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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남의 일자리가 나의 행복에 중요한 이유

39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7-06-20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남의 일자리가 나의 행복에 중요한 이유

 

 

일흔여덟의 할머니가 길을 걷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이 남자가 갑자기 할머니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는 각목이 들려 있었다. 가로수 지지대로 사용하는 나무만큼이나 굵은 것이었다. 이 남자는 각목으로 할머니의 머리를 내리쳤다.

 

할머니가 쓰러진 뒤에도 각목을 휘두르던 남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또 다른 여성을 발견하고는 다시 각목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2016년 5월 25일 오후 5시 무렵, 부산 동래구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이 남자는 원한을 가지고 있거나 복수를 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피해자들을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했다. 단지 눈앞에 보이는 누군가를 향해 달려든 것이다, 마치 ‘좀비’처럼. 이빨로 상대방의 살점을 물어뜯지만 않았을 뿐, 이 남자의 폭력은 좀비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좀비’와 함께 산다

 

‘되살아난 시체’라는 뜻의 ‘좀비’(Zombie)는 아직까지는 상상이 만들어 낸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과연 현실에 좀비들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좀비 같은 사람을 우리 사회에서 찾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미 좀비와 함께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그들이 영화 속 좀비들처럼 기괴하게 걷지 않고, 입에 피를 묻힌 채 돌아다니지 않아서 이들이 좀비인지 분간하기 힘들 뿐이다.

 

우리 사회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는 ‘묻지 마 범죄’는 눈에 띄는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무차별적으로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좀비들의 폭력과 닮았다.

 

‘묻지 마 범죄’의 발생에 대한 소식은 더욱 빈번해지고, 범죄의 대상과 장소는 다양해지고 있다. 곳곳에서 좀비들의 ‘묻지 마 공격’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사회에서, 우리는 이런 좀비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대부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일하기를 원했지만 일할 기회를 찾지 못한 상태로 지내 왔다는 것이다.

 

일자리의 주된 기능은 우리에게 경제활동의 기회를 줌으로써 생존에 필요한 재화를 획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의 또 다른 기능은 사회적 상호 작용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학교에 간다.’라는 말은 ‘공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또래의 친구들과 만나서 함께 사회적 상호 작용을 할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학생에게 학교는 공부와 사회적 상호 작용을 위한 공간이다.

 

마찬가지로 직장인들에게 ‘출근한다.’라는 것은 ‘돈을 번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오늘도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 곧, 직장은 돈을 버는 곳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상호 작용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일자리가 없으면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지만 동시에 사회적 상호 작용의 기회도 잃게 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사회적 상호 작용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묻지 마 범죄’와 일자리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직업과 직위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김 부장’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김 부장’이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과 상호 작용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직장을 잃는다거나 애초에 취업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사회 심리적 자산을 통째로 빼앗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자리를 잃은 당사자에게는 사회 전체가 자신을 집단적으로 따돌리는 것 같은 심리적 충격이 가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규범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범을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범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인 사회적 상호 작용으로부터 단절되면, 한 사회의 규범이 개인의 마음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은 급격히 약화된다. ‘사람을 칼로 찌르면 안 된다.’는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규범조차도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재확인되지 않으면 개인의 행동을 제어하는 힘을 상실하게 된다.

 

일하기를 원하고 열심히 준비했어도 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은 좌절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좌절은 자신을 좌절시킨 대상에 대한 분노를 야기한다. 여기에 더해서 직장이라는 상호 작용의 공간으로부터 배제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상호 작용의 빈도는 급격히 감소한다.

 

그 결과, 현실 규범을 재확인할 기회를 찾기 어려워진다. 자신을 좌절시킨 사회에 대한 분노와 현실 규범에 대한 검증력의 상실이 결합되면, 이제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르려는 기본적인 준비는 끝나는 것이다. 좀비 모드로의 변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좀비’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

 

일단 좀비가 되고 나면, 그에게서 지난날의 인간적인 모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좀비는 눈앞에 보이는 사람은 모두 닥치는 대로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존재일 뿐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좀비들은 자신들이 본디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쉽게 잊는다는 것이다. 좀비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전에는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좀비가 되기 전에는 좀비를 혐오하고, 심지어는 좀비들을 없애거나 자신의 가족과 친구를 지키려고 그들과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지난날도 좀비들의 지난날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둘렀던 괴물이 아니라, 아마도 한때는 착한 어린이였고, 성실한 학생이었으며, 불의에 치를 떠는 시민이었을 것이다.

 

좀비는 가해자이지만, 동시에 피해자이다. 이 피해자들 가운데는 우리가 지킬 수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리 힘세고 싸움 잘하는 사람도 좀비들에게 둘러싸이면 혼자서는 어쩔 수가 없다. 공동체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도왔다면 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홀로 남겨져 외롭게 싸우다 좀비가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지켜 내지 못한 사람들이 좀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좀비가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다.

 

‘묻지 마 범죄’에 대한 대책으로 범죄자에 대한 단호하고 엄격한 처벌이 강조된다. 강력 범죄에 대해서는 강한 처벌을 하는 게 맞다.

 

그렇지만 현실 규범에 대한 검증 능력을 상실해서 이미 좀비가 되어 버린 사람들에게 더욱 강력한 처벌을 경고한다고 해서 이들이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조절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실업 문제를 방치한 채로 ‘묻지 마 범죄’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하는 것은, 좀비들을 만들어 내는 근본적 이유인 좀비 생산 공장은 그대로 놔두고 일단 눈에 띄는 좀비들만 단호하게 조치하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현재의 청년 실업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미래의 좀비들을 예약해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좀비가 아닌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묻지 마 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내어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좀비로 변하기 전에 일자리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과 행동의 적절성을 점검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일자리가 사람을 좀비가 아닌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일자리는 그 사람의 삶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일자리는 내 마음의 평화와 신체적 안전에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일자리가 좀비 없는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좀비 없는 세상에서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자 좀비가 될 위기에 놓인 사람을 지켜 줄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다.

 

“당신은 곤경에 빠지거나 도움 받기를 원할 때 의존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어떠한가? 긍정인가? 아니면 부정인가?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OECD 사회통합지표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사람은 곤경에 빠졌을 때 의존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조사 대상 36개국(OECD 34개 회원국과 브라질과 러시아 포함)가운데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우리 사회가 ‘좀비가 만들어지기 아주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자리를 잃는 순간 도움을 찾기 어려운 사회, 그래서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쉬운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좀비 바이러스는 공동체가 무너진 곳에서 확산된다. 우리가 구해 내지 못한 사람들이 좀비가 된다.

 

따라서 좀비 없는 세상은 실업 문제의 해결, 그리고 위기에 놓인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는 공동체의 회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남의 일자리와 공동체의 회복은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7년 6월호, 글 전우영 · 사진 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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