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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 마음의 북녘본당: 덕원자치수도원구 원산본당 - 북한지역 서쪽지방 신앙의 뿌리

100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8-12-12

[내 마음의 북녘본당] 덕원자치수도원구 원산본당(1887~1949)


북한지역 서쪽지방 신앙의 뿌리

 

 

원산성당은 함경도 지방의 첫 성당으로 북한지역 서쪽지방의 신앙의 뿌리가 된다. 원산 지역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1876년 황해도에서 원산으로 이주해온 교우 윤동만(바오로) 형제가 3~4년 열심히 전교활동을 펼친 덕분이었다. 1880년 개항된 원산은 함경도 지방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었다. 1884년 프와넬 신부는 원산의 발전을 염두에 두고 원산공소를 설립한다.

 

이를 터전으로 1887년 강원도 이천에서 사목하던 파리 외방전교회의 드게트(V. Deguette)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원산에서 5리 정도 떨어진 광석동에 부임하여 사목했으나 1889년 공소순방 중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하자 이듬해 5월 마라발(J. Maraval)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1894년까지 제4대 주임신부로 브레(A. Bret) 신부가 부임하여, 성당부지를 매입하고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1896년 제5대 주임신부로 베르모렐(J. Vermorel) 신부가 부임하여 간도지방의 첫 교우인 김영렬(요한)에게 세례를 주고 그를 간도 지방의 사도로 파견하여 복음을 전하게 하였다. 1896년 브레 신부가 다시 6대 주임으로 부임했으나 1908년 병사하자 라리보(A. Larribeau) 신부가 잠시 사목하였다.

 

원산 본당이 안정을 찾게 된 것은 제10대 주임 프와요(G.Poyaud) 신부가 부임하면서부터다. 프와요 신부는 제1차 세계대전 징집 대상에서 제외됨으로써 계속 원산본당을 지킬 수 있었다. 프와요 신부는 원산에 부임한 이후 매일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에게 성체 조배를 하도록 하고, 고해성사를 열심히 주었으며, 전교와 예비자 교리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본당이 내실 있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 서울교구로부터 원산대목구가 설립된 이듬해인 5월1일 에카르트(A.Eckhardt) 신부가 원산본당의 제11대 주임로 부임한다. 이때부터 원산본당은 교구의 주교좌성당이 되었다. 1921년 서울에서 오병주 선생을 초청하여 본당 구내에 야학 강습소를 개설하였는데 이 강습소는 해성학교의 기원이 되었다. 1923년 에카르트 신부의 뒤를 이어 부임한 슈미트 신부는 1924년 12월에 임시성당을 축성하고 준공식을 가졌다. 1925년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원산교구에 진출하여 본당 내에 야학, 시약소, 노인과 아동을 위한 교리강습소, 해성유치원 등을 개설, 운영하였다. 그 후 1930년 로트 신부가 덕원 베네딕토 수도원 원장으로 전임되자, 담(F. Damm) 신부가 부임, 1949년 본당이 폐쇄될 때까지 사목하였다. 1930년부터 주교좌성당 건축 계획에 따라 1937년에 성당 신축이 시작되어, 이듬해 9월25일에 2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식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했다.

 

1940년 원산교구가 덕원자치수도원구와 함흥교구로 분리되자 원산교구는 수도원구에 남게 되었고 수도원의 중심 본당으로 눈부신 발전을 하였다. 그러나 북한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교회의 재산이 몰수되었고 마침내 1949년 5월 교구장 보니파시오 주교를 비롯한 사제와 수도자들이 모두 체포되어 수감됨으로써 원산교구의 모든 본당과 함께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폐쇄되기 직전까지 원산본당 관내에는 7개의 공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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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한 살아있고, 기도하는 한 다시 만날 것입니다.”

 

지금은 한 명의 사제, 한 명의 수도자도 찾기 힘든 북녘 땅에 한국전쟁 이전에는 57개의 본당과 5만2천여 명의 신자가 있었습니다. 그 북녘 땅의 교회가 70년째 신앙의 자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는 북녘 땅의 57개 본당공동체가 다시 되살아날 때까지 한반도 평화와 북한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운동(www.mychurch.co.kr)을 펼치고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12월호, 김훈일 세례자 요한 신부(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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