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자료실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9일 (금)부활 제3주간 금요일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영성ㅣ교육

sub_menu

교육ㅣ심리ㅣ상담
[심리]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집단 따돌림과 창의적인 사회

42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7-10-17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집단 따돌림과 창의적인 사회

 

 

“왕따 한번 당해 봐야 정신 차리지!”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싹싹하게 일 잘하고, 자기 일이 아니더라도 열심히 하는 후배가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생글생글 웃으며 다정하게 사람을 대하던 친구여서 선배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한 학기가 지나고 대학원에 신입생이 들어왔다. 늘 웃는 그 후배에게도 ‘후배’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신입생 가운데 한 명이 유독 분위기 파악을 못했다. 대학원이라는 집단에도 암묵적으로 유지되는 규범이 있는데, 이 신입생은 집단 규범과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곤 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했고, 집단 규범과는 다른 자신의 생각을 쉽게 드러냈다.

 

집단 따돌림을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릴 거라는 말은 바로 늘 웃고 다니던 친구가 분위기 파악 못하는 신입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했던 말이다. 늘 따뜻하게 웃던 친구의 입에서 나온 차가운 한마디였다. 실제로는 그 어떤 종류의 집단 따돌림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한 미소를 짓던 사람이 내뱉은 말이어서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사실 우리 사회의 조직 문화를 감안하면,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채 개인플레이를 하는 사람에게 경고를 주거나 비난할 때 쉽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한마디에는 집단 따돌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생각이나 믿음이 잘 요약되어 있다.

 

 

모든 따돌림은 폭력이다

 

먼저 우리 사회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집단 따돌림을 일종의 처벌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존재한다. 곧, 많은 사람이 집단 규범을 유지시키려고 그 집단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개인에게 집단적 따돌림이라는 수단을 사용해서 제재를 가하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따돌림이라는 처벌을 통해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집단 따돌림이 결국에는 그 피해자가 조직 생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집단 따돌림을 일종의 조직 적응에 필수적인 교육의 하나로 생각하기에 집단 따돌림을 이용해서 특정 개인에게 처벌을 가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생각하거나 적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집단 따돌림이 중·고등학교에서만이 아니라 군대나 직장과 같이 우리 사회의 모든 조직에서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우리 사회에 집단을 유지시키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 집단 따돌림을 인정하는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군대가 아닌 사조직에서도 ‘군기가 빠졌다.’는 말을 자주 쓴다. 이때 ‘군기’는 조직의 규범을 의미하고, 군기를 잡으려는 방편 가운데 하나로 집단 따돌림이 이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집단 따돌림은 폭력, 곧 집단 폭력이다. 만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정당하고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다수가 개인에게 폭력을 가하고, 이를 교육이라고 정당화하는 것은 집단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있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을 두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따돌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집단 따돌림은 대부분 많은 가해자가 한 명의 피해자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단 한 명을 따돌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가 자살하거나 엄청난 물리적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가해자들을 맹렬히 비난한다. 하지만 어떤 개인이 집단에서 따돌림당한다는 사실을 처음 접하면, 가해자들이 너무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피해자도 뭔가 따돌림당할 만한 짓을 하지 않았을까?’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들이 그런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도움을 청하는 것을 꺼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왕따’라는 단어를 배척해야 하는 이유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이른바 ‘왕따’라는 단어에도 숨어 있다. ‘왕따’는 1990년대부터 많은 학생에게서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이나 그 일을 일컫는 은어였다. ‘따’는 따돌림을 가리킨다. 예컨대, ‘은따’는 은근히 따돌림을, ‘전따’는 전교에서의 따돌림을 뜻한다.

 

집단 따돌림은 많은 가해자가 집단적인 힘을 이용해 약자의 위치에 있는 개인을 괴롭힌다는 것이 사건의 핵심이다. 하지만 ‘왕따’라는 단어는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를 사건의 중심에 놓는다. 이 단어는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들이 만들어 낸 은어였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사건의 피해자(왕따)를 이용해서 가해자가 일으킨 사건(집단 따돌림)을 지칭하게 되면, 제삼자는 사건 발생의 원인이 피해자에게 있다는 암시를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왕따’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너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굳이 ‘집단 따돌림’이나 ‘학교 폭력’이라는 먹물 냄새나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해자들이 집단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용어 사용에서부터 명확히 해야 하는 것이다.

 

 

창의적인 사회

 

“그 친구, 좀 이상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지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기 힘들 때 자주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이상한 사람의 태도나 행동이 우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면 ‘재수 없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이상하고 재수 없는 사람일까?

 

많은 경우에 이상한 사람은 자신과는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고, 대다수의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다수라는 평균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고, 그들의 이상함을 견디기 힘들게 되면 재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못나도, 너무 잘나도, 너무 멍청해도, 너무 공부만 해도 이상하고 재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집단 규범으로부터 일탈한 사람에 대해 상당히 가혹하다. 심지어는 집단 규범이 비합리적이거나 일탈자에 대한 처벌이 비합법적인 경우에도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곤 한다. 그 결과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튀는 사람, 곧 조직 내의 규범에 순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남기 힘들고, 심지어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나라에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아직 나오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상하고 재수 없는 괴짜가 살아남지 못하는 문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생각을 창조해낸 많은 사람이 기존의 관점에서는 이상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주위 사람에게는 재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다수와 다르다고 해서 집단에서 배척하는 것은 조직의 규범을 유지시키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하고 재수 없는 사람들이 만든 새로운 세계를 함께 즐길 기회를 집단적으로 차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창의성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상하고 재수 없는 사람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창의적인 사회인 것이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7년 10월호, 전우영]


0 815 0

추천  0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