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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0년 7월 4일 (토)연중 제13주간 토요일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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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새 번역 교본 읽기: 레지오 신심의 개요(제5장), 성모님께 대한 레지오 단원의 의무(제6장)

69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5-03

[새 번역 교본 읽기] 레지오 신심의 개요(제5장) · 성모님께 대한 레지오 단원의 의무(제6장)

 

 

한국세나뚜스협의회는 ‘레지오 마리애 공인교본(2014년 영문판)’에 대해 광주대교구 소속 안세환 신부께 번역을 의뢰하였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번역 교본은 1993년 영문판을 번역한 것으로 1993년 이후로 수차례 부분 수정이 있었습니다. 교본 전체를 새로운 시각으로 번역한 교본의 내용을 본 코너를 통해 계속 게재할 예정입니다.

 

단원들께서는 새로 번역된 교본의 내용을 검토하시고 내용에 대해 건의가 있을 경우 상급 평의회나 월간지 편집실로 의견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보내주신 내용은 검토하도록 하겠으며, 타당한 의견이나 건의에 대해서는 추후 새로운 교본의 인쇄가 결정될 경우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제5장 레지오 신심의 개요


6. 성모님을 알리자

 

훼이버 신부(Fr. Faber)는 레지오 마리애에 많은 영감을 준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 드 몽포르의 저서 『복되신 동정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의 서문을 썼다. 이 서문에서 발췌된 아래와 같은 훼이버 신부의 말은 레지오 마리애가 어떤 가능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그의 생각을 보여주는 말로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거의 절망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제들에게 추천된다. 훼이버 신부는 마리아는 충분히 알려지시지도 사랑받으시지도 못하여 결국 영혼들에게 슬픈 결과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얕고 미약하고 초라하다. 신심 그 자체가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랑 받지 못하시고 이단자들이 회개하지 않으며 교회가 존경 받지 못하는 것이고, 성인이 되고자 하는 영혼들은 시들어 죽어 그 수가 줄어들고, 성사들을 올바로 받지 않거나 영혼들에게 열성적으로 복음 선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잘 알려지시지 않는 이유는 마리아를 무대 뒤로 숨겨버렸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혼들이 파멸되는 이유 역시 마리아를 그들로부터 멀리 떼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되신 마리아께 대한 신심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보잘것없고 무가치한 그림자였고, 그것이 바로 모든 궁핍과 좌절, 죄악과 태만과 쇠퇴의 이유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성인들이 계시한 바를 믿어야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복되신 어머니에 대한 전혀 다른 신심을, 더 크고 더 넓고 더 강한 신심을 가지도록 재촉하고 계신다…. 사람들이 스스로 이 신심을 시도하게만 하자. 그렇다면 이 신심이 가져다주는 은총과 자신들의 영혼에 일으킨 변화를 보고 놀라서, 이 신심이 인류 구원과 그리스도 왕국의 도래를 위한 방편으로 거의 믿기 어려운 효력을 가지고 있음을 이내 확신하게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강인한 동정녀에게 뱀의 머리에 상처를 내는 힘을 주셨고, 동정녀와 하나 되는 사람들에게는 죄악을 이겨내는 힘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확고한 희망으로 이를 믿어야 합니다.

 

천주의 성모님! 하느님께서는 저희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자 합니다. 이제 모든 것은 저희에게 달려 있고, 모든 것을 받아 간직하고 전달해 주시는 당신께 달려 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에게서 모든 것을 받으시는 당신과 얼마만큼 일치하는가에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그라트리 Gratry)

 

 

