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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0년 7월 12일 (일)연중 제15주일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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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대희년 그 뒤 20년 한국 교회의 과제(지상 좌담)

57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1-20

[경향 돋보기 - 지상 좌담] 대희년 그 뒤 20년 한국 교회의 과제

 

 

2020년 새해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교서 「제삼천년기」를 통해 선포한 2000년 대희년 이후 20년이 되는 해이다. 본지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의욕적으로 출발한 새로운 천년기의 초입인 지난 20년 동안 한국 교회의 삶을 성찰하고, 새로운 시대 한국 교회에 던져질 복음적 도전을 전망하면서 이에 부응하는 첫해로 2020년 한국 교회의 과제는 무엇인지 논의해 보았다.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를 대표하여 박문수 프란치스코 박사(가톨릭 평신도 영성연구소장), 강신숙 티모테오 수녀(성가소비녀회), 정희완 요한 신부(안동교구)가 논의에 참여했다. - 편집부

 

 

[한반도 평화] 지난 20년 동안 한반도를 둘러싸고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교차하는 시기를 보냈다. 2000년의 6.15 선언과 2007년의 10.4 선언 등으로 남북 화해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듯 보였지만, 이후 정부들에서는 냉전 시대에 버금갈 정도의 위기 상황도 있었다. 현 정부 초기에 새로운 평화 시대가 도래하는가 싶었지만,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은 급속하게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박문수 - 거시적으로 보면,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동북아뿐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국제 질서 변동과 관련이 있는 현상으로 본다. 동북아에서는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미국의 ‘역외 균형자’ 역할을 불가피하게 조정할 필요가 생겼다. 중국은 1951년에 형성된 미·일 중심의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변경하고자 하고, 미·일은 이 도전을 억제하면서 현재의 세력 범위를 인도까지 확대하려고 한다. 이와 함께 일본은 미국이 동북아를 떠날 때를 대비해 주변국의 위협에 대처하려 한다(평화 헌법 개정, 군비 증강 등). 지구적 차원에서 이런 세력 전이에 따른 국제적 긴장은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되기에 현 상황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교회가 할 일이 적지 않다. 우선 교회가 지닌 세계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도모하는 민간 외교에 기여할 수 있다.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도 대북 인도적 지원, 지금 날마다 바치는 밤 9시 기도, 남한 내에서 북한을 둘러싼 남남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하는 일 등을 통해 기여할 수 있다.

 

강신숙 - 남북을 중심으로 열강과 얽혀진 동북아 문제는 단 한 차례도 쉬운 적이 없었다. 요소마다 지뢰밭이라 할 만큼 위험하고 복잡한 셈법이 가로놓여 있고, 이럴 때마다 국민들은 이해관계와 거리를 둔 믿을 만한 나침반이 필요했다. 교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물론 남북문제는 정치적 이해가 첨예해서 정권의 유불리에 따라 ‘정치적 중립’이라는 또 다른 프레임으로 교회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교회가 모든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의연하게 평화의 견인 역할을 해 나갈 수 있길 바란다.

 

평화를 위한 교회의 노선이 좀 더 선명해져야 한다. ‘그리스도인 정체의 본질이 평화’(마태 5,9 참조)인 만큼 교회는 한반도를 지배해온 안보 패러다임의 우상을 해체하고 적대적 이념과 편견, 색깔 프레임을 걷어 내야 한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를 통한 민간 교류 협력과 상호 연대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희완 - 분단 문제와 이념 문제에서 한국 사회는 첨예한 대립과 갈등의 분위기 속에 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무엇인가를 말한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 화해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주교회의 차원에서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뿐 아니라 남북 간 교류에 대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민족화해위원회 활동과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사업 차원에만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 평화와 화해는 복음적 가치의 핵심이다. 평화와 화해라는 복음적 가치의 토대 위에서 남북 문제에 대해 교회의 입장을 표명할 수 있어야 하고, 신자들의 신앙생활 속에 그 복음적 가치들이 내재화될 수 있는 신앙 교육과 문화 운동이 요청된다.

