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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8일 (목)부활 제3주간 목요일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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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원 이야기: 그리스 메테오라의 수도원들

63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1-19

[수도원 이야기] 그리스 메테오라의 수도원들


거기 영혼의 성이 있다

 

 

- 루사누 누네리 수도원.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 위.

 

그 아찔한 높이 위에서 수도원들이 동쪽 햇살의 첫 가닥을 수평으로 받아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세속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읽혔다. 어떤 공격에도 쉽사리 문을 열어줄 것 같지 않은 견고한 ‘영혼의 성’이 그곳에 있었다.

 

그해, 나는 선배 수도자들의 흔적을 쫓아 그리스로 갔다. 아테네에서 차로 5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메테오라’(Meteora).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 또는 ‘하늘에서 내려온’이라는 뜻이다.

 

구름을 뚫을 듯 솟아 있는 각각의 바위산 봉우리에 6개의 수도원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하늘 기둥 즐비한 천혜의 요새에 수도원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서기 900년 이후라고 한다. 그 당시 수도자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이슬람 군대의 공격을 피하고자 500미터 암벽 동굴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은수자 아타나시오 성인이 10세기 후반 설립한 작은 수도원이 1500년대 초 대 메테오라 수도원으로 탈바꿈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대형 수도원이 봉우리마다 속속 들어섰다. 한번 뭉쳐진 눈이 불어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수도원이 생겨나면서 더 많은 수도자가 메테오라로 몰려들었고 이는 또 다른 수도원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한때 20여 개의 수도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모인 수도자들은 하늘과 맞닿은 이곳에서 세속의 모든 욕망을 버렸다. 비워진 주머니에 그들이 새롭게 채우고자 했던 것은 신앙의 신비였다.

 

지난날에는 계단이나 다리가 없어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생필품과 곡식 등은 도르래에 매달린 바구니를 통해 공급되었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수도원에 들어가려면 특별히 허락을 받고 도르래 바구니를 이용해야 했다. 수도자들이 자청해서 도르래 바구니에 몸을 싣고 바위산 위로 올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이들을 하늘로 이끌었을까?

 

- 발람 수도원.

 

 

궁금증은 수도원 내부를 돌아보면서 하나둘 풀리기 시작했다. 접근이 가장 어렵다는 트리니티 수도원을 제외하고, 대 메테오라 수도원, 발람 수도원(위 사진), 루사누 누네리 수도원(39쪽 사진), 성 스테파노 수녀원(40쪽 사진)을 이틀에 걸쳐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모든 성인의 수도원’으로 불리는 발람 수도원. 1300년대에 수도자 발람이 기거했던 곳이다.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1500년대 중반이라고 한다. 계단이 가팔랐다. 숨이 가슴을 거쳐 턱으로 오를 즈음 도착한 수도원은 생각보다 큰 규모였다. 성전과 숙소, 생활관 등이 좁은 봉우리 정상에 다닥다닥 들어서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자잘한 생활용품과 성물, 성경 필사본, 의복 등 500년 고립 생활의 자취들이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성화와 성물로 빼곡하게 채워진 성전과 경당이다. 삼위일체 하느님, 사도들과 성인 성녀를 그린 성화들. 그리고 천국과 성경 이야기를 형상화한 프레스코화로 성전은 세속의 바늘 하나 꽂을 자리 없이 빽빽했다.

 

그 거룩함의 중심에 평생 욕망과 욕심을 걸러 내는 고행을 이어 간 수도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느님께 다가가고자 하늘과 가까운 공중 수도원을 찾은 수도자들의 거룩한 염원을 성전에서 읽을 수 있었다.

 

메테오라의 수도원들 안에선 그 어떤 유혹에도, 타락의 위험에도 안전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난공불락의 성 밖으로 나가야 할 시간. 견고한 울타리 안에 있다는 편안함에서 벗어나기 싫었을까? 올라갈 때보다 느릿한 걸음으로 천천히 공중 수도원을 내려왔다.

 

메테오라는 말하고 있었다, 세속의 공격을 버텨 낼 수 있는 난공불락의 성 하나를 우리 마음 안에도 만들어야 한다고.

 

- 성 스테파노 수녀원.

 

 

그리스 메테오라에서의 기억은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왜 사람들은 메테오라로 갔을까. 왜 은수자들은 사막으로 갔을까. 왜 주상(柱上) 고행자들은 기둥 위에 올라가 평생 살았을까. 왜 수많은 수도자는 안락함을 버리고 동굴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행복한 종말을 기다렸을까. 그들의 삶이 지금 여기에 있는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을까. 이 글은 이제 그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될 것이다.

 

2세기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간」(Epistle to Diognetus)에 나온 내용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여정의 문을 열고자 한다. 이 서간에서 말하는 내용이 바로 내가 ‘수도원 이야기’라는 긴 여정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이다. 동시에 이 글을 쓰는 이유이고, 이 글을 함께 나누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육체를 가졌지만 육체를 위해서만 살지 않는다. 그들은 이 땅에 살지만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그들은 법률에 순종하면서도 자신들의 생활 속에서는 그 법률을 넘어서려고 한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나, 모든 사람으로부터 박해받는다. 그들은 가난하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만든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모든 것이 풍족하다. 그들은 겸손하나 겸손이 그들의 영광이 된다. 그들은 학대를 받으면서도 남을 축복한다. 그들은 욕을 먹으나 의롭게 된다. 그들은 모욕을 당하면서도 모욕을 존경으로 갚는다.”

 

* 최의영 안드레아 - 교황청립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CFIC) 동아시아 준관구장이다. 1998년 입회하고,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 수도자 신학대학원 ‘클라렛티아눔’(Claretianum)을 졸업했다. 로마 ‘이디 제약회사’(IDI Farmaceutici)의 이사, 알바니아 NSBC 가톨릭대학교 부설 병원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20년 1월호, 최의영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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