7. 성모님을 이 세상에 모셔오는 일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통해 그처럼 놀라운 일이 이루어진다면, 지니고 다녀야 할 도구이신 성모님을 이 세상에 모셔오는 일은 우리의 활동에서 가장 큰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 일은 성모님을 사랑하는 평신도 사도직 활동 단체를 통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평신도 단체여서 회원 수에 제한이 없고, 활동 단체여서 어디든지 뚫고 들어갈 수 있으며, 성모님을 온 힘을 다하여 사랑하기에 성모님에 대한 사랑에 다른 모든 이의 마음을 끌어들일 맹세를 하고 그 목적을 완수하기 위하여 모든 활동 수단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단체는 더할 수 없는 자부심으로 성모님의 이름을 지니면서 어린아이들처럼 끝없이 성모님께 매달리는 신뢰 위에 일종의 조직으로 세워져, 구성원 하나하나의 마음속에 성모님께 대한 신뢰심을 심어 조직을 견고하게 한다. 그 결과 조직 구성원들을 충성과 규율의 완전한 조화 속에서 활동하는 일꾼들로 소유하게 된다. 레지오 마리애는 자기 조직이 일종의 기계 장치와 같아서 세상을 얻기 위하여 관할권자가 작동하기만 하면 되고, 성모님께서 영혼들을 돌보는 어머니로서 당신의 사업을 성취하기 위해 즉 뱀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는 당신의 영원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기꺼이 대리 기관으로 사용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 레지오 마리애는 이를 추정이 아닌 뚜렷한 확신으로 믿고 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5) 이 얼마나 놀랍고 영광스러운 일인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높은 영광에로 들어 올리셨는가! 여인들은 예수님을 세상에 낳아 주신 마리아를 지극히 복되다고 칭송한다. 그러나 그 여인들이 성모님과 같은 모성에 참여하는 일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이에 관하여 복음은 새로운 유형의 세대, 새로운 친자 관계에 대하여 말한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St. John Chrysostom)

 

 

제6장 성모님께 대한 레지오 단원의 의무

 

1.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진지하게 묵상하고 열심히 실천함으로써 이 신심을 드높여야 할 엄숙한 의무가 있다. 이 의무는 본질적인 것이며, 단원이 지켜야 할 모든 의무 가운데 가장 앞서는 것이다.(제5장 [레지오 신심의 개요] 및 부록 5 [우리 마음의 여왕이신 마리아 신심회] 참조)

 

(중략) 그러나 이와 같은 세속 군대의 일치는 다만 정서적이고 기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영혼과 그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과의 관계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충실한 레지오 단원의 영혼 안에 성모님이 함께 계신다는 표현만으로는 실제로 그 단원과 성모님이 일치하는 모습을 제대로 나타낼 수가 없다. 교회는 이와 같은 일치의 본질을 ‘천상 은총의 어머니’ 또는 ‘모든 은총의 중재자’라는 호칭으로 집약하여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호칭들은 성모님이 우리 영혼의 생명을 장악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너무나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밀접한 어머니와 뱃속 아기 사이의 친밀함조차도 성모님과 우리 영혼의 일치를 충분히 묘사할 수는 없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내리시는 과정에서 성모님이 차지하는 위치를 확실하게 이해하려면 다른 자연 현상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피는 심장을 통하지 않고는 온몸을 돌 수 없다. 눈은 우리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우리와 세상을 연결시켜 준다. 또한 새는 아무리 날갯짓을 해도 공기가 떠받쳐 주지 않으면 스스로 날아오르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도 하느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따라 성모님 없이는 스스로를 하느님께 들어 올릴 수가 없고 하느님의 일을 할 수도 없다.

 