 

 

[부정적 사회 문화의 확산] 20년 동안 국가 사회적으로 많은 사건이 있었다. 세월호 사건과 같은 비극적 사건들이 있었고, 최근 들어서 성희롱과 성폭력, 집단 괴롭힘, 사회적 고립과 자살, 중독, 사회 소수자와 빈곤층에 대한 혐오와 배제 등이 증가하고 있다. 다양한 사회 문화적 현상은 그대로 우리 신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일본 교회를 사목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에 대한 사목적 대응을 주문했는데, 이런 죽음의 문화에 대한 한국 교회의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가?

 

강신숙 - 사회 내에서 교회의 공적 역할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가 겪는 진통과 질병에 대해 교회는 어떤 관심을 기울였는지 돌아보게 된다. 최근의 심각한 사회 문제들은 폭력이 얼마나 일상화되었는지 새삼 알게 했다. 교회는 신자들이 본당과 가정, 학교, 직장 등지에서 폭력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교회 내에 폭력과 죽음의 문화를 인지하는 감수성 훈련과 피해자들을 위한 치유 그룹이 운영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최근 SNS 발달로 폭력적 상황이 실시간 노출되는 일은 긍정적인 측면보다 선정적으로 소비되는 가학적 측면이 더 강하다. 이런 현상이 폭력에 대한 또 다른 무감각을 초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폭력은 실제로 피해 당사자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나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다면 개선되기 어렵다. 교황의 지적대로 교회가 ‘불의한 사회 구조 안에서 굳어져 버린 악’을 제거하는 실제 방법이 절실하다.

 

정희완 -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적 성장 논리가 한계에 부딪히고 생존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경제적 불확실성은 점점 생존과 불안정성에 대한 두려움을 높이고 있다. 경제적 불확실성과 더불어 문화적 불안이 증가하고 있다. 곧 지난 시절에는 차이가 다양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었지만, 이제는 혼란과 불안을 조장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정치적 소외(대의 민주주의에서 자신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함), 경제적 소외(경제적 양극화 상황에서 상대적 박탈감), 문화적 소외(자본주의의 고급 문화의 향유에서 배제되는 현상)현상이 확대되고 있다.

 

개인주의 경향이 사라지고 점점 특정한 집단과 공동체에 소속되기를 택함으로써 불안과 소외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이념과 집단행위를 통해 결속력을 다지는 집단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하여 집단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그들을 혐오하고 차별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려 한다.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경계와 배제, 혐오와 차별의 사회 문화와 현상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사회의 전문가들과 교회의 사람이 모여, 복음적 관점에서 사회 현상들에 대해 어떻게 분석하고 대응할 것인지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올바른 사회적 가치들에 대한 여론화와 담론화 작업을 하고, 그를 토대로 교육과 사회 문화적 실천을 수행해야 한다.

 

박문수 - 교회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늘 자신의 역할을 세상과 대비시켜 ‘산 위의 마을’, ‘대조 사회’, 그리고 ‘어머니와 교사’ 역할로 인식해 왔다. 이런 역할을 잘 수행하면 교회가 세상에 대고 외치지 않아도 세상은 교회를 달리 볼 것이다. 한국 교회가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다면 원인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생태 환경] 생태와 환경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범아마존 지역 교회들을 위한 주교대의원회의 특별 회의를 개최하였고, ‘생태에 반하는 죄’를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포함시킬 것을 검토하겠다는 해외 기사도 소개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2016년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가 발족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교구와 본당 안에서도 이를 담당하는 단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생태 환경 문제에 대해 교회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강신숙 - 2019년에는 생태를 주제로 한 주교대의원회의 특별 회의가 열렸고, 유엔 기후 변화 정상 회의가 있었는데도 올해 각 교구 사목 교서에서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교회는 생태계 대멸종 앞에 선 인류와 한국 사회에 경고를 보내야 한다. 지구적 재난은 교회 혼자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사회 각계가 모여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논의해 나가야 한다. 현대의 예언자들은 문명의 대전환 외에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이제 더는 자본가들의 거짓 선전이나 시장 만능주의자들의 손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이들의 계획을 저지하려면 좀 더 다양한 전략과 연대가 요구된다.

