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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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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우리 시대의 선교와 복음화: 선교적 교회를 향한 한국 교회의 방향 전환

56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2-02

[경향 돋보기 – 우리 시대의 선교와 복음화] 선교적 교회를 향한 한국 교회의 방향 전환

 

 

선교로 번역되는 ‘미씨오’(missio)라는 말은 주님에 의한 파견, 주님이 맡기신 사명, 파견된 이들의 임무 등을 뜻한다. 1517년 종교 개혁 이후 유럽을 떠나 세계 각지로 복음을 전하러 나간 예수회를 비롯한 선교 수도회의 활동 시기부터 유럽 열강이 선교를 식민지 쟁탈에 이용했던 20세기 초반까지 선교는 세례와 교회 설립을 강조하는 ‘만민 선교’ 내지 ‘외방 선교’로 이해되었다. 1950년대 이후 선교는 이 땅에 하느님 나라의 구현,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강조하는 ‘복음화’ 내지 ‘선포’로 이해되었으며, 다원화된 현대에는 종교 간 대화나 믿지 않는 세상과 대화를 강조하는 ‘증언’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시대에 따라 변형되고 있음을 시사하며 이는 주님께서 현재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형편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교리반 모집이 어렵고 주일 학교에서 학생들이 점차 사라진다. 교중 미사 때도 드문드문 빈자리가 보인다. 본당에서 봉사자를 구하기가 점차 어려워진다. 외적 현상은 분명 우리 교회가 위기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 글에서는 무엇이 선교의 장애 요인이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무엇인지를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성직자 중심의 교회 운영에서 합의체적 운영으로

 

한국 대부분의 종교에서 성직자의 위상은 상당히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의 삼보인 불(부처님), 법(부처님의 가르침), 승(수행자) 가운데서 승이 특히 강조된다. 불교 신자들은 승려를 매우 존경하며 그들의 개인 생활 문제를 논하는 것조차 불경한 일로 여긴다. 장로교단이 다수를 이루는 한국 개신교의 경우에는 성직자인 목사와 공동체의 책임을 지는 장로들이 공동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실제로 그 원칙을 지키는 교회는 많지 않아 보인다. 목사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장로는 그 공동체가 아니라 목사가 지명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전통적인 무속에서는 신령과 인간 세계를 잇는 무당이 있어야만 굿판을 벌일 수 있다. 성직자 중심의 모습은 한국인의 종교 심성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지난날 “한국 교회는 신부들이 하기에 달려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위기를 사제들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없겠지만 오늘날 문제는 사제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이 달려 있다는 점이다. 해방 뒤에 본당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고 그 운영은 사제와 전교 수녀, 그리고 사무장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오늘날 본당의 규모는 훨씬 커졌지만 본당 운영의 기본 구조에는 큰 변화가 없다. 지난날이나 지금이나 사제에게 권한과 책임이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 일방적인 의사소통 방식이 나타나기 쉽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 성직자와 평신도 단체 사이의 이견 조정은 대화와 타협보다 성직자의 권위적 결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모든 이의 동등한 권리와 자율성, 상호 협력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천주교회는 낡은 제도로 인식될 수 있다. 특히 오늘날 젊은 세대는 권위에 따라 일방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게다가 성직 지망자가 감소하는 추세이다. 기존의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수직적 역할 분담을 극복하고 책임과 권한을 지닌 구성원들의 협력과 합의를 통해서 운영되는 본당 공동체로 바뀌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세례 받은 모든 사람에게 사제직, 예언직, 왕직의 삼중 직무를 인정함으로써 이를 위한 신학적 전제를 마련했다. 또 오랫동안 교회가 실천하였고 최근 공의회가 다시 발견한 교황과 주교단 사이에 단체성(collegialitas)의 구현이 현재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함께 관찰하고 판단하고 실천하는 ‘함께 가는 길’(synod)은 세계 교회 차원뿐 아니라 지역 교회와 본당 공동체 차원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청소년, 노인, 교육, 본당 운영 등에 참여할 수 있는 전문가의 양성이 요구된다.

 

 

기복적인 신앙에서 성숙한 신앙으로

 

1970-80년대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사회 문제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고, 1990년대 사회 취약 계층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것과 달리 그 뒤 한국 천주교회는 신앙의 내실화라는 명목으로 밖을 향해 있던 시선을 안으로 돌렸다. 하지만 이를 통해 신앙과 생활의 연결이 완화되었다. 오늘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생활보다 입신양명, 무병장수, 자손 번성 등 소원 성취가 신앙의 주요 목표가 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자세의 뿌리는 무속의 기복적이며 의타적 신앙이다. 무속 전통에서 사람들은 현세의 건강과 재화와 평안함을 추구한다. 또한 문제 해결이 신령의 손에 달려 있다고 여기며 개인의 주도적 행동보다 정성을 다해 신령에게 비는 의존적 모습을 취한다.