이처럼 우리가 성모님께 종속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이성이나 감정이 만들어 낸 산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이기에, 우리가 비록 의식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성모님에 대한 종속은 그대로 존속된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섭리를 깨닫고 성모님께 의식적으로 다가간다면 성모님과의 일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굳건해질 것이며, 또한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보나벤투라 성인(St. Bonaventure)은 성모님을 ‘주님의 거룩한 피를 분배하시는 분’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성모님과 굳건히 일치하게 되면 놀라운 성화(聖化)의 은총을 얻게 되며, 다른 영혼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사도직 활동은 황금처럼 값진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죄의 사슬에 묶여 있는 사람들을 풀려나게 할 몸값으로 부족하다. 그러나 성모님이 이 단순한 황금 덩어리를 하느님에게서 선물로 받으신 ‘주님의 거룩한 피’라는 보석으로 장식해 주신다면 모든 사람들을 풀려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모님께 열렬히 봉헌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이 봉헌을 “저의 모후, 저의 어머니시여, 저는 오직 당신의 것이오며, 제가 가진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옵나이다.”와 같은 구체적인 기도로 자주 갱신하면서, 성모님이 우리 영혼 안에 항상 활동하고 계신다는 의식이 체계적이고 살아 있는 습관이 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 드 몽포르 성인의 말처럼 우리의 ‘몸이 공기를 마시듯 내 영혼은 성모님을 마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레지오 단원은 미사, 영성체, 성체 조배, 묵주기도, 십자가의 길 또는 그 외의 다른 모든 신심 행위를 실천할 때, 이를테면 자기 자신과 성모님을 그 안에서 동일시하려고 애쓰고, 비할 데 없이 높은 믿음을 지닌 성모님을 통해 이루어진 구원 사업의 신비를 묵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성모님은 그 신비를 구세주와 더불어 생활하셨고, 그 안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수행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을 본받고, 성모님께 다정하게 감사드리며, 성모님과 더불어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단테(Dante)의 말대로 성모님을 꾸준히 공부하고 성모님께 크나큰 사랑을 드리며, 기도와 활동과 영성 생활 안으로 성모님의 생각을 끌어들여와 자신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은 망각한 채 성모님께 의존한다. 이처럼 레지오 단원의 영혼이 성모님의 모습과 생각으로 가득 채워짐으로써 두 영혼은 단 한 영혼이 된다. 성모님의 영혼에 깊이 잠긴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의 믿음과 성모님의 겸손과 성모님의 티 없으신 성심 그리고 그 성심에서 나오는 성모님의 기도의 힘을 나누어 가지고서, 모든 삶의 궁극 목표인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즉시 변모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성모님이 당신의 단원들 안에서 당신의 단원들을 통하여 레지오의 모든 임무에 참여하시고 영혼들을 어머니로서 돌보시기 때문에, 결국 단원들은 활동 대상자와 동료 단원들 영혼 하나하나에서 우리 주님을 뵙고 섬기게 되는 것만이 아니라, 성모님이 하느님이신 당신 아드님의 실제 몸을 돌보시고 섬기셨던 바로 그 고귀한 사랑과 정성으로 활동 대상자와 단원들 영혼 하나하나에서 우리 주님을 보시면서 섬기시게 된다.

 

이와 같이 레지오 단원들이 성모님을 생생하게 모방하게 되었을 때, 그 군단(즉 레지오)은 성모님의 사명에 온전히 일치하고 성모님의 승리를 보장받는 진정한 성모님의 군단 즉 레지오 마리애가 된다. 이 레지오는 세상 곳곳에 성모님을 모셔다 드리게 되고, 성모님께서는 이 세상에 빛을 주시어 이내 찬란히 빛나게 하실 것이다.

 

“성모님과 더불어 즐겁게 살고, 성모님과 더불어 모든 시련을 견디어 내며, 성모님과 더불어 일하고, 성모님과 더불어 기도하고, 성모님과 더불어 여가를 즐기고, 성모님과 더불어 쉬어라. 성모님과 더불어 예수님을 찾아 나서서 그대의 팔에 예수님을 감싸 안고, 예수님 성모님과 더불어 나자렛에서 살 집을 마련하라. 성모님과 더불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십자가 곁에 머무르며, 그대 자신을 예수님과 함께 묻어라. 예수님 성모님과 더불어 부활하고, 예수님 성모님과 더불어 하늘나라에 올라, 예수님과 더불어 살고 죽으라.” (토마스 아 캠피스 Thomas a Kempis : 수련자들에게 한 설교)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5월호, 편집실]

 

 

[새 번역 교본 읽기] 성모님께 대한 레지오 단원의 의무(제6장)

 

 

한국세나뚜스협의회는 ‘레지오 마리애 공인교본(2014년 영문판)’에 대해 광주대교구 소속 안세환 신부께 번역을 의뢰하였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번역 교본은 1993년 영문판을 번역한 것으로 1993년 이후로 수차례 부분 수정이 있었습니다. 교본 전체를 새로운 시각으로 번역한 교본의 내용을 본 코너를 통해 계속 게재할 예정입니다.

