켜서는 안 됩니다. 형제복지원이나 양지마을과 같은 인권유린 사건, 시설 비리와 같은 ‘사건’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은 ‘집’에서 살아야지 일관된 규율이 적용되는 ‘시설’에 살아서는 안 됩니다. 정책의 방향이 지원을 받는 이의 인권과 행복을 조금이라도 키우는 방식으로 전환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이게 강도 만난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직접 거두지는 못하지만 그런 지원이 사회적으로 제공되도록 목소리를 내는 일, 그런 역할을 하는 이들이 현대사회의 선한 사마리아인 아닐까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7월호, 이동현(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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