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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전통 가정과 가톨릭 가정8-9: 조부모의 내리사랑, 자손의 치사랑

111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8-08-18

[전통 가정과 가톨릭 가정] (8) 조부모의 내리사랑, 자손의 치사랑 (상)


제사,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계명과 다르지 않아

 

 

‘효자가 어버이를 섬김에 평소 거처할 때에는 그 공경을 극진히 하고, 봉양할 때에는 그 즐거움을 극진히 하고, 병환에는 그 근심을 극진히 하고, 초상에는 그 슬픔을 극진히 하고, 제사에는 그 엄숙함을 극진히 한다.’(「소학」〈내편〉)

 

조상제사는 세상을 떠난 부모를 비롯한 선조를 기리는 의례다. 유교의 이념을 국시로 삼았던 조선의 제사는 효심을 지속하는 데 그 뜻이 있었다. 즉 자신이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고자 하는 추원보본의 행위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는 자손이 선조를 살아있을 때처럼 모신다는 뜻으로 ‘사여생(事如生)’이라 칭해졌다. 제사상에 조상이 생전에 즐기던 음식을 올리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생선의 경우 서해안에서는 조기나 홍어를, 남해안에서는 고래나 상어를, 동해안에서는 문어를 올리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제사는 향을 피워 혼(魂)을 부르고 술을 부어 백(魄)을 부르는 강신의식으로 시작한다. 이어 술을 올리는 초헌·아헌·종헌, 제물을 권하는 축(祝), 제물을 들도록 잠시 문을 닫는 합문(闔門)과 유식(侑食), 차나 숭늉을 올리는 헌다(獻茶), 작별인사를 하는 사신, 제사에 참석한 이들이 음식을 나누는 음복의 순으로 진행된다. 제사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조상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그들을 기리고자 하는 정성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사는 세상을 떠난 조상과 살아있는 자손이 소통하는 의례다. 조상제사가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천주교의 제4계명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죽은 이에 대한 이러한 공경은 비단 자신의 조상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음력 9월 9일 중구절에 가족이 함께 산에 가서 즐기다 오는 풍습이 있었다. 그들은 우선 국화주에 국화전을 차려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 ‘떡 본 김에 제사 드린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놀라운 것은 그때 누군지 모르는 객사한 원혼들도 함께 흠향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귀하게 마련한 음식을 자신의 조상뿐만 아니라 불쌍하게 죽어 제사상조차 받을 수 없는 망자들을 위해 내놓았던 것이다. 그런 마음을 지녔던 이들이 이웃을 어떻게 대하였을까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천주교가 이 땅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이러한 제사의 의미를 곡해했다. 1784년에 이승훈 베드로가 중국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이벽, 권일신 등에게 세례를 주며 사제직분을 대행했다. 이 사실을 안 북경 교구의 구베아 주교는 1790년 윤유일 바오로를 통해 조선의 가성직제도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선에 성직자를 파견해주겠다고 약속하는 한편, 우상숭배의 우려가 있는 조상제사를 금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전라도 진산군에 살던 윤지충 바오로는 모친상을 당하자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주를 불살랐다. 그는 정약종의 외사촌으로 신심이 깊었으므로 교회의 방침에 따랐던 것이다. 그의 외사촌 권상연 야고보도 그에 동조했다. 이른바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사른 폐제분주로 인한 신해진산사건이 터졌던 것이다. 이를 안 유림들은 천주교인을 어버이도 모르고 군주도 모르는 무부무군의 난적으로 낙인찍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1791년 12월 8일 윤지충과 권상연을 불효 불충의 죄목으로 참수형에 처했다. 이 사건을 빌미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 백여 년에 걸쳐 만여 명이 넘는 순교자가 배출됐다.

 

비오 12세 교황은 1939년 12월 8일 ‘중국 예식에 관한 훈령’을 통해 조상제사가 천주교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조상에 대한 효심으로 행해지는 유교식 제사가 그리스도교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교서였다. 어버이를 사후까지 지극하게 섬기고자 한 제사의 참뜻이 십계명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 만천하에 공표됐던 것이다. 이에 따라 참혹한 박해의 구실이 됐던 제사가 이 땅의 가톨릭 가정에서 다시 거행될 수 있게 됐다.

 

오늘날 부모와 조부모의 기일에 제사를 지내는 집안이 얼마나 될까. 명절날 아침에 새 옷으로 갈아입고 차례를 지내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가톨릭 신자들은 이제 선조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위령미사뿐만 아니라 제사나 차례를 지내도 되는 시절이 됐다. 그러나 조상의 기일 밤, 또는 설날이나 추석날 아침에 온 가족이 모여 제사는 아니더라도 촛불만이라도 켜놓고 위령기도를 드리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처럼 선조를 기리는 의례가 잊혀감에 따라 생명을 전해주고 양육해준 이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을 기리고자 하는 마음도 점차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되새기게 된다. 아니, 그에 앞서 지금 살아있는 부모와 조부모에게 감사하며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삶과 죽음이 하나로 이어지고, 산 자와 죽은 자가 하나가 되는 조상제사가 오늘도 새로운 까닭이다.