 

단원들께서는 새로 번역된 교본의 내용을 검토하시고 내용에 대해 건의가 있을 경우 상급 평의회나 월간지 편집실로 의견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보내주신 내용은 검토하도록 하겠으며, 타당한 의견이나 건의에 대해서는 추후 새로운 교본의 인쇄가 결정될 경우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2. 성모님의 겸손을 본받음은 레지오 활동의 뿌리이며 수단이다

 

레지오는 단원들에게 말할 때 군대나 전투 용어를 자주 쓴다. 레지오는 모든 사람의 영혼을 얻기 위하여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계시는 진을 친 군대와 같은 성모님이 사용하시는 무기이자 눈으로 볼 수 있는 성모님의 활동이므로 그러한 용어가 잘 어울린다. 더욱이 군사적 개념은 사람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레지오 단원들은 자신이 군대의 일원이라는 것을 의식함으로써, 활동할 때에 스스로 군인과 같은 굳센 정신을 보이라고 촉구된다. 그러나 레지오 단원들의 싸움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므로 하늘나라의 전략에 따라 수행되어야 한다. 참된 레지오 단원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길은 오로지 보잘것없고 순수한 잿더미와 같은 특성들에서 솟아오른다. 이러한 특성들 가운데 특히 겸손의 덕이 있는데, 세상은 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경멸한다. 그러나 이러한 겸손의 덕은 고귀하고 굳세어, 이 덕을 구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흔치 않는 기품과 힘을 가져다준다.

 

레지오 조직에서는 겸손이 매우 독특한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도 겸손은 레지오 사도직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이다. 레지오의 활동은 대인 접촉에 많이 의존하는데, 이 대인 접촉의 효과를 높이고 발전시키려면, 단원들이 활동 대상자들에게 부드럽고 소박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오로지 진정으로 겸손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다. 그러나 레지오에게 겸손은 단순히 외적 활동의 수단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다. 겸손은 바로 외적 활동이 나오는 요람이라는 것이다. 겸손하지 않고서는 효과 있는 레지오 활동을 할 수가 없다.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성인의 말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겸손의 덕을 지니라고 당부하셨다. 겸손의 덕을 지닐 때, 인류 구원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이 제거되기 때문이다. 모든 다른 덕의 가치는 겸손의 덕을 바탕으로 한다. 하느님께서는 겸손이 있는 곳에 은혜를 베푸시며, 겸손이 사라지면 은혜를 모두 거두어 가신다. 모든 은총의 근원이신 주님의 강생도 겸손이 바탕이 되어 이루어졌다. 성모님은 ‘마니피캇(Magnificat, 마리아의 노래)’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팔의 큰 힘을 보여주셨다고 찬미하는데, 이 말은 하느님께서 동정녀 마리아 안에 권능을 떨치셨다는 뜻이다. 성모님은 그 이유를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 하느님께서 세상에 내려오시도록 하여 낡은 세상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도록 한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의 비천함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모님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완덕, 사실상 무한 경지에까지 이른 완덕을 갖추셨고, 당신 스스로도 그 점을 잘 알고 계셨다. 그런데도 왜 성모님은 겸손의 표본이 되실 수 있었을까? 성모님께서 겸손하셨던 것은 마찬가지로 당신이 어떠한 인간의 자손들보다도 더욱 완벽하게 구원되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자신이 지닌 상상할 수조차 없는 거룩한 빛 한 줄기 한 줄기가 당신 아드님의 공로임을 아시고, 또한 그러한 생각을 늘 마음속에 생생하게 간직하셨다. 성모님의 비할 데 없는 지성은 당신께서 누구보다도 많은 은혜를 받았으므로 하느님께 누구보다도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성모님의 고귀하고 우아한 겸손의 태도는 힘들지 않고 한결같았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이 성모님의 태도를 두루 살펴본다면, 참된 겸손의 본질은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진정으로 어떤 존재인가를 알고 이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임을 배우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단원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쓸모없음뿐이라는 것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주시는 은혜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당신 홀로 주셨던 것처럼, 그것을 늘리거나 줄이거나 또는 완전히 거두어 가실 수 있다. 레지오 단원이 하느님께 자신이 종속되어 있음을 의식하게 되면, 사람들이 거의 추구하지 않는 보잘것없는 임무를 뚜렷이 선호하게 되고, 멸시와 거절을 참아낼 준비가 되어 있으며, 통상적으로는 하느님의 뜻이 표명되었을 때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루카 1,38)라고 하신 성모님의 말씀을 투영하는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다.

