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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아시아의 가톨릭 국가 필리핀: 롤롬보이

53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8-31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위원회 공동기획 - 아시아 교회 복음화 길을 따라서] 필리핀 (2) 롤롬보이


두 조선인 신학생 머물던 곳에 ‘성 김대건 신부 성지’ 조성

 

 

- 롤롬보이 성 김대건 신부 성지의 전경. 왼쪽 높은 건물이 피정의 집이고 오른쪽 조금 낮은 건물이 성당이다.

 

 

필리핀 롤롬보이(Lolomboy)는 성 김대건 신부와 가경자 최양업 신부가 신학생 시절 마카오에서 피신해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롤롬보이는 수도 마닐라에서 약 40㎞ 떨어져 있으나 교통 체증과 도로 사정으로 차를 타고 약 2시간 정도 달려가야 겨우 닿을 수 있었다.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자동차 실내 에어컨을 켰음에도 등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차는 교통 체증으로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습도도 높아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모기떼는 야외와 실내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함께 롤롬보이를 방문한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직원은 모기에 심하게 물려 약을 먹어야 할 정도였다. 차를 타고 가는 지금도 이런데, 당시 10대에 불과했던 조선의 두 신학생은 이곳을 지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린 김대건과 최양업의 흔적이 남아있는 필리핀 롤롬보이를 방문했다.

 

롤롬보이 성지 입구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 성상. 김대건 신부는 신학생 시절 민란을 피해 이곳에서 6개월가량 머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롤롬보이 ‘성 김대건 신부 성지’ 앞 골목은 얼핏 보면 필리핀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시골 같은 느낌이 든다. 성 김대건 신부 동상이 곳곳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성상 주위에는 기도초들이 무더기로 놓여 있다. 몇몇 초에는 방금 불이 꺼진 듯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랐다. 성 김대건 신부가 이곳 롤롬보이본당의 수호성인으로 모셔지고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동네 골목을 지나 두꺼운 철문을 통과하면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동상이 양옆으로 서 있는 길이 나타난다. 정면에는 한글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가 새겨진 표지석이 순례자를 반긴다.

 

 

성 김대건 신부와 롤롬보이

 

김대건ㆍ최양업 두 신학생이 필리핀에 온 것은 1839년 4월 무렵이다. 당시 둘은 마카오에서 공부하다 민란을 피해 필리핀 마닐라의 성 도미니코회 수도원으로 왔고, 수도원의 배려로 롤롬보이 수도원 농장에서 지냈다. 두 신학생은 이곳에서 그해 11월까지 6개월가량 머물렀다. 현재 ‘성 김대건 신부 성지’가 조성된 자리는 두 조선인 신학생이 머물렀던 농장 터로 추정되는 장소다.

 

- 현재 성 김대건 신부 성지 조성 사업은 비용 부족으로 중단된 상태다. 이 자리에는 한국인 김대건 신부를 상징하는 ‘갓’을 형상화한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잊힐 뻔했던 롤롬보이가 다시 한국 교회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김수환(1922~2009) 추기경과 오기선(1907~1990) 신부의 노력 덕분이다. 김 추기경과 오 신부는 신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두 신학생이 머문 곳을 찾아냈다. 오기선 신부는 1986년 롤롬보이에 김대건 신부 성상을 세우기도 했다. 성상이 세워진 후 롤롬보이 사람들도 김대건 성인과 최양업 신부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년 김대건이 순교한 아버지의 편지를 읽으며 고향을 그리워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해 커다란 나무에 ‘망향의 망고나무’라고 이름 지어 기념해 왔다. 2002년 성안드레아수녀회가 이곳을 사들여 후원금을 모아 소성당과 피정의 집, 유해소, 정자 등을 꾸며 성지로 가꾸고 있다.

 

- 밑동만 남은 ‘망향의 망고나무’. 베어낸 나무는 제대로 사용했지만 개미가 들끓어 사용을 중단했고 다른 방도를 찾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무관심에 잊혀가는 ‘성 김대건 신부 성지’

 

하지만 이곳에 신심을 가지고 찾는 사람은 드물다. 지역 청년들 사이에서는 데이트 코스로, 사진이 잘 나오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고 한다. 서울 순교자현양위 일행이 방문한 날에도 두세 그룹의 청년들이 카메라를 들고 성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성 김대건 신부 성지’ 관리 담당 강수산나 수녀는 “한국인 순례단이 본당ㆍ단체별로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며 “현지 사람들은 김대건 성인을 공경하기는 하지만 이곳은 성인을 기리는 장소라기보다 관광지로 인식하고, 심지어는 사진을 찍기 위해 정자 지붕에 올라가기도 해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보내오는 후원금도 줄어들어 신축 공사도 중단했다. 롤롬보이 지역을 담당하는 마롤로스교구 역시 성지 개발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 성지 내에 세워져 있는 김대건 신부의 성상.

 

 

김대건ㆍ최양업 신부와 관련한 흔적을 찾고 보존하는 일도 시급하다. 롤롬보이와 관련한 김대건ㆍ최양업 신부의 이야기는 대부분 구전으로 전해질 뿐, 그것을 실제로 증명할 자료는 부족해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소년 김대건이 그늘에 앉아 고향을 그리워했다는 ‘망향의 망고나무’도 태풍으로 부러져 밑동만 쓸쓸하게 남아 있다. 베어낸 나무로 성당 제대를 만들어 사용했지만, 개미가 갉아 먹어 제대로 쓰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졌다. 현재는 보존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외부에 방치된 상태다.

 

강 수녀는 “기록 보충을 위한 연구를 위해서는 현지 교회와 한국 교회의 협력이 절실하다”며 “개발과 보존을 위해서는 교회 구성원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9월 1일, 장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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