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상식 더하기7: 시노달리타스? 왜 우리말 번역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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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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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상식 더하기] (7) 시노달리타스? 왜 우리말 번역은 없을까
번역어로는 ‘시노달리타스’ 온전한 의미 담기 어려워
- 1월 7일 교황청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특별 추기경회의에서 레오 14세 교황이 추기경들과 원탁에 둘러앉아 안건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교황은 ‘시노달리타스’를 교회의 중요한 여정으로 제시하며 회의를 정례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OSV교회의 여러 문헌이나 교육 등을 통해 많은 분이 ‘시노달리타스’라는 말을 접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말이 아니어서 그런지 자꾸 들어도 ‘무슨 뜻이었더라?’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곤 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해서 사용하면 기억하기도 쉽고, 이해도 빠를 것 같은데 왜 ‘시노달리타스’는 우리말 번역어가 없는 걸까요?
실은 시노달리타스라는 말을 번역하려는 시도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2021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를 통해 원어 그대로 ‘시노달리타스’를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번역어로는 새로운 개념인 시노달리타스의 의미를 온전히 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시노달리타스는 시노드에서 온 말입니다. 시노드(synodus)는 그리스어로 ‘함께(syn)’와 ‘길(hdos)’을 합성해 ‘함께 가는 길’이란 뜻에서 온 말로, 라틴어 콘칠리움(concilium)과 더불어 공의회를 일컫는 말로 쓰여왔습니다. 이 시노드의 형용사형 ‘시노달레’(synodale)에 명사형 어미 ‘타스’(-tas)를 결합시킨 단어가 시노달리타스입니다. 문자로만 보면 공의회적인, 그러니까 공의회가 보여준 활동의 방식·특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노드의 경우 하나의 사건으로, ‘함께 모여 무언가를 결정’하는 의미가 강합니다. 반면, 시노달리타스는 시노드라는 용어에서 유래했고, 의미 면에서도 많이 통하지만, 의사결정에 대한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삶의 방식, 교회가 사명을 수행하는 활동에 대한 폭넓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공의회라는 번역으로는 시노달리타스를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교회의 삶과 사명은 2000년 넘게 이어져 왔고, 초대교회나 지금의 교회나 같은 교회인데, 이것이 왜 새로운 개념일까요? 물론 교회가 변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시대나 상황에 따라 교회를 바라보는 인식이 새롭게 달라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는 시노달리타스를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생활 방식과 활동 방식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정의합니다.(「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시노달리타스」 6항) 시노달리타스가 말하는 교회는 ‘하느님 백성’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헌장」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백성을 이루어 진리 안에서 당신을 알고 당신을 거룩히 섬기도록 하셨다”고 ‘하느님 백성’인 교회를 선언합니다.(9항)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떤 생활 신분이나 처지에 있든 각자 하느님께서 주신 길과 품위가 있다고 가르칩니다.(11항 참조) 시노달리타스란 이를 바탕으로 교회의 사명을 위해 서로를 협력자로 존중하고 소통하면서 함께 성령께서 이끄시는 길을 찾아 실현해 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다수결로 결정한다는 민주주의나 의회주의와 다릅니다. 구성원의 소리를 경청하지만, 구성원의 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소리를 듣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식별한 성령의 말씀에 따라 각자의 고유한 은사에 따라 서로 다른 직무 안에서 제 몫을 하고, 그러면서도 함께 교회의 사명을 향한 길을 걸어갑니다.
[가톨릭신문, 2026년 2월 8일,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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