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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일상 속 영화 이야기: 영화와 피칭

106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7-12-11

[일상 속 영화 이야기] 영화와 피칭

 

 

지난 10월 27일에 제4회 가톨릭영화제 사전제작지원 프로그램 공개피칭 심사위원을 맡게 되었다. 내년 가톨릭영화제의 주제인 ‘평등과 존중’의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영화를 선정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피칭(pitching)이란 감독이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영화에 대한 내용을 재정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제작자나 영화 관계자들 앞에서 소개하는 행위를 말한다. 일종의 프리젠테이션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올해 심사위원으로는 영화 〈실미도〉 등 수많은 흥행 영화를 제작한 한맥문화기획과 씨그널픽쳐스의 김형준 대표님과 매일경제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및 KBS1 교양프로그램 ‘부네스코위원회’ MC를 맡으며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 전임교수로 활동 중인 배우 이인혜 교수님, 영화 〈숙희〉의 연출을 맡은 양지은 감독님, 국제미래학회 미래한류문화위원장과 한국방송비평학회 부회장인 홍익대학교 영상대학원 박장순 교수님이 수고해주셨다.

 

 한국 영화계와 방송현장에서 유명하신 분들과 함께 심사할 자격은 없지만 가톨릭영화제라는 성격상 영화제작을 공부한 신부가 필요했기 때문에 심사위원이 되었다. 공개피칭 중에 그분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교육자로서 날카로운 질문을 감독들에게 쏟아냈다. 2년 전 겨우 영화학교를 졸업한 나는 그런 질문을 할 필요도 없었고 할 수도 없었다. 가톨릭사제로서 나는 이렇게 질문을 했다. “왜 인간이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나만의 느낌일까? 순간 심사장소의 분위기가 잠시 숨을 멈추는 듯했다. 아마도 그 질문을 들은 피칭하러 온 감독의 당황스러운 표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날 참석한 대부분의 감독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했지만 비슷한 표정을 지었고 아무도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심사를 마친 후 두 편의 선정작을 고르는 회의 중에 다른 심사위원들이 나의 질문을 듣고 ‘저 감독은 오늘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일곱 명의 감독들이 피칭한 작품 주제와 내용이 ‘탈북자, 비정규직, 장애인, 코피노, 내부고발자와 다문화 가정’에 관한 것이었다. ‘평등과 존중’라는 단어에서 떠올릴 수 있는 주제들이다. 영화현장에서는 그런 것을 클리쉐이(cliché)라고 부른다. ‘뻔하고 상투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주제와 내용만이 상투적이라고 해서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니다. 주제가 ‘평등과 존중’인데 아무도 인간이 왜 평등해야 하는지, 왜 인간은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작품 속에 전혀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조금 과한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날 그 감독들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들의 영화의 주제로 선택한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과 무시를 당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수업시간에 똑같은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진다. “왜 인간은 평등해야 하는가?” 대부분 학생들이 “인간이잖아요, 인간은 당연히 그래야 하니까요.”라며 너무 당연한 것을 질문한다는 식으로 반응한다. 그러면 나는 다시 ‘인간이 뭔데?’라고 질문한다. 대부분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대답하지 못한다. 초·중·고등교육 12년을 받았지만 이런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을 들어본 적도, 고민해본 적도 없는 것이다. 『사피엔스』를 써서 주목받고 있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자유, 평등…생물학에는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유전학적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자유와 평등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즉 무신론(無神論)적 진화론(進化論;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으면 오직 생물학적 진화만이 존재한다고 주장)에서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진화론에서는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불평등과 차별은 당연한 자연의 법칙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을 진화론에서 찾는 많은 사람들이 모순적으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데 적극적인 경우가 많다.

 

인간이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본질이 ‘영혼’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그 무엇이 모든 인간의 본질일 때 생물학적 환경적인 차이를 넘어서 모든 인간이 자유와 평등을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본질이 ‘영혼’이라는 것은 하느님의 존재를 받아들일 때만 설명될 수 있다.

 

 2017년도 이제 한 달을 앞두고 있다. 예년처럼 올해도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는 표현을 영화의 클리쉐이(cliché)처럼 쓸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올해는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작년에 제기된 국정농단이라는 정치적, 사회적 이슈는 전국을 들끓게 했고 결국 올해 5월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고 또한 반대로 태극기를 들었으며 아직까지도 정치적 공방은 이어지고 있다. 놀라운 것은 서로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데 내용은 ‘평등, 인권, 존중’ 등 인간의 가치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 과연 몇 명이 ‘왜 인간은 평등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했으며 답을 가지고 있을까? 인간의 본질에 관한 질문과 고민이 없다면 그것은 한낱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이익을 위한 투쟁일 뿐이다. 우리는 신앙인이면서도 각자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시각에 매몰되어 신앙인으로서의 본질적인 질문과 고민에서 멀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12월에 쓰는 글에 클리쉐이한 마무리이지만 한 해의 마지막에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자신의 삶과 의미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인 것 같다.

 

[월간빛, 2017년 12월호, 한승훈 안드레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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