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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회 탐방: 주님 손안의 연장 – 예수성심시녀회

64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7-08

[수도회 탐방] 주님 손안의 연장 – 예수성심시녀회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습니다. 반짝 다가왔다 깜빡 사라질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데 좀처럼 물러서지 않네요. ‘코로나19(COVID-19)’가 지나면 찾아가려던 수도회 탐방은 결국, 온라인으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수도회에 혹여 누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는데, 대구광역시에 총원이 있는 수도회에서는 오히려 저를 걱정해 주셨습니다. 긴장 속에서 자칫 불신과 미움으로 번질 수 있었던 시간이 배려와 연대로 이어지고 있음에 감사하는 요즈음입니다. 그럼에도 ‘탐방’이란 이름이 무색해질까, 끝까지 놓지 못했던 미련은 ‘예수성심시녀회’를 마음으로 탐방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놓을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항상 대기하고 있는 시녀

 

‘수녀회’가 아니고 ‘시녀회’였습니다. 혹시 잘못 본 걸까, 오타인가 싶었지만 틀림없는 ‘시녀회’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수도회 이름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글자로 이루어진 모든 것에 힘이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참으로 그랬습니다. 수도회의 영성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려주는 이름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이웃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간호사 수녀님은 선별진료소에 지원하여 봉사했습니다. 수도회에서 설립한 포항성모병원은 앞장서서 사회에 필요한 지원을 했습니다. 긴 시간, 집중하여 환자를 돌보는 보건소 의료진과 직원에게는 저녁 도시락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로 퍼진 팬데믹(pandemic · 세계적 유행)인 만큼 수도회가 활동하고 있는 유럽(이탈리아, 프랑스), 아시아(대만, 미얀마,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태국, 필리핀), 라틴아메리카(볼리비아)에서도 ‘준비된 시녀’로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특히, 얼마 전(3월12일) 필리핀 마닐라 수녀원 바로 옆에 있는 무허가 주택 동네에서 큰불이 났습니다. 무려 236가구가 전 재산을 잃고 그야말로 길바닥에 나 앉아야 할 때, 전 세계에 ‘예수성심시녀회’ 수녀님이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도움의 손길을 나누었습니다. 가난 속에서 맞이한 코로나19에 화재까지 이중(二重), 삼중고(三重苦)를 겪는 이웃을 향한 수녀님의 마음은 국경이 없었습니다. 주인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자신을 내어놓는 시녀. 쓰이고 잊혀짐에 마음 쓰는 것이 아니라 쓰일 수 있음에 기뻐하는 수도회의 영성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수도회의 시작부터 그랬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이었던 루이 델랑드(Louis Deslandes, 한국명: 남대영) 신부님이 두 달간의 긴 여정을 거쳐 부산항에 도착한 그 시기는 1923년 일제강점기였습니다. 신부님은 10여 년간, 본당 사목을 하시다 1935년에 여섯 명의 불씨를 만났습니다. 하느님께 온 생을 바치기로 한 여섯 명의 동정녀와 함께 영천군 화산면 용평리에 공동체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공동체의 이름은 삼덕당(三德堂). 신(信), 망(望), 애(愛), 삼덕(三德)이 머무르는 이곳이 바로, 지금의 ‘예수성심시녀회’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둠뿐이었던 시간 속에서도 델랑드 신부님과 여섯 명의 동정녀는 병든 할머니와 두 명의 어린 고아와 함께 생활하며 ‘주님 손안의 연장’이 되어 빛을 전했습니다. 광복을 맞이한 후에도 한국 전쟁과 가난으로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빛을 빚어내는 일이 수녀님의 생활이었습니다. 특히, 나병 환자를 위한 무료진료가 그랬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에게 찾아온 어둠의 시련에도 언제나 그랬듯 빛을 만들어 가고 있으셨던 거지요.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함께하는 일은 새로울 게 없는 수도회 ‘생활(生活)’ 자체였습니다. 주인이 쓰시는 대로 쓰이는 일이 수도회의 시작이었으니까요.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태 20,28)

 

예수성심시녀회 수녀님께서 현재 수도원 정원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 푸릇푸릇 초록으로 가득했습니다. 주님이 빚으신 온갖 생명을 직접, 보고 만지고 느꼈던 모든 것이 다시 그리워졌습니다.

 

많은 분이 그러셨겠지만, 저 역시 올해 사순시기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사순시기를 보냈다고 할까요. 지금까지 몇 번의 사순시기를, 몇 번의 부활을 맞이했을까요. 바쁜 일상 속에서 사순시기인 걸 깜빡 잊기도 하고, 금식(禁食)이고 금육(禁肉)이고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시간도 없이 체크 리스트 하나로 지나가 버리기도 했었습니다. 했다는데 의의를 두며 다시 찾아올 사순시기이고 부활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간과 사람 속에서 떨어져 조용히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시기를 보냈습니다. 당연했던 미사를 드릴 수 없어 모니터를 바라보며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를 외치면서, ‘그리스도의 몸’에 ‘아멘’이라 답하고 ‘신령성체기도’를 바치면서 얼마나 간절히 주님을 모시기를 바랐는지 모릅니다. 며칠간 씻지 않은 꿉꿉한 마음처럼 고해성사를 드리고 싶어 십자고상을 붙잡고 죄를 고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런 사순시기와 부활시기를 보내고 난 이후여서인지, 수도회 영성의 바탕인 ‘예수성심’이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신 성심(聖心). 죄가 없으신 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 모든 수난 고통을 감내하시고 부활하셔서 성령의 기쁨을 쏟아 부어주신 성심(聖心). 그 성심을 모시는 시녀들이 바로 ‘예수성심시녀회’였습니다.

 

수도회는 대구와 서울 두 개의 관구에서 본당 선교, 사회 복지, 의료, 유아 교육, 해외 선교, 피정의 집 등 예수성심이 머무는 곳에는 어디든 함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 안에 머무르겠지요. 예수성심이 향하는 곳이 늘 그렇듯 말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예수성심’ 하면 가시관에 둘러싸인 빨간 하트 모양의 심장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어렸을 때는 그 가시관을 벗겨드리고 싶어 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커서는 오히려 깊이 있게 바라보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듯하고요. 6월이 ‘예수성심성월’이라고 해도 그저 성월 기도를 드릴 뿐 여느 날처럼 보냈습니다. 미사가 재개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감사함을 잊어가고 있는 저를 본다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수성심시녀회’ 수녀님처럼 제 마음 둘 곳을 곰곰이 묵상해 봐야겠습니다. 제가 주님 손안의 연장으로 잘 쓰이고 있는지도 함께 말입니다.

 

예수성심, 이 세상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아멘.

 

[평신도, 2020년 여름(계간 68호), 글 서희정 마리아, 사진 예수성심시녀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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