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 신학: 죽음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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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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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학] 죽음의 문화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타인은 내 삶의 편의를 위해 생명을 마땅히 희생해야 합니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인격은 중요치 않습니다. 나는 여러 면에서 우월하고, 또 무엇보다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 역시 나를 위해 희생하십시오.”
어떠신가요? 누구나 이러한 생각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이라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사고를 합리화하거나 강요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러한 문화를 “죽음의 문화”라고 부릅니다.
“죽음의 문화”는 1995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회칙 〈생명의 복음〉을 통해 처음 사용한 표현입니다. 이 회칙에서 교황님은 낙태, 안락사, 혼인이 결여된 성행위 등 비윤리적인 사회 현상을 죽음의 문화라 일컫고 있습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생명 혹은 타인의 인격을 이용하거나 폐기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 현대사회는 더욱 죽음의 문화에 지배되고 있습니다. 자극적인 대중문화, 인간의 성 상품화, 쾌락을 위한 성관계에 관대한 문화, 죽음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사고, 아기의 생명보다 자기 결정권이 중요하다는 주장, 어떠한 형태든 사랑으로 인정하는 문화, 재물이 성공한 삶의 지표가 되는 사회가 우리의 세상입니다. 그 결과는 책임 없는 임신과 낙태, 가정 파괴, 자살, 마약, 무분별한 성행위, 그로 인한 인격의 파괴, 가난한 이들의 고통입니다. 그럼에도 낙태죄 폐지, 안락사와 동성혼 합법화를 위한 시도가 지속되고 있으며 이를 반대하면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고 비난받습니다. 이 안에서 그리스도인들 역시 때때로 계명을 잊은 채 죽음의 문화에 젖어들고 이를 합리화하며 필요할 때만 하느님을 찾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자유는 그 자체로 고귀하지만 어디까지나 하느님 안에 있을 때 참 의미를 갖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귀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의 뜻에 반하는 자유는 ‘자유’가 아닌 ‘방종’입니다. 방종이란 책임 없는 권리 행사를 뜻합니다. 반면 자유란 책임이 포함된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인내, 사랑이 담긴 행동이 진정으로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방한하셨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 생명이신 하느님과 그분의 모상을 경시하고,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빕니다.”(2014년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 강론)
[2025년 7월 13일(다해) 연중 제15주일 서울주보 5면, 방종우 야고보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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