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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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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19세기 가톨릭교회를 빛낸 몰로카이의 성 다미안에 관한 연구: 삶과 영성을 중심으로

230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12-31

19세기 가톨릭교회를 빛낸 몰로카이의 성 다미안(St. Damien, Molokai)에 관한 연구 : 삶과 영성을 중심으로*

 

 

Ⅰ. 머리말

Ⅱ. 가톨릭교회의 선교에 대한 이해

Ⅲ. 요한복음 21,15-17에 근거한 사목자의 기초 원리

Ⅳ. 사제 다미안의 부르심과 사목적 삶

Ⅴ. 선교 사목 영성의 모델, 다미안 신부

Ⅵ. 맺음말



국문초록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승천하신 이후 사도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가톨릭교회는 하느님 구원 사업을 위해 충실한 목자, 선교사, 성인 성녀 등 교회의 등불이 되는 많은 보화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라고 말씀하셨고 또한, 이 사명을 받은 교회는 지속해서 그분의 메시지를 선포해 왔다. 그분 메시지의 핵심은 사랑이다. 즉,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35)라는 말씀이다. 따라서 이 사랑은 인류 구원을 위해 초대받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사제 다미안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고자 몰로카이(Molokai)에서 16년간 선교사로 또한, 본당 신부로 사목했다. 그는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나병 환자들을 위해 사랑으로 건설했다. 사제 다미안은 요한복음 21, 15-17에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착한 목자의 삶 그 자체였다. 착한 목자의 사명은 예수님의 명령인 내 양을 돌보고, 먹이고, 치는 것이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사랑으로 실천한 사제 다미안은 벨기에 트레멜로(Tremelo)에서 태어나 독실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족과 함께 지낸 어린 시절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선교 사제로 사목을 시작했다.

 

몰로카이의 나환자촌에서 사제 다미안은 강하고 열성적으로 나병 환자들에 일용할 양식과 영적 양식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몰로카이에서 그는 외로움과 고립, 비난에 시달렸으며, 일부 거짓 주장에 직면하여서는 모함이라는 고통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는 확고한 믿음과 인내를 지니고 성찬례의 주인이신 예수께 봉헌하였다. 그는 나병 환자로 환우들에게 희망과 빛과 생명의 존엄성을 심어 주고 생을 마감한다. 그는 착한 목자로서, 선교 사제로서, 자신의 전 존재를 하느님 백성과 예수님을 위한 희생 제물로 봉헌하였다. 따라서 그분의 삶과 영성에 관한 연구가 세상 현장에서 일하시는 사목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그분의 신앙과 삶 안에 스며있는 영성 중 어느 한 부분이라도 실천해 보기를 바란다.

 

 

Ⅰ. 머리말

 

가톨릭교회는 사도 시대의 역사 이래로 하느님을 향한 신앙과 거룩함의 열정적인 증인, 하느님 구원 사업의 유능한 선교사, 사랑과 섬김이 충실한 목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회의 등불이 되는 헤아릴 수 없는 성인 성녀들의 보화를 간직하고 있다. 이 보물은 말씀이 성취된 징표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 (마태 16,18)라고 말씀하시면서 교회의 기초를 선포하셨다. 또한,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라고 말씀하셨듯이 교회에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명을 받은 교회는 계속해서 그분의 메시지를 선포해 왔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선교 담론의 핵심에는 “샘 같은 사랑”, 곧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에서 보이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다. 교회의 선교적 성격은 예수께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요한 13,34)”라고 말씀하시고 그 새 계명은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35)라는 말씀이셨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바치도록 부름을 받은 교회 사명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사제 다미안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고자 나병 환자들의 무덤인 몰로카이(Molokai)에서 16년간 본당 신부로 사목하였다. 그는 서로의 존중, 상호 수용, 협력을 바탕으로 본당 공동체 건설에 협력과 헌신으로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사랑으로 건설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사제 다미안의 사목적 차원을 강조하고, 교회의 사목자들이 자기만족에서 벗어나 스스로 거룩함을 추구하고 사랑과 봉사의 제자로서 하느님께 응답하도록 도전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미지근한 삶으로 일관된 수도자, 사제, 특히 기능적 의무만 수행하는 이들에게 본 연구는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목자들의 영적 생활과 사목적 헌신에 있어 자기 성찰과 쇄신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노력으로 그들은 도전에 직면하여 인내심을 키우고 다미안이 연약함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주님께 대한 신뢰와 소망을 두고 그분께 모든 것을 내어놓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란다. 따라서 본 연구는 착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목 활동을 쇄신하고 특히 사목 생활에 헌신하는 목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신앙과 행동에 기초한 사목 영성의 모델을 사제 다미안에게서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아가 본 연구를 위해 우선 적으로, 가톨릭교회의 교의적 가르침을 바탕으로 선교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고, 요한복음 21, 15-17에 근거하여 사목의 원리와 기초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고 사제 다미안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과정과 사목자로서 그의 삶에 대해 살펴보고, 선교 사목의 모델인 사제 다미안의 영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Ⅱ. 가톨릭교회의 선교에 대한 이해

