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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럼: 세상에 사소한 일은 없다

17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12-15

[도서칼럼] 세상에 ‘사소한 일’은 없다

 

 

지난 9월 27일, 세계 불꽃 축제가 한강에서 대규모로 펼쳐졌습니다.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을 불꽃을 감상하기 위해 수백만의 인파가 한강 주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가까이서 불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상파TV 채널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는 불꽃 축제를 생중계해 주었고, 심지어 아파트 단지 사이 같은 좁은 틈으로 불꽃이 겨우 보이는 지점을 찾아내어 이를 촬영하여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각, 종로 보신각 앞에서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적인 폭격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무고하게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의 참상을 알리며 하루 빨리 전쟁이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집회에 모인 시민들이 함께 모았습니다. 천여 명의 인원이 참여한 이 집회는, 같은 시간 벌어진 불꽃 축제의 화려함에 묻혀 제대로 알려지지 않습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 두 가지의 풍경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깁니다. 불꽃 축제는 아파트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지점까지 발견해낼 만큼, 어떻게든 여건을 마련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관심이 절실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처한 현실은 제대로 마주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현실마저도 외면하는 세태도 존재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절실할 일상의 안위가 일 년에 한 번 펼쳐지는 불꽃 축제보다 사소한 일로 치부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인 것입니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다수로부터 사소한 일로 취급되어 버리는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실존을 뒤흔드는 긴급한 상황일 수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실화를 모티브로 삼은 이 소설은 1985년 겨울, 아일랜드의 뉴로스를 배경으로 삼습니다. 석탄 배달을 하며 살아가는 빌 펄롱은 성탄을 앞둔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넘겨온 불편한 진실에 혼자만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성실히 가족을 위해 살아온 그는 자신이 석탄을 배달하는 수녀원의 보일러실에 갇힌 소녀를 발견하고, 그 순간 자신이 그동안 ‘사소한 것’이라 여기며 지나쳤던 기척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모두가 외면해온 현실이 펄롱에게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것이 됩니다. 고심 끝에 펄롱은 돌아올 불이익을 알면서도 침묵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는,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안을 더 이상 사소하게 두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전 세계적 관심이 요구되는 참상에는 시선을 두지 않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현상에 집중하는 세태가,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짚어내고자 하는 우리 시대의 나약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성탄을 앞둔 세상은 주님의 성탄이 품은 본질 대신 조명과 장식 같은 화려함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세상이 몰두하는 지점에서 벗어나,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 시대에 절실해 보입니다.

 

[2025년 12월 14일(가해)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국내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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