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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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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ㅣ미사
[전례] 전례 톡톡: 부모가 아이들의 세례를 결정합니까?

193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7-11

[전례 톡톡] 부모가 아이들의 세례를 결정합니까?

 

 

제 친척인 어느 부부는 유물론적 사고를 갖고 있어서 자기 딸이 세례 받는 걸 원하지 않아요. 그 무죄한 영혼의 구원이 무척 걱정스러운데, 제가 몰래 그 아이한테 세례를 주면서 물을 붓고 기도를 바쳐도 될까요? - 필리네 발다르노에서 로마노

 

 

유아 세례의 결정은 전적으로 부모의 몫이죠. 따라서 몰래 세례를 주는 모든 시도는 누가 하든 부모의 천부적인 권리를 심각하게 해치는 불법 행위지요. 제 생각엔 교회의 뜻도 거스르는 행위이니 그 유효성에 의문이 생기네요.

 

교회 규정에 따르면 죽을 위험이 임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녀의 세례에 대한 권한은 오직 부모에게 있어요. 완전한 자유로, 충분한 숙고를 거친 다음, 신앙의 동기로 결정하는 것이지, 사회적 편리성 때문에 결정해서도 안 되고, 자기 자식이 영원한 구원을 못 받을까 두려워 결정해서는 더더구나 안 되지요.

 

 

신앙 교육이 보증돼야 함

 

공의회 이전 시대와 달리 부모의 책임이 커졌어요. 아이를 데리고 성당에 와서 예식에 참여하고, 대부 대모와 같이 예식 규정의 동작들을 따라하며, 특히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즉 ‘마귀를 끊어버림과 세례 서약’을 고백하는 등, 모두 바로 부모가 할 일들이죠. 세례 받은 자식이 계속 신앙 교육을 받도록 챙기고, 자유와 책임을 갖고 신앙에 동의해서 세례의 충만한 완성에 이르게 하는 것, 이는 언제나 부모의 의무지요.

 

그러므로 오늘날 정말 중요한 것은 세례 예식을 거행했다는 사실이 아니에요. 세례의 참되고 완전한 신앙적 의미, 세례의 미래,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영세자의 생활 체험 등이 중요하죠. 여기에 포함된 견진성사와 성체성사라는 두 후속 단계도 중요해요. 세례는 그리스도인 양성의 시작이고, 성숙은 교회 공동체 안에 완전히 통합되어 매주일 성찬례를 신앙으로 거행해 가면서 되는 거에요.

 

하지만 사회의 심원한 변화 때문에 이 같은 그리스도교 생활 계획에 차질이 생겼어요. 사회가 그리스도교의 모습과 정신을 잃어버렸어요. 신앙의 성장을 더 이상 도와주지도 않고, 오히려 가로막기까지 하죠. 그래서 교회가 먼저 선수를 쳐서 가정이 책임지고 본당에서 지원하도록 정했어요. 영세자가 믿음의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적합한 토양을 만들려는 거였죠.

 

1980년 신앙교리성이 펴낸 「유아 세례에 관한 훈령」이 가장 권위 있고 가장 중요한 문헌이에요. 훈령은 가정을 신자 가정, 냉담자 가정, 비신자 또는 비그리스도인 가정, 이렇게 세 가지 상황으로 나누어 생각해요. 문헌은 여기서 마지막 경우에 대해 부모가 요청해도 세례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해요. 하지만 유아가 커서 언젠가 세례를 청할 것을 예상하며 아이의 이름을 교회에 등록하는 예식은 허용하고 있어요. 이는 세례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고 협박이나 압력도 아니에요. 말하자면, 가정에 책임을 지우고 성사의 진지함을 이해시키기 위한, ‘교육의 연기’(31항)인 거죠.

 

 

스스로의 선택을 위한 도움

 

다른 한편 아이의 이름을 등록하는 고유 예식이 있다는 것은 – 교회에 입문하고 예비 신자로 받아들여지는 예식과 이를 혼동해서는 안 됨 –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책임을 갖고 돌보겠다는 뜻이에요. 나중에 학교에 다니는 시기가 오면 아이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우려는 거죠. 이탈리아와 여러 다른 나라들에서 다들 그렇게 하고 있어요(해당 나이에 맞춘 고유 예식서도 발행됐어요). 교회는 부모의 생각과 행위를 존중하고 어떠한 심리적 압박도 주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이와 아이의 가족을 방치하지도 않아요. 등록 예식을 통하여 분별력과 살아있는 사목 감각으로써 복음화 활동에 뛰어들어요. 그렇게 해서 대화와 우정의 분위기를 형성하죠.

 

아이는 그렇게 복음화하고 맞아들이는 교회의 기도와 활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살게 되는 거지요. 이는 교회의 중재를 통해 그리스도교로부터 나오는 은총의 영역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부모와 매우 신심 깊은 친척들이 아직 세례 받지 못한 아이를 두고 하느님께 사랑 받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살 이유는 없어요. 세례를 영원한 구원을 위한 안전 통행증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새로 태어남’이에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여 신자 공동체 안에서 주님의 영에 따라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거지요.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의 구원을 원하셔요. 여기서 제외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비신자 부모를 둔 세례 받지 못한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하느님께서는 세례 받지 못한 이들도 사랑하신다

 

세례는 교회에 맡겨진 통상적인 수단이에요. 교회는 그밖에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해요.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정해놓으신 조건, 즉 신앙과 복음화라는 조건이 맞지 않아서 세례를 줄 수 없을 때에는,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맡기는 거죠. 하느님께서는 성사의 노예가 아니시니, 우리에게 계시된 적 없는 어떤 방법을 찾아내셔서 이 무죄한 피조물들을 당신의 영광 안으로 받아들이실 거에요. 세례 받지 못한 유아 장례식에서 바치는 교회의 기도가, 성급하고 은밀하며 마법 의식처럼 보일 위험이 있는 예식보다 효과가 적다는 생각은 있을 수 없어요.

 

오직 죽음의 위험에 있을 때만 부모가 모르는 상태에서도 세례를 주는 것이 합법이지만, 최근의 전례 규정은 소위 핵심 기도문을 바치는 것 외에도 신자 단체의 참석과, 독서와 기도문을 조합한 짧은 예식의 거행을 요구하고 있어요.

 

(R. Falsini, La liturgia. Risposta alle domande più provocatorie, San Paolo, Cinisello Balsamo 1998, 77-80)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9년 여름(Vol. 46), 번역 최종근 파코미오 원장수사(성 베네딕도회 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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