 

가톨릭교회는 그 존재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명을 구현한다. 또한, 그 사명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첫 번째는 사명의 기본 담론이고, 두 번째는 그 민족과 시대의 구체적인 현실을 고려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사명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 「만민에게」(Ad Gentes Divinius)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계획은 ‘원천적 사랑’ 곧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서 흘러나온다. 성부께서는 ‘시작이 없으신 시작’이시므로 그분에게서 성자께서 나시고 그분에게서 성령께서 성자를 통하여 나오신다. 그 성부께서는 지극히 자비로우신 호의로 자유로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은혜로이 당신과 함께 생명과 영광을 누리도록 우리를 부르시어 신적 선성을 아낌없이 베푸셨고 또 끊임없이 베푸신다. 이렇게 만물의 창조주이신 성부께서는 마침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1코린 15,28 참조)이 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동시에 우리의 행복을 돌보신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혼자만, 어떠한 상호 관련도 없이, 당신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부르시기를 바라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들을 한 백성으로 세우시어 흩어져 있던 당신 자녀들이 그 백성 안에서 하나로 모이기를 바라셨다.1)

 

이러한 근원적 담론과 관련하여,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라고 말씀하셨듯이 선교의 원초적 원천은 하느님이시다. 아버지 하느님은 교회가 기원을 찾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복음 안에서 증거가 되는 원천이시다. 그리고 그분에게서 정점에 이른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당신이 떠나신 후 사명을 수행하는 데 영원히 그들과 함께할 또 다른 협조자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요한 14,15-31 참조).

 

파견이라는 주제는 예수로부터 사도들과 교회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사명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사명을 맡기셨다.(마태 28,16-20; 마르 16,14-18; 루카 24,44-49; 요한 20,19-23; 사도 1,4-8 참조). 교회는 처음부터 선교를 위해 사람들을 땅 끝까지 파견하고 때때로 교회의 선교적 성격을 재확인하고 있다. 이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에 맡겨진 구세주 그리스도의 사명은 아직 완성되려면 멀었다. 그리스도 강생 후 두 번째 천년기가 끝나감에 따라 인류에 대한 전반적인 견해는 이 사명이 아직 시작에 불과하며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이 사명을 위해 헌신해야 함”2)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터인즉,…”(마태 16,18)라고 말씀하시면서 교회의 기초를 선포하셨다. 또한, 그분은 교회를 세우시면서 사도들에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라고 말씀하시며 교회에 사명을 주셨다. 이처럼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이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그분의 도움을 받아 계속해서 그분의 메시지를 선포해 왔다.