 

레지오 단원이 그의 모후와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치는 이 일치를 갈망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 일치를 이루기 위한 능력도 요구한다. 훌륭한 군인이 되어 보겠다고 결심을 한 사람이라도 군 조직의 효율적인 톱니바퀴가 될 만한 자질을 아직 하나도 갖추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그 결과 그는 지휘관과 효과적인 일치를 이루지 못하여, 군사 계획 수행에 방해가 되고 만다. 이와 마찬가지로, 레지오 단원이 그의 모후께서 세우신 계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를 열망하지만, 성모님이 그토록 열렬히 주시기를 바라는 역할을 받을 만한 능력이 아직 그에게 없을 수 있다. 세속 군대에서는 이러한 무능력이 용기·지식·신체 결함 등 때문일 수 있다. 레지오 단원의 경우 이러한 무능력은 겸손의 덕이 없다는 데에서 발생할 수 있다. 레지오의 목적은 단원들을 성화시켜, 그 성화의 빛이 영혼들의 세계에까지 발산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겸손하지 않고서는 성화될 수 없다. 더구나 레지오 사도직은 성모님을 통하여 작동된다. 그러나 성모님을 어느 정도 닮지 않고서는 성모님과 일치할 수 없으며, 성모님이 지니신 특별한 겸손의 덕을 갖추지 않고서는 성모님을 닮았다고 할 수 없다. 성모님과의 일치가 모든 레지오 활동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조건 즉 뿌리라면, 이 뿌리가 의존하고 있는 토양이 바로 겸손이다. 토양에 결함이 있다면 레지오의 생명은 시들고 만다.

 

결과적으로 영혼들을 구하기 위한 레지오의 싸움은 반드시 각 단원의 마음 안에서부터 시작되어야만 한다. 각 단원은 자기 자신과 전투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교만과 이기심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뿌리와 치르는 이 치열한 싸움, 이른바 순수한 의지를 얻기 위한 부단한 노력은 얼마나 힘겨운 일이겠는가! 이는 일생동안 치러야 할 싸움이다. 자신의 노력에만 의지한다면 평생 실패하게 될 것이다. 자신을 물리치려는 이 싸움에서마저 오히려 이기심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모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자신의 힘이 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사람에게는 오직 단단한 발판이 필요할 뿐이다.

 

레지오 단원들이여, 여러분의 튼튼한 발판은 성모님이시다. 온전한 신뢰심으로 성모님께 의탁하라. 성모님은 여러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겸손의 덕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성모님께 의탁하는 정신을 충실히 실천하는 중에 여러분은 가장 훌륭하고 단순하며 포괄적인 겸손의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루도비코 마리아 성인은 이 길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은총의 비밀 통로로, 우리가 재빨리 아주 적은 노력만으로도 우리 자신을 비울 수 있게 해주어, 우리를 하느님으로 가득 채워주고 완전하게 해줍니다.”고 말하였다.

