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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가톨릭 교리: 하느님은 살아계십니다!

648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12-03

[가톨릭 교리] 하느님은 살아계십니다!

 

 

구약은 선택과 계약의 역사

 

구약이 이야기하는 하느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구약성경 첫 구절은 하느님께서 ‘한처음에’ 계신 분이라 선포합니다.(창세 1,1) 하느님께서는 창조부터 세상 끝날 때까지 인간 가운데 계시며 인간과 함께하시는 분입니다.(이사 41,4; 44,6; 48,12 참조) 이분은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나시어 그들을 ‘선택’하시고, ‘계약’을 맺으신 분입니다. 선택과 계약, 이 두 단어는 구약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입니다. 하느님의 주도권, 즉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섭리하신다는 점을 전제합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시고, 계약을 맺으십니다. 계약의 이유와 목적은 먼저 그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통해 세상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계약을 맺게 되면 먼저 구원의 대상이 되고, 이후 구원의 도구가 됩니다. 

 

‘계시’(啓示, Revelatio, 단어 뜻은 ‘감추어진 것을 열어 보이다’)란 하느님이 하느님에 관해 알려주신 것입니다. 구약의 하느님께서는 먼저 당신을 드러내 보이십니다.(신명 29,28; 1사무 3,21; 이사 22,14 참조) 하느님이 당신을 알려주셔서 인간은 알게 됩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탈출 33,20) 하느님은 인간과 함께하시지만 동시에 인간의 시야 밖에 계십니다. 이를 하느님의 내재성과 초월성이라 합니다. 구약에 따르면 신앙이 없는 곳에는 ‘하느님 얼굴’이 감추어집니다. 하느님 얼굴이란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갖는 깊은 친교, 하느님 도움과 현존을 성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탈출 23,15. 17; 34,20. 23-24; 시편 24,6; 42,1-2; 이사 1,12 참조).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한처음에’는 ‘태초에’, ‘무언가 시작되기 이전에’라는 뜻입니다. ‘한처음’은 오직 하느님만 존재하셨던 때이고,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십니다. 구약성경 맨 처음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세기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세상을 6일 만에 창조하셨고, 여섯째 날에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6일 만에 혹은 144시간 만에! 이게 가능한 일이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인가요?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의 과정과 방식을 대부분 사람은 더 이상 믿지 않습니다. 만일 과학자들에게 창세기에 나오는 과정대로 우주와 세상이 창조되었는가에 대한 진위 여부를 묻는다면 코웃음만 칠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오랫동안 하느님에 의한 세상 창조를 믿어 왔고, 창세기의 가르침을 받아 들여왔습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내용은 모두 동화 같은 이야기 혹은 과학에 무지했던 옛사람들의 과장일까요? 아니면 일부 신심 깊은 사람들의 주장처럼 창세기의 모든 내용은 글자 그대로 믿고 따라야 할까요?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의 세상 창조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할까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창조 과정의 하루가 실제 하루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 주장하는데, 태양이 넷째 날에 가서야 비로소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세상 창조가 6일 동안, 즉 144시간 만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창조설화는 여전히 중요한데, 이는 하느님과 세상과 인간에 대한 중요한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창조는 하느님의 깊은 신비, 즉 창조주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창조 사건은 과학의 눈이 아니라, 신앙의 눈으로 봐야 하고, 신비 사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인간 스스로는 깨달을 수 없고, 하느님께서 알려주셔야만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말씀하시기를 …” 세상이 하느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창조설화의 주된 내용입니다. 창조설화는 ‘사실’의 기록이 아닙니다. ‘사실’이란 6하원칙에 따라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등의 기준에 따라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세상 창조 기록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진실’의 기록입니다. 눈앞의 현상에 주목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진실은 현상을 통해 드러난 숨은 의미,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세상이 하느님에 의해 세상 만물과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증언합니다. 누구도 하느님의 세상 창조를 목격한 사람은 없고, 옆에서 그 과정을 기록한 사람도 없습니다. 창세기 기록처럼 세상이 6일 만에 창조되었는지 알 수 없고, 반대로 창조설화를 부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창세기는 과학적 증명이 필요한 책이 아니고, 하느님 계시를 당시 이해 능력과 문화 안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창세기의 목적과 의도는 창조 과정에 대한 객관적 기술이 아니라, 창조의 이유와 목적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온 세상의 창조주이자 구세주라는 것, 하느님께서 인간이 살아갈 땅과 세상을 마련하셨고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구체적 현존의 장소 

 

하느님은 계시는가? 예, 하느님은 분명 계십니다! 물론 인간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누구나 눈으로 볼 수 있거나, 혹은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기도하는 대로 움직인다면, 그분은 하느님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거나, 원할 때 눈앞에 드러낼 수 있다면 그분은 하느님이 아닙니다. 바람이 그물에 걸리지 않듯이 하느님은 인간의 머리로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영적이고 이성적 능력을 통해 하느님에 대해 극히 일부를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구약은 하느님께서 인간 세상 안에 활동하시며 동시에 인간 세상을 초월해 계신다고 증언합니다. 하느님은 초월해 계셔서 인간이 보거나 만질 수 없지만, 분명히 인간과 함께하십니다. 인간과 함께하신다는 구약의 증거가 ‘계약의 궤’와 ‘만남의 천막’입니다. 계약의 궤가 모셔진 만남의 천막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야훼 하느님의 임재와 현존 체험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입니다.(탈출 33,7-11 참조) 하느님은 함께, 그리고 초월해 계시는 분이시기에 구약의 백성에게 그분은 언제나 “살아계신 하느님”(1사무 17,26. 36; 2열왕 19,16)입니다. 하느님을 만났던 많은 이는 하느님의 존재를 알고, 그분 현존 앞에 머물고자 했습니다. 하느님 존재와 현존은 완전한 침묵 속에서만 들을 수 있고, 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5)

 

[성모님의 군단, 2025년 11월호,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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