 

베드로는 교회의 기초뿐 아니라 교회의 존재 방식과 선교 활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편으로는 그의 강인함과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실패로 특징지어지는 베드로의 사도직은 예수님의 제자 됨을 위한 장르가 된다. 그런데도 요한복음 21,15-17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묻는 것은 사랑의 계명을 확인하는 것이며, 양들을 먹이거나 돌보라고 하는 것은 섬김의 사랑을 실현하라는 계명이다. 이에 대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복음을 전하는 이들, 즉, 선교사가 지녀야 할 덕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선교사는 ‘영혼을 위한 열심’, 곧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영감을 받은 열심함이 촉구된다. 이 열심은 관심, 부드러움, 연민, 개방성, 가용성, 사람들의 문제에 관한 관심의 형태를 취한다. 예수님의 사랑은 매우 깊다. ‘사람 속에 있는 것을 아시는’(요한 2,25) 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베풀어 사랑하셨고, 그것이 거절당했을 때 고통을 당하셨다. 선교사는 사랑의 사람이다. 모든 형제자매에게 그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하기 위해 선교사는 이웃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보여야 한다. 선교사는 교회의 정신, 모든 민족과 개인, 특히 가장 작고 가난한 형제들에 대한 교회의 개방성과 관심을 자신 안에 품고 있는 ‘보편적인 형제이다.’ 이처럼 그는 인종, 신분, 이념의 장벽과 분열을 극복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리스도처럼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셨다.’(에페 5,25). 교회에 대한 깊은 사랑만이 선교사의 열정을 지탱할 수 있다.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셨듯이 그분의 매일의 압박은 ‘모든 교회를 위한 염려’(2코린 11,28)이었다. 모든 선교사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충실함은 교회에 대한 충실함과 분리될 수 없다.’3)

 

또한, 사명의 두 번째 차원, 즉 예수님의 사명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봉사와 사랑을 통한 하느님 사랑의 증거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양을 먹이고, 돌보라고 말씀하셨다. 이로써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바치심으로 사랑을 입증하신 것처럼 형제자매를 섬김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입증하라고 말씀하셨다.4)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다양한 자선과 봉사를 통해 계속해서 하느님 사랑의 선포자가 되고 있다.5)

 

나병 환자들 사이에 선교사로서 또한, 사목자로서 사제 다미안의 목숨을 앗아간 비이기적인 헌신은 봉사에 대한 사랑의 완벽한 반영이다. 그는 하느님의 뜻과 계획에 온전한 순종으로 버려진 나병 환자들을 섬기는 일에 투신했다. 어쩌면 요한복음 21, 15-17은 사제 다미안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방식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다미안은 사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의 질문에 직면하여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담대하게 예수께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가톨릭교회 사목자들이 실천할 수 있는 사제 다미안의 영성과 사목적 섬김의 근본적인 특징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Ⅲ. 요한복음 21,15-17에 근거한 사목자의 기초 원리

 

이 장은 요한복음 21,15-17에 대한 주석적 연구에 초점을 둔다. 이는 네 번째 복음서 21장 전체의 맥락에서 사목자의 의무와 방향의 기초로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본문의 대화는 베드로의 사랑, 순종, 신실함의 측면을 드러내며, 그 결과 예수께서는 그에게 특히 그리스도의 양 떼를 치는 사목적 의무를 사명으로 위임하신다. 또한, 이 본문은 사목 영성의 구체적인 특성과 가톨릭교회의 사목 사명과 방향의 기초가 될 수 있다.

 

