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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당 제대 이야기: 원주교구 배론성지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념 성당

76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11-24

[우리 성당 제대 이야기] 원주교구 배론성지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념 성당


최양업 신부의 유해를 기다리는 제대

 

 

“제대를 봉헌할 때 제대 밑에 순교자가 아니더라도 성인들의 유해를 모시는 관습은 적절하게 보존한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02항).

 

제대 안에 순교자의 유해를 안치하는 전통은 로마 박해 시대에 순교자들을 카타콤에 묻고 그 묘지 위에서 미사를 봉헌한 데서 유래한다.

 

성인의 유해를 제대에 안치한 것은, 그 위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 유해의 주인공과 그리스도와의 긴밀한 일치를 표현하고자 함이었고, 신자들의 제사는 모두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제사에서 비롯되었음을 표현하려는 의도이기도 하였다. 이렇듯 우리나라에도 제대에 성인의 유해를 안치한 성당이 많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하느님의 정원, 배론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644-1, 거기 배론은 150년 전 신앙을 지키고 박해로부터 자유를 얻고자 선조들이 흘린 피와 땀이 서린 곳으로 한국 교회사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 성지다.

 

첩첩산중 깊은 계곡이 마치 배 밑바닥 같다 하여 배론이라 이름 붙여진 이곳에는 1800년대부터 교우들이 숨어들어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우며 궁핍한 가운데서도 신앙을 지켰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는 배론의 토굴에 숨어 지내며 당시 박해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고 신앙의 자유와 교회의 재건을 호소하는 황사영 백서를 썼다. 1855년에는 프랑스 신부들이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당을 세워 사제를 양성했다.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로서 11년 6개월 동안 오지의 교우들을 찾아다니며 목자의 삶을 산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1861년 선종한 뒤 배론에 묻혔다. 이곳에 최양업 신부의 성덕을 기리며 시복 시성을 기원하고자 1999년 9월 20일 건립된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념 성당’이 있다.

 

 

최양업 신부의 시복 시성을 기원하며 지은 성당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은 배 모양으로 설계 시공되었다. 노아의 방주가 그러했듯이 교부들은 초기부터 교회를 구원의 배로 이해하고 표현하였다. 사나운 세상의 풍랑 속에서 안전하게 하느님 나라를 향해 항해하는 배를 지음으로써 세기말적 불안에 떠는 사람들에게 안정과 평화, 그리고 3000년기를 향한 희망의 뜻을 담았다. 또 배론이라는 지명을 조형화한 것으로 최양업 신부가 입국하려고 몇 차례 승선했던 배를 상기하여 가경자가 지녔던 불굴의 선교 의지를 본받고자 했다.

 

당시 주임 배은하 타대오 신부는 “수십만 리를 걸어 신자들을 찾아다니신 땀의 순교자로서 지금도 축복하시고 전구하시는 최양업 신부님의 사목적 업적과 체취를 다 풀어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념 성당은 대지 2,930평에 연건평 616평 규모로, 978석의 좌석, 수용 인원 2,000여 명인 대성당과 280여 석의 소성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성당 제단에는 180×90×85.5cm 크기의 화강석 제대가 놓여 있다.

 

당시 가톨릭미술가회 회장 최종태 요셉 조각가의 작품으로 색과 크기, 전체적인 디자인 면에서 대성당의 질감과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듣는다. 있는 듯 없는 뜻 정갈하게 놓인 제대는 윗면보다 아랫면이 좁은 상 형태에서 육중하고 커다란 돌임에도 무겁거나 버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성당을 지을 때 규모를 결정하는 것은 제대여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의 제대는 성당과 조화가 잘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성지 담당 배달하 필립보 신부의 설명이다.

 

 

기념 성당에는 순례자들을 위해 대성당 왼편에 두 개의 경당이 마련되어 있다. 경당에는 각각 작은 돌 제대가 놓여 있는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남종삼 요한 성인, 최양업 신부의 부친인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를 안치했다.

 

성당에 여러 성인의 유해가 있음에도 중앙 제대에는 안치하지 않았다. “최양업 신부에게 공인된 성당이고 제대도 마찬가지이기에 최양업 신부님이 시성되면 그 유해를 모시려고 비워둔 것이죠.”

 

아무런 장식이나 문양, 표식이 없는 하얀색 화강암 제대는 붉은색이 감돈다. 한국 교회에서 아직 활짝 피어나지 못한 최양업 신부의 현주소를 말해 주는 듯 말이다.

 

“아무 치장도 화려함도 없는 제대를 통해 달릴 길을 다 달렸고 한국 교회사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업적을 남겼지만 아직 시성되지 못한 최양업 신부님의 삶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2021년은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탄생 200주년과 선종 160주년이 되는 해이다.

 

[경향잡지, 2020년 11월호, 글 ‧ 사진 김민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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