 

김문태 교수(힐라리오) -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현장과 강단에서 고전문학과 구비문학을 연구해왔으며, 중국선교답사기인 「둥베이는 말한다」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가톨릭신문, 2018년 8월 19일, 김문태 교수]

 

 

[전통 가정과 가톨릭 가정] (9) 조부모의 내리사랑, 자손의 치사랑 (하)


잘 주는 것도 사랑, 잘 받는 것도 사랑

 

 

‘신체와 모발과 살은 부모에게서 받았으니 감히 상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몸을 세우고 도를 행하여 이름을 드날리는 것이 효도의 마지막이다.’(「효경」 〈개종명의〉)

 

사람의 생명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다. 부모의 육체는 조부모에게서, 조부모의 육체는 증조부모에게서 받았다. 그러므로 나의 육체는 선조로부터 대를 이어 물려받은 것이 된다. 공자는 이를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고 했다. 자식이 다치거나 불구가 되거나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부모의 심정은 어떠할까. 그야말로 분신처럼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던 자식의 변고에 억장이 무너져 내릴 것이므로 이보다 더 큰 불효는 없다.

 

이에 반해 효도의 끝은 입신양명이라 했다. 몸을 세우고 도를 행함으로써 자신이 아닌 부모를 비롯한 선조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어떤 이가 세상에 우뚝 서게 되면 사람들은 한결같이 ‘저 사람은 어느 집안의 자손인가? 어떻게 키웠기에 그처럼 훌륭한 일을 했단 말인가?’ 하는 칭찬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명을 주고 키워준 선조의 내리사랑에 대한 자손의 치사랑이 만들어낸 결과가 효도의 끝인 것이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의 하나로 장유유서를 들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는 엄격한 차례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기」 〈악기〉에서 음악은 천지를 화합케 하고, 예의는 천지를 질서 있게 만든다고 했다. 예로부터 국가 차원에서 예악을 중시한 까닭이었다. 맹자는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준 본성으로 인의예지를 들었다. 어질고, 의롭고, 지혜로운 심성과 더불어 예의 바른 마음이야말로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다. 어른과 아이, 선조와 자손, 형과 아우 간에 차례가 있으므로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질서 있게 유지되는 것이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는 속담이 적절하다.

 

「맹자」 〈양혜왕 상〉에 제나라의 선왕이 맹자를 만나자 왕 노릇하는 방도를 묻는 대목이 나온다. 이에 맹자는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공경하여 그 마음을 남의 아버지와 형에게까지 미치게 하고, 내 아이를 사랑하여 그 마음을 남의 아이에게까지 미치게 하면 천하를 손바닥 위에서 움직일 수 있다고 대답했다. 집안에서처럼 밖에 나와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한다면 사회의 질서가 바로 잡히고, 나라가 바르게 다스려지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윗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지극히 간단하였다. 「동몽선습」 〈장유유서〉에 따르면 ‘천천히 걸어서 어른보다 뒤에 쳐져 가는 것을 공손한 태도라고 이르고, 빨리 걸어서 어른보다 앞서 걸어가는 것을 공손치 못한 태도라고 일컫는다. 어른은 어린 사람을 사랑하고, 어린 사람은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젊은이를 업신여기거나 어른을 능멸하는 폐단이 없어져 사람의 도리가 바로 설 것이다’라고 했다. 내리사랑과 치사랑이 예의의 근본이자 세상이 바로 서는 근원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고 있다.

 

경주에 12대에 걸쳐 300여 년 동안 만석꾼을 유지했던 집안이 있었다. 그 최부자집의 가훈이 인상적이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마라.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삼 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인간에 대한 애정과 욕심에 대한 절제가 묻어난다. 이러한 미덕은 내리사랑을 통해 선조로부터 자손에게 대물림되었고, 자손은 치사랑을 통해 그러한 선조의 뜻을 기리고 이어나가고자 했다. 잘 주는 것도 사랑이고, 잘 받는 것도 사랑이다. 내리사랑과 치사랑의 공존은 온전한 사랑을 완성하는 한편, 가정을 융성케 하는 비결이 아닐까.

 

오늘날 조부모와 손자녀의 관계가 밝지만은 않다. 부모의 사망이나 이혼이나 일자리 등의 문제로 인해 조부모가 손자녀를 양육하는 소위 조손가정이 급격히 늘어가는 추세다. 통계청의 2016년 집계를 보면, 조부모와 미혼 손자녀가 함께 사는 경우가 42,819가구로 138,701명이며, 조부 또는 조모와 미혼 손자녀가 함께 사는 경우가 66,422가구로 149,198명이다. 3세대 가구가 아닌 ‘2세대 가구’로 분류된 조손가정은 조부모와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정상적인 가정이 아님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조부모와 손자녀 사이에 마땅히 있어야 할 부모가 가정에 없으므로 애잔함과 아픔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조부모와 부모와 손자녀가 3세대로서 조화롭게 지낼 수 있을 때 온전한 내리사랑도 있을 것이며, 그러한 사랑을 받고 자란 자손도 훗날 치사랑으로 온전히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결손이 없는 가정을 꾸리기 위해 힘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때 ‘손자들은 노인의 화관이고 아버지는 아들들의 영광이다’(잠언 17,6)라는 말씀이 실감 날 것이다. [가톨릭신문, 2018년 8월 26일, 김문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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