 

교회는 토마스 베리 신부의 생태대(Ecozoic Times) 진입을 위한 포괄적인 비전을 참조할 수 있다. 수십억 년을 내려온 생명의 신비가 어떻게 반세기도 안 돼서 망가졌는지를 각성케 하는 지구적 감수성과 자각이 일상의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구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생태 영성’이 교육과 캠페인, 의식화 운동에 연계되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촉구한 ‘생태적 회심’, 생태적 생활로 이어지도록해야 한다.

 

정희완 - 교회 차원에서 보면, 오늘날 생태 환경 문제는 사회의 다른 영역과 달리 그 갈등이 첨예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아직은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신자들의 관심과 집중을 불러일으키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분명히 생태와 환경은 미래 세대에게 더 깊은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한편으로 당대의 중심 세대는 지금 편안함과 편리함을 포기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교회는 생태 환경 문제가 갖는 이러한 간격에 대해 더 깊은 이해와 설득력 있는 선포가 요청된다.

 

박문수 - 프란치스코 교황이 「찬미받으소서」에서 행한 가르침, 또 일본 나가사키 방문에서의 비핵 선언을 한국 상황에 맞게 실천 과제로 삼아 이행해 나가면 되리라 생각한다. 이 분야에서 방향과 과제는 늘 명확하였다. 더 이상 실천을 미루지 않기를 소망한다.

 

 

[유사 종교 대책]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와 같은 유사 종교들의 폐해가 교회 안팎에서 자주 이야기되고 있다. 한국 교회 차원에서도 이에 대한 대책으로 관련 위원회나 상설 상담소 등을 설치해서 대응하고 있다. 이에 대한 현실적이면서도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박문수 - 유사 종교들이 세력을 확대하는 시기는 대부분 기존 종교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이다. 이들은 불완전한 답이나마 동시대인들이 궁금해 하고 갈망하는 바에 답을 주려 한다. 이에 많은 이가 현혹된다. 마음이 급하면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가 제시할 수 있는 근본 해결책은 무엇인가? 단기간에 효과를 보기 위한 것이라면 뾰족한 방법이 없지만, 중장기 대안이라면 생각해 볼 수 있다. 신자들이 이에 현혹되는 가장 큰 이유는 소속감 상실에서 찾을 수 있다. 두 번째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오는 정신적 혼돈이다. 마지막으로, 믿을 수 있는 종교 지도자의 부재이다. 이를 원인으로 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공동체의 친교와 교리적 충실성을 강화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시하는 시대의 대안들을 지역 교회 차원에서 구체화하며, 가난하고 겸손한 사제상을 실천하는 것이다.

 

정희완 - 유사 종교와 사이비 신앙의 폐해는 단순히 교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교리 차원에서 유사 종교의 가르침이 오류라는 것을 증명하고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먼저, 유사 종교의 성행은 교회의 전례와 생활, 교회 문화가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임을 인식해야 한다. 머리(이성, 교리, 사유)와 마음(감정과 정서)과 몸(욕망과 단련)의 차원 모두를 포함하는 신앙생활이 요청된다. 유사 종교와 사이비 신앙은 무엇보다 사람들의 감정과 정서와 욕망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들에 대한 단순한 비판만으로 사람들을 교회로 돌아오게 할 수 없다. 건강한 방식으로 감정과 정서를 고양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신앙적으로 정화할 수 있는 살아있는 전례가 요청된다.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교회 생활과 문화가 필요하다. 사람들을 성찰적이고 깨어있게 하는 교육과 문화 운동이 이루어질 때, 유사 종교의 폐해는 줄어들 수 있다.

 

강신숙 - 유사 종교가 확산될 때마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대부분 우리는 유사 종교를 사람들의 결핍된 욕구들을 말초적으로 채워 주는 현상 정도로 치부한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분명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다. 사람들은 유사 종교를 통해 자신의 결핍들(질병, 고독 등)이 치유받는다고 믿는다. 유사 종교는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파고들어 이들이 소속감과 동일체 의식을 갖게 하고 안전함을 느끼게 한다. 이런 현상이 물질화된 사회의 한 단면이긴 하지만 무조건 무시하기엔 석연치 않다.