1. 본문의 일반적 개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6)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선교의 모티브가 파견됨이라는 주제를 반복하고 있고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선교의 기본 메시지이다. 요한복음 21,15-17은 주님이신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갈릴래아에 나타나셔서 물고기를 잡는 기적을 베풀어 제자들의 믿음을 회복시키고 그들에게 사명을 주신 에필로그(요한 21,1-25)의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이 임무를 통해 당신의 구원 메시지가 땅의 가장 먼 구석에 있는 모든 사람과 예수님 복음 선포의 초석인 베드로에게 전해져야 한다고 의도하신 것으로 보인다. 교회는 “세 가지 사목적 임무, 즉 예수님의 양들을 먹이고, 그의 양들을 돌보고, 그 양들을 치는” 직무를 맡았다.7)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였을 뿐만 아니라 양들을 돌보고 순교의 의무를 통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려고 했기 때문에 사목적 사명의 가장 중요한 인물일 수 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양무리를 양육하는 임무에서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은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탁월한 사랑과 순교를 통해 증언한 것이라 할수 있다. 그럼에도 존 윙가드(John Wijngaards)는 예수님 사랑의 사명이 단순히 제자 그룹만이 아니라 모든 신자에게 확장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이 위대한 사명은 특별히 영적 지도자인 사도들에게 맡겨졌다. 죄를 용서하는 성사의 권한(20,23)은 분명히 세례, 고해성사, 병자 성유 등인데, 이는 성품을 받은 봉사자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흥미로운 특징은 이 '사명'의 임무를 예수의 제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제한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요한은 '사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요한은 아마도 직무 사제나 희생 제물이 될 선택된 소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명에 헌신하는 이들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 모든 신자는 그분이 계시하신 진리를 증거하고(15,26-27), 온 세상에 구원을 가져오고(3,16), 풍성한 생명을 얻는(10,10) 그분의 사명에 참여하는 모든 제자이다.8)

 

그러므로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보이는 제4 복음서의 선교 담론의 핵심은 상호 사랑, 친밀한 관계, 희생이 동반된 봉사이다. 그러므로 데이비드 포드(David F. Ford)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 번의 반복은 이전의 부정보다 더 중요할 뿐만 아니라 용서, 재활 및 상호 관계를 나타낸다. 그것의 필요성은 또한 우리가 그분과의 관계를 훼손한 후에 다시 완전히 사랑받고, 용서받고, 신뢰받고, 온전한 상호관계로 환영받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암시한다. 아마도 우리가 그분과의 관계를 망치는 패턴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예수님 앞에 사랑 안에서 반복적인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9)

 

이런 방법으로 예수께서는 세상에 당신 메시지를 전하는 도구가 되기 위해 베드로의 완전한 충실성을 보장하셨다. 베드로의 충실성은 한결같은 사랑과 예수님과 함께 머물며 십자가에 이르는 갈바리아 길에서 그분을 따르는 친밀함으로 특징지어진다.

 

요한복음 20,19-23에서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를 기원하신 후에 “성령을 받으라.”(요한 20,23)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3)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용서와 화해가 그리스도 사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의 사명은 성령의 역사로 이 땅에 지속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요한복음 3,4 주석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수하시는 성령의 현존에 관하여 “성부께서 성자에게 영원 전부터 성령을 낳게 하는 권세(spirandi)를 주셨기에 성령이 성부에서와 마찬가지로 성자에게서도 나온다”라고 해석된다. 또한, 이 성령은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만큼 그리스도를 나타내시는 사명을 의미한다고 말한다.10) 또한, 요한복음 21,15-17은 독특한 선교의 형태라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 선교의 보편성의 차원을 드러내기 위해 대화에 참여하는 다양한 공동체에서 발전한 요한 선교 신학의 더 넓은 맥락을 읽을 수 있다.11) 즉, 살아 계신 하느님을 나타내는 (요한 1,18) 성령의 현존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에 계시된 진리를 입증하고 증언하는 제자들의 공동체와 함께하는 지속적인 현존이다. 베드로 또한 이 은총을 받고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2. 착한 목자에 관한 이야기 맥락

 