 

이러한 종교 심성은 그리스도인에게 현세의 성공을 하느님의 축복과 직접 연결하도록 하며 십자가와 그를 통한 구원이라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과 자기 행위에 대한 주체적이며 윤리적인 책임감을 제거할 수 있다. 이러한 단편적 신앙은 타인과 세상사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 그리스도교가 전통 종교인 샤머니즘을 대체했는지, 또는 그리스도교라는 옷을 걸친 샤머니즘이 여전히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을 지배하는가 하는 질문이 여기서 제기되며 토착화라는 중요한 과제가 드러난다.

 

최근 한국 교회의 위기는 이기적이며 기복적 신앙으로 세상에 대한 교회의 성사적 역할이 약화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개인의 소원을 성취하고자 하느님께 매달려 그분의 힘을 이용하는 것은 참신앙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그러한 하느님 호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믿음의 내용과 믿음의 삶이 통합된 신앙, 교리 지식과 전례 참여와 삶에서의 실천이 통합된 신앙으로 발전해야 한다. 우리 고유의 종교 심성을 받아들여 한국적 그리스도교로 거듭나면서도 그동안 무속이 보여 주지 못했던 이타적이며 사회적 신앙의 지평을 열어 가는 것이 한국 천주교회가 당면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사회 문제를 심도 있게 바라보고 이를 해결하고자 행동하는 신앙인들의 다양한 모임이 필요하다. 교회 안으로만 향하는 시각은 교회 밖을 향하는 시각을 통해서, 자신에게 고정된 시선은 자기를 넘어 타인의 처지를 살피는 시선을 통해서 교정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 양성이 앞으로 교회의 주안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몇 명인가는 부수적인 문제이다.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창세 18,32).

 

 

개인적인 신앙에서 공동체적인 신앙으로

 

탈근대 사회로 불리는 오늘날 기존의 가치 체계는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정보화와 세계화되는 사회에서 개인주의적 삶의 양식이 보편화되고 개인의 자기 결정권이 강조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종교 또한 사사화(私事化)된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극도의 피로감에 시달리는 현대인은 다양한 상품이 넘치는 종교 시장에서 자연 영성, 마음의 안정에 관련된 품목을 선호하며 SNS나 인터넷 등을 통해 제공되는 간편 상품을 즐겨 고른다. 전통적인 제도 종교를 통한 신앙생활보다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다양한 종교 상품들이 보이지 않는 종교로서 더 큰 매력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본당에서 봉사자들이 사라져 가는 현상과 주일 미사 참례를 부담스러워 하는 경향은 바로 종교 사사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세계 영역의 분화가 일어날수록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통괄하는 가치 체계, 그리고 인류의 공동 문제를 다루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종교를 더욱더 갈망한다. 오늘날 교회가 받는 도전은 개인화된 신앙의 단편성을 거슬러 충만한 기쁨과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공동체적 신앙을 제공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탈근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가치 체계와 사회 통합을 더욱 요청한다. 가정이 붕괴되는 현실에서 사랑의 유대와 안식이 가정의 본디 가치로 드러난다.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세계화 시대에 기회의 평등이 지니는 기본 가치가 드러난다. 각 분야에서 이행되는 다원화에서 상호 존중과 협력의 가치가 명확해진다. 무분별한 착취로 신음하는 환경 앞에서 인류에게 주어진 공동 선물인 자연에 대한 책임이 요청된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자 당신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성은 이러한 기본 가치를 구현하는 교회 공동체의 삶을 통해서 드러날 수 있다. 교회에 요청되는 것은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을 포괄하는 사회의 플랫폼 역할이다. 복음의 기쁨으로 충만한 이는 그 기쁨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 곧바로 마음을 쓸 수 있으며, 기쁜 소식을 함께 전하도록 그들을 초대할 수 있다.

 

우리 교회가 겪는 위기는 죽을병이라기보다 성장통이다. 성숙을 위한 시각의 변화가 요청된다. 교세 통계가 아니라 신앙 내용이, 기도의 효험을 넘어 사랑의 공동체 구현이, 성전의 크기가 아니라 교회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현존이 복음화의 척도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와 성숙에 교회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것이 복음화를 향한 우리 교회의 과제이다.

 

* 신정훈 미카엘 - 서울대교구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교의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경향잡지, 2019년 11월호, 신정훈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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