 

교회는 지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보듬고 환대했는지, 지나치게 정형화된 태도로 접근한 것은 아닌지, 미사 중심의 신앙생활이 공동체성을 어떻게 체험하게 했는지 검토할 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개인주의와 세속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본당 공동체의 냉랭한 분위기, 문제를 대하는 관료적 태도가 사람들을 떠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했다(「복음의 기쁨」, 63항 참조). 관련 위원회나 상담소 설치와 같은 대책의 실효성이 의문이다. 그보다는 환대와 치유, 나눔, 따뜻함 같은 정서적 가치들이 공동체 내부를 결속시키는 원천이 되지 않을까? 추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따뜻한 공동체를 알아본다.

 

 

[통계로 본 한국 교회] 대희년 이후 20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를 비롯한 교회의 통계 지표는 입교자와 주일 미사 참석자의 급격한 감소, 그리고 냉담 신자의 증가로 요약할 수 있다. 2000년에 17만 명이던 세례자 수는 2018년에는 절반으로 줄었고, 29%였던 미사 참석률은 2018년에 18%까지 감소했다. 아동 청(소)년 세대의 감소와 신자 고령화, 그리고 유아 세례, 첫영성체, 주일 학교 교육 등 미래 세대로의 신앙 전수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점도 통계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런 외적 지표들이 우리 교회와 신앙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한국 교회는 어떤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까?

 

강신숙 - 극도의 경쟁과 불투명한 미래 상황은 한국 사회 출산율 저하의 일등공신이다. 이런 사회에서 교회는 신자들 통계 수치에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을 통찰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편이 더 낫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은 이 사회가 얼마나 불행한 사회인지를 반증하는 수치다. 그러니 이제는 진부한 신앙의 레토릭에서 벗어나 사회와 연결된 사목 마인드로 전환해야 한다.

 

김용균과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개선이나 정규직 전환, 상생의 문화를 위해 함께 싸우는 것이 더 감동적이다. 소외된 이들이 교회를 자신들의 편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통계 수치가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복음적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희망을 주고, 함께 동고동락했던 교회를 잊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인구 조사를 감행했던 다윗을 왜 치셨는지’(2사무 24장 참조)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교회가 살길은 사회적으로 예언자적 역할을 감당하는 것, 그래서 더 큰 신뢰를 얻는 길밖에 없다.

 

박문수 - 지난 20년 동안의 통계 추이에서 드러나는 지표의 하강 국면은 사실 우리 교회만이 아니라 한국 종교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 종교 일반이 이 현상을 경험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종교와 교회가 동시대인들이 직면해 있거나 겪는 문제들에 대해 해결 능력을 보여 주지 못했고, 시민들이 그렇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 혁명, 동서융합, 탈제도적 종교성 확대가 예상되는 가까운 미래에는 이 평가가 더 심각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교회가 이 추세를 거스르진 못해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이미 대부분 영역에서 종교의 역할 범위가 협소해졌기 때문에 먼저 종교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은 평화와 환경 보전이다.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복음의 기쁨」,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길을 보여 주셨다. 한국인들은 현재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국인이

놓인 이러한 어려움에 우리 교회가 기여할 수 있다면 추세를 늦추는 정도를 넘어 반등도 가능하다.

 

정희완 - 통계 지표가 보여 주는 것은 단순한 교세 감소가 아니라 신앙의 역동성 감소와 상실을 뜻한다. 외부적으로는 고령화와 지방 소멸이라는 사회적 현상, 종교와 신앙의 수행 방식의 변화라는 종교적 현상이 맞물려 있다. 내부적으로는 현상들에 대한 적절한 대응과 쇄신을 하지 못해 온 교회 시스템의 문제다. 총체적 부실을 한꺼번에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이란 없다.

 

근본적 발상의 전환이 요청된다. 교회 생활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전례, 주일 학교 운영, 신앙 교육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유지와 지속이 아니라 해체를 통해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최근 독일 주교회의가 평신도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교회의 미래를 성찰하고 설계하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공동합의성의 실천이 절실히 요청된다.

