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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프란치스코 교황의 십계명 교리: 그리스도 안의 새 계명들과 성령에 따른 열망들

207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8-12-04

십계명에 관한 교리 : 그리스도 안의 새 계명들과 성령에 따른 열망들


“우상숭배는 (사람을) 망치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을 우리 안에 심어 주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28일 수요 일반알현 중에 십계명에 대한 교리 교육을 마무리했다. 교황은 악한 욕망이 사람을 망친다면, 성령께서는 새로운 삶의 씨앗인 거룩한 열망을 우리 마음 안에 쏟아 붓는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십계명에 대한 교리 교육 여정을 마무리하는 오늘의 교리 교육에서 우리는, 그 동안 우리의 교리 교육 여정을 되짚어 볼 수 있게 하고 항상 그리스도의 완전한 계시에 비추어 데칼로그(Decalogo, 열 가지 말씀, 십계명)를 읽으면서 완수한 단계들을 요약하게 하는, ‘소망’이라는 핵심 주제를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신뢰와 순명의 관계의 바탕인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계명에 대한 교리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우상 숭배의 속임수에서 우리를 속량하기 위해 당신께 순명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사실상, 이 세상의 우상 안에서 목적을 성취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를 공허하게 하며 노예로 전락시킵니다. 반면, 우리에게 기량과 견고함을 주는 것은, 당신 부성에서 시작하여 우리를 당신 자녀가 되게 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갖는 관계입니다(에페 3,14-16 참조).

 

이것은 “내 영혼은 오직 하느님을 향해 말없이 기다리니 그분에게서 나의 구원이 오기 때문이네”(시편 62,2)라고 시편이 노래한 것처럼, 진정하고 참된 휴식인 축복과 해방의 과정을 수반합니다.

 

이 해방된 삶은 우리의 개인적인 역사를 받아들이고, 유아기부터 현재까지 우리가 살았던 것, 우리를 어른으로 만들고 우리 삶의 현실과 사람들에게 올바른 무게를 줄 수 있는 능력으로 우리를 화해시킵니다. 이 길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 주시는 사랑에서 출발하여 이웃과의 관계에 들어갑니다. 이는 충실함과 관대함과 진정성의 아름다움에로의 부르심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살기 위해서는, 곧 아름다움과 충실함과 관대함과 진정성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는 성령께서 넣어 주시는 새로운 마음이 필요합니다(에제 11,19; 36,26 참조). 저는 이렇게 자문합니다. “헌 마음에서 새 마음으로, 곧 마음의 ‘이식(trapianto)’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 안에 씨 뿌려진 새로운 소망의 선물을 통해서 이뤄집니다(로마 8,6 참조). 특히 예수님께서 “산상 수훈”(마태 5,17-48 참조)에서 가르쳐주신 것처럼, 예수님에 의해서 완성된 십계명을 통해 이뤄집니다. 사실, 우리는 십계명에서 묘사된 삶, 다시 말해 감사하고, 자유롭고, 축복하고, 성숙하고, 생명을 사랑하며 보호하고, 충실하고, 관대하고, 진실한 삶의 명상 안에서, 우리는 거의 깨닫지 못한 상태로 그리스도 앞에 서있습니다. 십계명은 우리 자신의 “엑스레이(radiografia)”입니다. 우리 자신을 신도네(Sindone, 예수의 성의)처럼, 우리의 얼굴을 네거티브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 안에 당신께서 주신 은총인 소망을 넣어 주시면서 우리 마음을 비옥하게 하십니다. 성령에 따라 열망하고, 성령의 리듬으로 열망하고, 성령의 음악으로 열망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아름다움과 선과 진리를 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이러한 당신의 소망에 따라 우리 안에 희망과 믿음과 사랑을 촉발시키는 삶을 낳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율법을 없애기 위해 오지 않으시고 율법을 완성하여 성장시키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육체에 따른 율법은 행하거나 행하지 말아야 하는 일련의 규율이지만, 이와 같은 율법이 성령에 따르면 생명이 됩니다(요한 6,63; 에페 2,15 참조). 왜냐하면 그것은 더 이상 규범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위로하시는 그리스도의 몸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죄의 불순종으로 잃어버렸던 하느님 아버지와의 친교를 새롭게 합니다. 이처럼 “훔치지 마라”, “모욕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와 같은 (‘…하지 마라’의) 부정적인 표현의 계명들의 “하지 마라”는 긍정적인 태도로 바뀝니다. 곧, 사랑하고, 내 마음 안에 다른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모든 소망들이 긍정을 씨 뿌립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 주시기 위해 오신 율법의 충만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그분 안에서만 십계명이 단죄하기를 멈추며(로마 8,1 참조), 인간의 진정한 삶의 진리가 됩니다. 곧, 사랑의 열망이며(이 열망에서 선을 위한 열망, 선을 행하고자 하는 열망이 생겨납니다), 기쁨과 평화, 선과 충실함, 아량과 사랑, 온유함과 자기 통제에 대한 열망입니다. 그러한 “아니오”에서 이러한 “네”로 넘어갑니다. 이는 성령의 힘으로 열리는 마음의 긍정적인 태도입니다.

 

(우리는) 십계명 안에서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마음이 사랑으로 충만해지고 하느님의 일을 향해 열리도록 우리 마음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이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 싶은 욕구에 따를 때, 그는 구원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도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목말라하기를 갈망하신다”(2560항)고 말하는 것처럼, 관대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람을 망치는 것이 악한 욕망이라면(마태 15,18-20 참조),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 안에, 새 생명의 씨앗인(1요한 3,9 참조), 당신의 거룩한 열망을 넣어 주십니다. 사실, 새로운 삶은 규율에 집착하려는 초인적인 노력이 아닙니다. 새로운 삶은, 사랑받고 있다는 우리의 기쁨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기쁨 사이의 행복한 시너지 효과 안에서, 당신 열매들로 우리를 인도하기 시작하는 하느님의 영 그 자체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기쁨과 사랑받고 있다는 우리의 기쁨, 이 두 기쁨의 만남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십계명은 바로 이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고자 우리의 마음을 열기 위해, 그분의 열망을 받기 위해, 그분의 성령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것입니다.

 

[바티칸 뉴스, 2018년 11월 28일,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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