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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일상 속 영화 이야기: 클로징 크레디츠

113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8-12-14

[일상 속 영화 이야기] 클로징 크레디츠

 

 

영화에서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장면이 무엇일까? ‘클로징 크레디츠(closing credits)’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엔딩 크레딧’이라고도 하는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나오고 난 뒤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영화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스태프 롤(staff rol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클로징 크레디츠가 시작되면 영화관은 불을 켜고 관객들은 자리를 떠나기 시작한다. 나 또한 그러하다. 영화가 너무 감동스러워서 자리를 못 떠나고 몇 번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클로징 크레디츠를 끝까지 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그 영화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감독, 배우, 제작팀원들에게 클로징 크레디츠는 가장 의미 있는 장면이다. 그래서 가끔 드라마에서는 마지막 회차 클로징 크레디츠에 제작과정을 촬영한 영상이나 사진을 함께 올리기도 한다.

 

영화제작을 공부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영화작업을 했다. 나를 비롯해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친구들도 상당수였고 그래서 소통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늘 돌발 상황이 일어나는 촬영현장에서 일을 해내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했던 것은 언어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였다. 때론 오해를 일으켜 길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일도 있었지만 서로의 차이를 생각하며 화해로 이어졌다. 미국인 친구들은 다른 언어로 다른 나라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면서 격려해주었고, 유학생들은 낯선 나라에서 공부하는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며 작업을 함께했다. 언어가 아니라 서로의 어려움에 대한 이해와 격려가 우리를 버티게 해 준 힘이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우리는 매일 사람들을 만난다. 가정에서, 길거리에서, 직장에서, 성당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 사람들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있다. 외국 사람들을 주위에서 보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나와 함께 학교 홍보실에서 영상작업을 하는 직원도 우리 대학교를 졸업한 인도네시아 사람이며 무슬림이다. 그 직원은 한국어를 잘하지만 아무래도 소통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어서 나와 다른 직원들의 말을 잘 못 이해할 때도 있고 종교가 이슬람이니 직원회식에서도 덕분에 삼겹살대신 소고기를 먹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불편함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서로에 대해 기본적인 믿음과 이해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12월이다. 영화장면으로 본다면 ‘클로징 크레디츠’이다. 올 한 해도 우리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던 일, 행복하게 해주었던 일도 있었지만 우리를 화나게 하고 슬프게 했던 일도 있었다. 성공했던 일도 있었지만 실패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일 안에는 영화의 ‘클로징 크레디츠’처럼 ‘사람들’이 있다. 영화도 사람들이 만들어내듯 우리 인생도 나만이 아닌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만들어낸다. 제작자라고 해서 감독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감독이라고 해서 독재자처럼 배우들과 현장팀원들이 당연히 자신의 말을 들어야한다고 강요할 수 없듯이 직위와 권한만으로 사람들을 절대 움직일 수 없다. 촬영현장의 어려움은 제작팀들의 이해와 격려로 해결하듯 우리 인생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격려, 즉 진심이다. 가끔 ‘나는 진심이었는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준다.’며 주위사람들을 원망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의 진심을 몰라주는 이유는 언어를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표현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진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강생의 신비는 나약한 본성을 지닌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세상의 고통에 시달리는 우리에 대한 격려, 즉 하느님의 진심으로 이루어진 사건이다. 그러기에 진심만이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으며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

 

올 한 해 영화처럼 만들어낸 시간의 끝에서 ‘클로징 크레디츠’에 올라가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는 진심의 시간을 가지길 기도한다.

 

[월간빛, 2018년 12월호, 한승훈 안드레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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