 

노인 사목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 세대로의 신앙 전수다. 냉정하게 현실을 말하면, 오늘의 교회는 점점 고령화되어 가고 있지만, 기성 세대들이 여전히 자본과 힘을 갖고 있기에, 아쉬움과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함께 걸어가는 교회]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초기부터 교회 내 성직주의의 문제를 제기하였고, 최근에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에 대해서 강조하면서 ‘함께 걸어가는 교회’, 곧 공동합의성에 대해 강력하게 권고한다. 공동합의성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정신은 무엇이고, 이와 관련해서 한국 교회가 보편 교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또 구체적으로 교구와 본당 안에서 이 정신은 어떻게 실천될 수 있을까?

 

강신숙 - 공동합의성은 하느님 백성이 동등한 품위와 사명, 각각의 은사와 소명을 통해 교회를 이루고 그 사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동합의성을 꺼내든 이유도 주변부로 내몰렸던 하느님 백성을 중심에 세워 교회 사명에 참여하게 하기 위함이다. 공동합의성은 이미 그 자체로 성직 중심주의의 비판을 전제한다. 공동합의성의 성패는 사목적 회심에 달려 있다. 사목 평의회,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교구 시노드와 같은 조직이 존재한다 해도 현재 한국 교회 상황에서는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계를 지닌다.

 

본당과 교구, 지역 교회가 함께 참여하는 새로운 방법이 모색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소통 과정에서 배제되었던 청년, 노동자, 농어민,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을 포함시켜야 한다. 그들은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려면 기존의 조직도를 해체하고 공동합의체적으로 새 판을 짜야 한다. 이 판은 잘 짜인 조직으로 출범하기보다 일단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서 이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아무도 긴장하는 일 없이 하느님 백성이 주도하고 공동 책임을 지는 성숙한 교회로의 성장을 시작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자체가 혁명이 될 수도 있다.

 

박문수 - 공동합의성을 한국 교회에서 실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삼아야 할 정신은 평신도를 교회 대부분의 일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공동 참여’가 핵심이다. 현재까지는 평신도를 참여시킨다고 해도 형식적이었다. 따라서 이 형식적 참여를 실질적인 참여가 되게 하는 것이 공동합의성 실현의 관건이다.

 

여기에는 사제 중심의 방식에서 수도자, 평신도가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수평적 운영 규칙이 절실하다. 신자들은 교회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제나 수도자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제껏 이러한 이유를 들어 사제와 수도자가 일방적으로 권위를 행사해 왔다. 그러나 사제의 성사 거행을 제외하고는 교회 운영과 관련된 일들에는 신자들도 참여할 수 있다.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시간이 걸려도 기다려 주고 양성하다 보면 신자들도 달라질 것이다. 공동합의성은 효율성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 교회는 보편 교회 안에서 활력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교회들 가운데 하나이다. 세속적 기준으로 볼 때 신자들의 수준도 높은 편이다. 게다가 한국 시민 사회의 수준도 세계적이다. 이러한 조건을 고려할 때 한국 교회가 공동합의성을 모범적으로 실천하면 보편교회에 반드시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정희완 - 공동합의성에 대한 새로운 강조는 제도와 조직으로서의 교회보다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신학적 성찰에서 출발했다. 새로운 신학적 상상이 현실화되려면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공동합의성이란 교회의 사목적 행위들 안에 주교, 사제와 부제, 수도자, 평신도 등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교구와 본당의 사목 계획 수립 과정에서부터 참여가 필요하다. 평신도들이 사목의 대상으로만이 아니라 사목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무엇보다 성직자들의 회심과 사목적 상상력의 발휘, 그 전환이 출발점일 수밖에 없다.

