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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신약]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히브리서, 야고보서

470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6-12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히브리서, 야고보서 (1)

 

 

히브리서간은?

 

저자가 누구인지, 어떤 경로를 거쳐 쓰였는지, 사도 바오로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등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게 해줍니다. 한마디로 히브리서간은 신약 안에서 제일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문헌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신학적 해석학?’ 

 

신학자 그래써르(E. Graesser)는 히브리서간 저자를 두고서 ‘신학적 해석학의 표본’이라고 하면서 그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냅니다. 히브리서간 저자는 구약의 여러 고백문 등을 새롭게 해석하고 표현하려 했습니다. 사실 신약 27권 가운데 히브리서간 저자만이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께 ‘사제[司祭 hiereus, Priest]’ 또는 ‘대사제[大司祭, archiereus, Highpriest]’라는 칭호를 부여합니다. 이로써 저자는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 실로 엄청난 의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사제직뿐 아니라 제사와 전례 등 여러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주요 신학은?

 

히브리서 저자의 신학적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사제’로 해석하는 데에서 정점에 이릅니다. 지상의 예수님은 사제 가문 레위지파 출신이 아니라 유다지파 출신이었습니다. 출신가문이나 혈통으로만 본다면 예수님은 우리네 표현으로 그냥 ‘평신도’였습니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마르 6,3) 복음사가 마르코는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출신 가문만 보고서 예수님을 업신여기는 장면도 전해줍니다.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6,3ㄷ)

 

 

예수님께서는 왜 대사제이신가?

 

히브리서 저자는 말합니다. 구약의 대사제들은 수도 없이 예물을 바쳤지만 그 누구의 죄도 사해주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성부의 뜻에 따라 자신을 십자가에서 단 한번 희생 제물로 봉헌하심으로서 온 인류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가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만이 참으로 진정하고도 유일하며 멜키체덱의 예를 따른 영원한 대사제시라고 천명합니다.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히브 7,16-17)

 

 

구약의 사제들과 예수님의 사제직은?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의 사제들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또한 다른 사제들은 죽음 때문에 직무를 계속할 수가 없어 그 수가 많았습니다.”(7,23) 구약의 사제들은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아 ‘생로병사’의 틀을 벗어날 수 없었기에 한정적이며 한시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유일무이함과 영원성을 간략히 정의해줍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영원히 사시기 때문에 영구한 사제직을 지니십니다. 따라서 그분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살아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빌어주십니다.”(7,24-25) 죄의 굴레 속에서 헤매던 구약의 사제들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영원으로부터 존재해오던 분으로서 앞으로도 영원히 사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기 자신의 죄와 백성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날마다 제물을 봉헌해야 했던 구약의 대사제들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바치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율법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을 대사제로 세우지만, 율법 다음에 이루어진 맹세의 그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드님을 대사제로 세웁니다.”(7,27-2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주신 것입니다.”(10,14)

 

 

히브리서간의 문학양식은? 

 

이 서간은 겉으로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으로 전해져옵니다. 그럼에도 서간의 내용을 파고들면 그 실상이 다릅니다. 이 서간 맨 끝에 나오는 맺음말(13,22-25) 외에는 서간의 성격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서간의 저자는 줄곧 예수 그리스도께 관심을 둡니다. 이 서간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가를 밝혀주는 ‘신학 지침서’라고 봅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거나 절망의 늪에 떨어질 위험에 처한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만이 유일한 인류 구원자시며 대사제이시라는 사실을 밝혀주는 신학 지침서입니다.

 

 

야고보서는? 

 

야고보서, 베드로1-2서, 요한1-3서, 유다서 등 일곱 권을 가톨릭서간이라고 부릅니다. 편지 발신인이 명시적으로 나오지만, 수신인은 믿는 이들 모두, 또는 여러 지역의 많은 신자들을 포괄적으로 이르기 때문에 가톨릭서간[공동서간]이라 칭합니다. 이러한 특징은 편지 인사말 안에서 명료하게 드러납니다.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세상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인사합니다.”(야고 1,1) 여기서 수신인은 세상 모든 유다인이며, 나아가 모든 그리스도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저자는? 

 

전통적으로 이 서간 저자를 ‘주님의 형제 야고보’(갈라 1,18-19)가 집필했다는 견해가 우세해왔지만 저자에 대한 논란은 끝나지 않고 열려있습니다. 자신을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칭할 뿐, ‘사도’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는 점에서도 ‘주님의 형제 야고보’ 사도를 저자라고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야고보서 언어?

 

야고보서의 그리스말은 간단명료하면서도 설득력이 있을 뿐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흐름을 유지해줍니다. 이 서간의 비교법과 이야기 흐름은 누가 보아도 놀라리만큼 당차며 명확합니다. 저자는 창조성을 겸비한 뛰어난 예술 감각으로 글을 써내려갑니다. 그는 먼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전승 자료를 찾아내어, 그것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가면서 자신이 의도에 걸맞은 용어를 첨가해가는 가운데 보다 설득력 있는 문체로 글을 이어나갑니다.

 

 

신약 다른 곳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단어를 야고보서 저자가 34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이와 같이 단 한 번 사용되는 단어들을 일컬어 하팍스레고메나[hapaxlegomena라 합니다]. 그는 자신이 강조하고자 할 때는 서슴없이 상승적 표현법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연쇄적 표현 방법을 사용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1,14-15)

 

 

문학 양식은?

 

이 서간에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한 지침이나 훈계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아, 야고보서를 일종의 교훈서로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유다교 문헌에서도, 지혜서나 집회서 등 구약 지혜문헌에서도 이러한 문학 양식이 자주 발견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6월호,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용현5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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