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칼럼: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지녀야 할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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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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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럼]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지녀야 할 책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속 ‘인류의 빛(Lumen Gentium)’이라는 제목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이하 ‘교회 헌장’)은 14항부터 17항까지를 할애해 가톨릭 신자와 예비신자, 비가톨릭 그리스도인, 비그리스도교 종교인, 자기 탓 없이 복음과 교회를 모르지만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이 등을 섬세하게 구분합니다. 교회 헌장은 ‘교회에 완전히 합체된 사람들’로 표현된 가톨릭 신자들과 더불어 언급되는 모든 이들에게 나름의 구원 가능성이 주어졌음을 알립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대두되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가톨릭 신자에 대해 언급하는 14항의 마지막 부분에서 “교회에 합체되더라도 사랑 안에 머무르지 못하고 교회의 품 안에 마음이 아니라 몸만 남아있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라고 선언하는 대목입니다. 교회 헌장은 단순히 교회에 몸담고 있는 것으로 교회와 완전한 합체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일깨워줍니다. 한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중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라는 제목으로 엮인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이하 ‘사목 헌장’)은 21항을 통해서 무신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목 헌장은 무신론자들이 하느님을 부정하게 된 연유가 교회가 보인 잘못된 모습으로부터 기인한 것은 아닌지를 살핍니다.교회가 세상 앞에서 보여야 할 ‘책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60여 년 전 가톨릭교회가 다짐하듯 선언했던 문헌 속 내용들은 교회가 아직 다 하지 못한 책임에 더욱 집중해야 함을 일깨웁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1927년 영국 비종교인협회에서 버트런드 러셀이 종교에 관해 강연한 내용을 엮은 책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의 폐부를 찌르는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시대를 대표한 철학자 러셀이지만, 사실 그리스도교를 향한 그의 비판은 굉장히 지엽적이라는 한계를 보입니다. 그의 주장은 근본주의적 색채가 매우 짙은 1920년대 영미 개신교회의 분위기에 초점을 맞춘 비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그리스도교가 보이는 현실이 백여 년 전 러셀이 펼친 비판에서 자유로운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교를 향한 러셀의 지엽적이며 한정적이고 소모적이기까지 한 비판은, 시대를 초월하지 못한 채 고여 있는 일부 그리스도교 내의 행태들, 곧 교회에 몸만 남아있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 모습으로 인해 시대를 초월하는 주장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결국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오늘날 우리 교회가 지닌 문제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는 모습’에서 기인함을 알려줍니다. 더불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비딱한 시선으로, 교회를 왜곡된 관점으로 바라보는 데 교회공동체 스스로가 일조한 것은 아닌지를 성찰하도록 이끕니다. 그런 의미에서 백 년 전 그리스도교를 향한 러셀의 비판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60년 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보인 자성의 태도는 아직도 유효해 보입니다.
[2025년 11월 9일(다해)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평신도 주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국내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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