 

 

[주교회의의 역할] 공동합의성의 관점에서 대희년 이후 지난 20년 동안 해 온 한국 주교회의의 역할에 대해 평가할 수 있을까? 앞으로 주교회의는 한국 교회와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강신숙 - 하느님 백성을 교회의 중심에 놓기를 원한다면 주교회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격과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주교회의 일정 중 단 하루만이라도 교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해서 소리를 내고, 토론을 거칠 수 있는 장이 마련되길 바란다. 본당 신부, 사목회 대표, 여성, 노동자, 수도자들, 사회적 약자들이 주교회의에 참석해서 직접 의견을 내고 경청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러면 각계의 사람들이 교회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허심탄회하게 들을 수 있고, 여기서 모인 소리를 교구의 사목 방향에 참조할 수도 있다. 주교회의 자체가 살아 있는 장으로서, 교회와 사회에 신뢰받는 기구로서, 복음화의 실제 이정표요 사회 정의와 평화, 창조 보전의 미래를 선도해 나가는 권위적 기구로서 거듭날 기회다.

 

박문수 - 한국 주교회의는 한국 사회에서 아직 신뢰를 잃지 않고 있다. 시민사회, 정부가 추구하는 일들 가운데 교회와 충돌하는 이슈들이 더러 있어 불편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으나, 나머지 이슈들에 대해서는 주교회의가 권위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물론 이 목소리가 권위를 얻을 수 있으려면 동시대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이를 도울 수 있는 이들이 주교회의 산하 각 위원회에 있다. 이들을 적극 활용하면 국민, 신자 모두에게 설득력이 있는 답변을 제공할 수 있을 터이다.

 

정희완 - 한국 교회가, 보편 교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지역 교회가 담당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왔다고 말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한국 교회는 전국적 차원에서의 사목적 역할보다는 교구적 차원에서의 사목적 수행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교구장 주교는 교구의 통치권자이지만 보편 교회에 대한 사목적 책무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개별 교구의 일에만 매몰되지 말고 교구의 경계를 넘어서 사목적 행위를 해야 한다. 미국이나 독일 주교회의의 모습과 비교했을 때, 한국 주교회의는 교회와 사회 차원에서의 사목 책무에 소홀했다는 느낌이 든다. 주교회의 차원에서 선포와 사목적 활동이 많아지길 희망한다.

 

 

[지난 20년 한국 교회 사목 실천] 대림 제1주일을 기해 전국 교구들에서 많은 사목 계획이 제시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교구들은 보편 교회와 발맞추어 새로운 복음화, 가정 사목, 소공동체, 청년 사목, 사회 사목 등 다양한 사목 영역에서 이를 실천하고자 노력해 왔다. 지난 20년 한국 교회의 사목 실천은 어떠했나?

 

박문수 - 한국의 여러 교구는 대희년을 전후하여 교구 시노드를 진행하였다. 새 천년기를 앞두고 보편 교회와 발맞추려는 시의적절한 선택이었다. 시노드 과정과 결과물 모두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하였다. 시노드 형식을 취하지 않은 교구도 대부분 중장기 사목 계획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목 회의에 버금가는 시도였다. 한국 교회가 당대의 도전에 부응하고 미래를 준비하려는 선택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결정한 일들이 이후 얼마나 실천되었는가? 그리고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는가? 아마 다들 만족스러운 답을 하지 못할 터이다. 세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첫째, 사목 현장에서 올라온 다양한 요구가 최종적으로는 두세 가지 사목 영역으로 축소되었다. 중점을 설정한다는 면에서는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신자들이 교회 생활에서 변화 여부를 느끼기에는 부족하였다. 둘째, 중장기 사목 계획을 세웠으면 단기적 성과에 머물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성직자 중심의 교회 문화를 바꾸려는 의지가 부족했다. 양성은 시간이 걸리니 우선 급한 일부터 처리한다는 생각이 지배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목 회의에서 제기되었고, 대희년을 앞두고 열린 시노드에서 다시 확인되었으나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한국 교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정희완 - 지난 20년 동안 사회 현실과 지역 상황에서 파생되는 사목적 도전들에 대한 개별 교구의 대응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형식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되었다. 하지만 사목 계획의 수립과 실천 방식의 구성에서 모든 구성원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목적 구호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사목 계획과 실천이 개별 본당과 신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아주 적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자면, 사목의 전 과정에 모든 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강신숙 - 여러 교구에서 교구 조직 개편 이유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밖으로 나가는 교회’를 들고 있으나 아직 그 실효성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조직 개편의 큰 틀이 여전히 성직자들의 통치 조직 라인 정리와 관련되기 때문은 아닌가 한다. 또 신자들의 신앙과 삶이 분리되어 있다는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사목 계획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신앙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과거의 신심 행위나 신앙의 사사화, 세상의 맥락과 단절된 성경 읽기와 강론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감동적이지 않은 세대별 사목 접근, 본당 신심 단체의 고착화된 패턴, 형식적인 소공동체 활동, 사회 교리 교육의 부재 등은 개선할 점이다. 신자들의 예언적 양성, 주도적이고 창의적 활동의 개선이 아쉽다.

