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자료실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1일 (일)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신앙생활

sub_menu

가톨릭 교리
십계명 따라 걷기: 다섯째 계명 - 사람을 죽이지 마라

2017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8-06-18

[십계명 따라 걷기] 다섯째 계명 : 사람을 죽이지 마라

 

 

상생의 길

 

꼴 보기 싫은 사람과 함께 - 루카 6,27-38 묵상

 

누구나 한둘은 이유가 무엇이든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꼴 보기 싫은 사람,

바로 이 사람이 원수입니다.

 

원수를 대하는 가장 쉬운 태도는

꼴을 안 보는 것,

곧 관계를 끊는 것입니다.

 

그 사람 욕하려니 입이 더러워지고

그 사람 생각만 해도 울화가 치미니,

아예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내 삶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는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을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은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사형 집행입니다.

참으로 무섭고 소름 끼치는 행위입니다.

 

너무 쉽게 원수와 관계를 끊으려는 우리를

예수님께서 관계를 맺으라고 초대하십니다.

 

사랑하여라.

선의로 대하여라.

축복하고 기도하여라.

 

꼴 보기 싫은 원수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람으로

받아들이라는 초대입니다.

 

꼴 보기 싫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그 사람 새로 날 희망으로

보듬으라는 초대입니다.

 

아름다운 초대이지만

솔직히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비록 자신 없지만 맘속으로 다짐해 봅니다.

 

그 사람 비록 나의 기도를 원치 않아도

그 사람 비록 나의 축복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 사람 비록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해도

 

그를 향한 나의 사랑, 믿음, 희망이

언젠가 그 사람에게서 꽃 피울 것이기에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쉼 없이 따뜻이 보듬는 삶을 살아가자고.

 

예수님의 아름답고 고운 초대에

힘들지만 기쁘게 한걸음 다가가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합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인간은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 생명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불어넣으신 숨결은 인간 생명의 영혼이기에 인간 생명은 신성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신성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생성 시초부터 하느님의 창조 행위에 연결되며 또한 모든 생명의 목적이기도 한 창조주와 영원히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만이 그 시작부터 끝까지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무죄한 인간의 목숨을 직접 해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신앙교리성, 훈령 「생명의 선물」, 서론, 5항).

 

 

혼자 있으니 좋지 않구나, 그러니 함께 살아라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창세 2,18).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빚으신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홀로’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 수 있게 계획하셨습니다. 이 계획에 따를 때에, 사람은 비로소 사람[人間]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엄한 ‘나’와 똑같이 존엄한 ‘너’가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상생(相生)입니다. ‘내’가 어쩌다 이 세상에 태어난 우연한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상을 가꾸라고 보내신 귀한 필연적인 존재이듯이, 내가 만나는 모든 ‘너’들 또한 그러합니다. ‘내’가 있으려고 ‘너’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와 ‘너’들은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하지만 ‘더불어, 함께’라는 아름다운 하느님의 계획은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임으로써(창세 4,8-12 참조)처음부터 무참하게 깨집니다. ‘함께 살아라!’라는 하느님의 뜻에 ‘혼자 살 거야!’라는 사람의 뜻이 맞선 것입니다. 이는 단지 성경이 전하는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뼈아픈 가르침입니다. 우리 모두 ‘너’를 ‘나’를 위한 도구로 삼으려는 유혹이나 ‘나’ 살려고 ‘너’는 없어져도 좋다는 오만불손한 생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난 살인한 적이 없어요! 정말요?

 

‘더불어, 함께’를 거부하고 ‘홀로’를 선택하는 극단적인 형태가 문자 그대로의 ‘살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흉악 범죄가 늘어난다고 해도, 직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러니 언뜻 생각하면 주님의 열 가지 계명 가운데 가장 지키기 쉬운 계명이 다섯째 계명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이 ‘난 살인한 적이 없어!’라고 단호하게 말할 것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이고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3)라는 계명은 단지 육체적인 살인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넓게 보자면 ‘더불어, 함께’를 거부하는 모든 말과 생각과 행위를 포함합니다. 그래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마태 5,17 참조)께서는 다른 이들을 거부하는 분노와 증오(마태 5,22 참조), 폭력과 복수(마태 5,38-42 참조)를 포기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원수까지 사랑하라(마태 5,44 참조)고 엄중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람을 죽이지 마라!’는 계명을 단지 문자 그대로의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람을 존엄하게 대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며 또한 이를 실천해야만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온갖 살인, 집단 학살, 낙태, 안락사, 고의적인 자살과 같이 생명 자체를 거스르는 모든 행위; 지체의 상해, 육체와 정신을 해치는 고문, 심리적 억압과 같이 인간의 온전함에 폭력을 자행하는 모든 행위; 인간 이하의 생활 조건, 불법 감금, 추방, 노예화, 매매춘, 부녀자와 연소자의 인신매매와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 또한 노동자들이 자유와 책임을 지닌 인간이 아니라 이윤 추구의 단순한 도구로 취급당하는 굴욕적인 노동 조건; 이 모든 행위와 이 같은 다른 행위들은 참으로 치욕이다”(사목 헌장, 27항).

 

 

다시 상생의 길을 걸어요

 

다섯째 계명은 나와 너 모두를 살리는 길, 곧 상생의 길에 나서라고 촉구합니다. 생명의 길에 나서려면, 분노와 질투의 감정에서부터 가장 참혹한 죽임이 일상화되는 전쟁에 이르기까지 반(反)생명의 문화에 맞서야 합니다. 그래서 다섯째 계명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 “그것이 어떤 단계에 있든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라. 전쟁을 늘 악으로 간주하고 평화를 위해 분투하라. 생명을 섬기는 일을 행하고 생각하라. 생사여탈권을 쥔 권능자가 되고 싶은 유혹에 맞서라. 인간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것보다 더 큰 권력은 없으며, 동시에 더 큰 유혹도 없기 때문이다”(노트커 볼프 · 마티아스 드로빈스키, 「그러니, 십계명은 자유의 계명이다」, 윤선아 옮김, 분도출판사).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이제 마음속 티끌만 한 죽임의 유혹조차 말끔히 씻어 내고 다시 상생의 길을 걸어요, 십자가 위에서조차 용서로 적대자들마저 품에 안으심으로써 상생의 길을 앞서 가신 예수님과 함께.

 

* 상지종 베르나르도 - 의정부교구 신부. 교구 제8지구장 겸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8년 6월호, 상지종 베르나르도]


0 4,416 0

추천  0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