 

그 원리는 다음과 같다. 레지오 단원이 성모님께로 방향을 돌릴 때에는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등을 돌려야 한다. 이때 성모님은 이 움직임을 취하시어 높이 들어 올리신다. 그리고 이 움직임을 자기 자신에게서 죽는 초자연적인 죽음으로 만들어주신다. 이 죽음은 준엄하지만 많은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을 수행하는 일이다.(요한 12,24-25 참조) 겸손하신 동정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발꿈치로 ‘자아’라는 뱀이 지닌 다음과 같은 여러 형태의 머리들에 상처를 입히신다.

 

(가) ‘자기 현시’라는 뱀의 머리

 

교회가 ‘정의의 거울’이라고 부를 정도로 풍부한 완덕을 갖추신 성모님은 은총 왕국에서 무한한 힘을 부여받아 소유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가장 비천한 여종으로 무릎을 꿇으신다. 그렇다면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우리의 위치와 태도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나) ‘이기심’이라는 뱀의 머리

 

레지오 단원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모든 영적, 현세적 소유물을 성모님께 드려 성모님 뜻대로 쓰시도록 하였으며, 계속해서 그와 똑같이 완전히 너그러운 마음으로 성모님을 섬긴다.

 

(다) ‘자만심’이라는 뱀의 머리

 

마리아께 의지하는 습관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의 보잘것없는 힘을 믿지 않게 한다.

 

(라) ‘자부심’이라는 뱀의 머리

 

성모님과 함께 일한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러한 협력 관계에 부적당한 자임을 깨닫게 된다. 이 협력 관계에 레지오 단원은 자신의 골치 아픈 약점 말고는 무엇을 기여하였다는 말인가?

 

(마) ‘자기애’라는 뱀의 머리

 

무엇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인가! 모후께 대한 사랑과 찬미에 여념이 없는 레지오 단원이라면 모후로부터 돌아서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바) ‘자기만족’이라는 뱀의 머리

 

레지오 단원이 성모님과 맺은 그러한 동맹 관계에서는 더 고귀한 기준이 우세해야 한다.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을 모범으로 삼고 성모님의 티 없이 순수한 지향을 열망한다.

 

(사) ‘출세욕’이라는 뱀의 머리

 

우리가 성모님의 방식대로 생각할 때, 오로지 하느님만을 알려고 노력하게 되므로, 자신의 앞날이나 보상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아) ‘아집’이라는 뱀의 머리

 

성모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레지오 단원은 자기 마음이 충동하는 바를 신뢰하지 않고, 모든 일에서 은총의 속삭임에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진정으로 자아를 잊어버리는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이 베풀어 주시는 모성적 감화를 받아들이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성모님은 이러한 단원 안에 인간 본성을 초월하는 힘과 희생정신을 길러 주시고, 그를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로 만드시어(2티모 2,3 참조) 군인 직업이 요청하는 바를 열심히 수행하기에 적합한 자가 되게 해주신다.

 

“하느님께서는 무(無)에서 일하시는 것을 즐기신다. 그리고 바로 그 깊은 바닥으로부터 당신의 전능으로 지으신 창조물들을 이끌어 올리신다.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열정으로 충만하여야 하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일 만한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임을 깊이 받아들여 그 심연 속에 잠겨 보도록 하자. 비천함이라는 짙은 그늘 아래 피신해보자. 전능하신 분께서 우리의 의욕에 넘친 노력을 당신 영광을 위한 도구로 삼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실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보자. 이 목적을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흔히 기대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방법을 사용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는 복되신 성모님만큼 하느님의 영광에 이바지하신 분은 없었다. 그럼에도 성모님이 의식적으로 추구한 유일한 목표는 자신을 무로 돌리는 일이었다. 성모님의 겸손은 하느님의 계획에 장애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로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모든 계획이 쉽게 성취되도록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성모님의 겸손이었다.”(그루 Grou : 예수와 마리아의 영성 생활)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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