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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19년 12월 7일 (토)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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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소곤소곤 교리: 교회의 힘, 사랑

237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2-02

[소곤소곤 교리] 교회의 힘, 사랑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하셨는데 제가 느끼기에 천주교 신자들은 너무 쌀쌀맞습니다. 몸이 아파 단체 활동을 할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는데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를 볼 때마다 언짢아하는 것이 느껴져서 상처를 받았습니다. 결국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다른 본당에 가서 미사를 드립니다만 마음이 편하지 않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매님의 짧은 글 속에 담긴 아픔이 진해서 한동안 마음이 아팠습니다. 무어라 말씀을 드려야 위로가 될지 며칠을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미사에서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에페 1,18)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자매님에게 위로의 말씀이라 싶어 용기를 내 봅니다.

 

잘 아시겠지만 교회는 완성된 성인들의 모임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회는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의 사랑과 자비에 의탁하는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 구성원은 모두 허물과 흠이 있는 존재라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거룩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 구성원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존재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다는 의미입니다. 결코 교회 구성원들이 거룩하다는 뜻이 아닌 것이지요. 그러기에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 늘 길 위에 있는 존재이며 언제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교회는 모든 신자가 회개하면서 거룩한 여정을 향해 나가도록 돕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세상에 전하는 고유하고 유일한 역할을 지님에도 끊임없이 쇄신해야 하는 ‘생명체’임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포도주를 위해 병이 필요한 것처럼, 신앙을 위해 교회가 필요하다.”고 말한 브루스 마셜은 신선한 포도주를 간직하려면 병이 필요하지만, 병의 모양과 형태는 변화할 수 있고 변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교회가 쉼 없이 쇄신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인간은 제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쌓은 인물이라 하더라도 죄인입니다. 오류를 범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인간이 행하는 선행 또한 하느님의 기준에는 턱없이 모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행위는 늘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은총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마음가짐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이야말로 교회의 빼어난 특징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은혜로 상처를 치유하는 복음의 명약을 가졌기에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서 용서와 화해의 몸짓을 보이며 사랑의 완성을 희망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힘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없으면 하느님의 빛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온 삶에서 실천해야 할 일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근본을 망각할 때 커다란 위험에 빠집니다. 결국 분쟁과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로 추락합니다. 따라서 용서와 화해를 위해 마음을 갖추는 일은 그리스도인에게 대단히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리스도인 각자는 저마다 분열을 위한 삶인지 아니면 일치와 화해를 위한 삶인지 잘 성찰하며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을 들여다볼 줄도 알고 또 반성할 줄도 아는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충분히 도덕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자질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교우들 사이에서 서로를 품어 주는 사랑이 모자라 상처를 주고받으며 마음에 응어리지는 일이 흔합니다. 인간의 모자람 때문이며 이 세상에서 완덕에 이른 인간은 아무도 없는 까닭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상대의 모자람을 통해서 오히려 내 삶을 바라보고 발전하는 계기로 삼아야 옳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관계가 어긋나 아픔이 생길 때나 상대의 모자란 처신 탓에 내 마음이 상처를 받았을 적에 그것을 쌓아 마음속에 가두어 버리는 일만은 피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스스로 사랑에 도전할 생각을 포기한 모습이며, 고통에 적극적으로 도전하지 않고 물러서는 비겁한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얽힌 감정을 털어 내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사랑이신 주님께 기쁨을 드리고자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품어 주는 삶을 향해 도전하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는 것과 똑같이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두 사람 모두’를 똑같이 너무너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헤아려 주십시오. 일상의 사건들을 통해서 나를 더욱 성숙하도록 이끄시는 그분의 손길을 뿌리치지 마십시오. 내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닌 상대일지라도 ‘서로 사랑’을, 먼저 사랑하라고 권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모른 체하지 말아 주십시오. 상대의 마음을 홀로 판단하고 멀리하는 일은 서로가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하는 ‘잘못’입니다.

 

이제 상대에게 양보하고 넉넉히 품어 주는 마음으로 용서를 실천하고 싶다는 원의를 그분께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본당으로 가셔서 그 교우에게 먼저 웃어 주십시오. 더는 상처 주는 사람으로 살지 않도록 더 많이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상대에게 용서할 기회를 주는 복된 모습을 먼저 실천하십시오.

 

진리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 주셨습니다. 지금 자매님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은 바로 참행복을 놓쳤다는 표징입니다. 이제 그 행복을 되찾으세요. 한 발 양보하고 두 걸음 물러서 이해함으로써 참행복을 누리세요. 부디 “천주교 신자들은 너무 쌀쌀맞다.”라는 말을 듣게 하는 그 사람들의 굳은 마음을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귀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 장재봉 스테파노 - 부산교구 선교사목국장으로 지낸 4년을 주님의 ‘개인 지도’ 기간이었다고 믿는다. 그 배움을 본당 사목에 실천하고자 ‘하느님의 눈’, ‘성모님의 눈’, ‘신자들의 눈’, ‘가난한 이웃의 눈’으로 월평본당을 꾸리려 애쓰는 주임 신부다.

 

[경향잡지, 2019년 11월호, 장재봉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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