 

 

[2020년 한국 교회의 사목 과제] 새로운 천년기의 첫 20년을 지내면서, 올해 한국 천주교회가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핵심적인 사목 실천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정희완 - 먼저, 본당 공동체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사목의 최전선인 본당이 활력을 잃어 가고 있다. 전례와 교육과 친교와 봉사가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본당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신앙 공동체로서 본당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상상과 실천이 요청된다.

 

둘째, 신앙 교육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신앙이 단순히 종교의 영역에서만 작동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신앙은 전례와 본당 생활의 자리에서만 고백되고 표현되고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자리에서 고백되고 표현되고 수행되어야 한다. 신앙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삶을 움직이는 올바른 힘으로 작동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신앙 교육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재구성이 절실히 요청된다.

 

새롭고 획기적인 대안은 없다. 그저 함께 고민하고, 함께 대화하며, 함께 길을 모색하며 걸어갈 수밖에 없다. 고민하고 대화하고 모색하는 과정 그 자체가 하나의 대안적 행위다. 시작부터 함께할 때 과정 속에서 공동의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다. 늘상 소수가 프로그램적 대안을 제시하고 다수는 그 주어진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방식으로는 진정한 변화와 대안이 형성되지 않는다. 시작, 과정, 대안 문화 형성, 그 모든 단계에 공동합의성을 바탕으로 많은 구성원의 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

 

강신숙 - 공동합의성에 기초해서 ‘정의 평화 창조 보전’(JPIC), 사회 교리, 기후 붕괴 문제에 대한 종합적 사목 실천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공동합의성은 그 자체가 생태적 조직이며, 사목 현안을 해결하는 최선의 수단이 될 것이다.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조사한 ‘2019 한국 천주교회의 과제와 전망’에 따르면, 사목자들을 위한 리더십과 인성 교육이 한국 교회의 쇄신 과제 1위로 나타났다. 또 주교와 신부의 개선점에는 독선과 권위주의, 대화와 소통의 부재가 각각 선두에 올랐다(「2019 한국 천주교회」, 48-50면). 결국 아무리 공동합의성을 실천한다 해도 내부의 소통 구조가 동등할 수 있도록 강제되지 않는다면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박문수 - 보편 교회와 함께 가는 길이자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성직자 중심 교회 문화를 변화시키는 일을 시작하는 것을 첫 번째 과제로 제안하고 싶다. 이는 한 마디로 2020년을 ‘공동합의성’ 실천의 원년으로 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교회의 문화는 한국 시민 사회가 기대하는 바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청년과 지식인 신자들로부터 교회가 외면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회 문화를 바꿔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방식이라 생각하고 당장 실천하면 좋겠다.

 

둘째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핵심적인 과제가 되고 있는 ‘평화’를 전 교구가 공통의 사목 목표로 삼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6·25 발발 70주년,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 등 평화와 관련하여 굵직하게 기념할 만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평화는 2020년 이후에도 지속적인 실천 목표로 삼아야 할 과제로서 한국 교회 전체가 장기 목표를 가지고 단계적으로 실천해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노인 사목을 넘어 고령 신자가 다수를 이루는 교회를 좀 더 젊고 활력 있는 교회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찾는 해로 삼으면 좋겠다. 전 사회의 고령화로 고령 신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나 그에 반비례하여 청장년층이 감소하는 일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잠시 멈춰 깊이 성찰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경향잡지, 202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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