착한 목자 이미지는 신약성서 전통에서 널리 사용되는 이미지이다. 요한복음서는 예수를 문으로 묘사하는 착한 목자에 대한 광범위한 이야기를 제시하고 있다. 제 4복음서는 목자들이 직면한 위협을 식별하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나는 착한 목자이다.”(요한 10,11)와 “나는 문이다.(요한 10,9)”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선포를 통해 착한 목자의 이미지를 확장하고 있다. 케네스 베일리(Kenneth E. Bailey)는 요한복음 10,1-18에서의 위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동의 목자는 두 가지 유형의 위협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도둑(개인이나 갱단)이다. 다른 하나는 야생동물에서 나온다. 1세기에는 늑대, 사자, 표범, 곰, 표범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19세기까지는 표범이 있었고 늑대도 많았다. 이런 동물들이 마을에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도둑은 어디에나 위험했다. 그들은 한밤중에 마을에 있는 양우리의 벽을 넘어 공범에게 동물을 넘겨주고 몇 분 안에 탈출할 수 있다. 또는 광야에서 그들은 종종 물이 마른 좁은 계곡 입구 근처에 숨어서 목자를 앞세워 한 줄로 천천히 지나가는 양 떼를 기다렸다. 그리고 도둑은 무리의 줄 끝에 있는 양을 쉽게 낚아채고 사라질 수도 있었다.12)

 

착한 목자 내러티브에 관해 안드레아스 J. 쾨스텐베르거(Andreas J. Köstenberger)는 미래의 선교를 가리키는 선교 내러티브임을 강조한다. 즉, 그는 “요한복음 10,16의 진술은 이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께서 제자들을 통해 높여지실 미래의 사명을 분명하게 언급하는 몇 가지 말씀 중 하나이다.(요한 4,34-38; 14,12; 17,20; 20,21-23; 21,15-19 참조).”13)라고 말한다. 또한, 케네스 E. 베일리(Kenneth E. Bailey)는 자신의 양 우리 밖에 있는 다른 양들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이 이야기에 착한 목자가 되는 또 다른 임무, 즉 복음화와 선포를 위해 그들을 자신의 양 우리로 데려오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을 추가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반되는 “십자가와 부활은 착한 목자가 미래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선포하기 위한 기반”이 된다.14)

 

십자가와 사랑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사랑의 행위로 표현하신다. 즉 자신의 능력과 권위로 양 떼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착한 목자의 특징을 나타내신다. 그러나 착한 목자의 사랑 이야기는 십자가로 끝나지 않고, 그 너머의 영광과 부활로 끝나게 된다. 이에 대해 케네스 E. 베일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여기 요한 복음 10장에 나오는 착한 목자에 관한 전통적인 이야기는 양들을 보호하고 구원하기 위해 목자가 치르는 대가를 훨씬 더 가중하고 있다. 그런 다음 부활의 가장 높은 단계로 나아가게 한다.”15)

 

착한 목자 전통은 이야기의 결말, 즉 흩어진 양을 집으로 데려오고, 잃어버린 양을 찾고, 그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결말에 주목해야 한다. 이에 케네스 E. 베일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여기 요한복음에서는 양들이 매일 주인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 그들은 자유롭게 드나들고 목초지를 찾는 자유를 행사한다. 목자가 그들을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사랑받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요한복음의 마지막 결말은 한 무리 곁에 한 목자가 있는 것처럼 구원의 가능성이 제자들과 몇몇 사람들에게 국한 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포함되도록 확장되어 있다.16)

 

3.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7)

 

예수님은 요한복음 21,15-17에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셨다. 이 질문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에 기초를 둔 사랑의 관계와 삶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F. 포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21,15-16, 그리스어 동사 agapan)는 사랑, 아가페는 제자와 예수님과의 관계 중심이며, 이는 또한, 하느님과 세상과의 관계 중심이기도 하다.”17)

 

본문에서 예수님은 아가페라는 의미로 베드로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이에 대해 존스 바르게즈(Johns Varghes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가페는 스스로는 어떤 동기도 없고 가치에 무관심한 사람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해 창의적이고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으로 변화된다. 또한, 에로스는 감각적인 영역인데, 아가페는 에로스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리스도교의 아가페 또는, 사랑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 말했듯이 카리타스와 일치한다. 이 아가페적 사랑은 제자들의 삶의 핵심인 관계와 사랑을 유지하도록 초대한다.18)

 

또한, 제4 복음서에 나오는 사랑의 이미지는 신랑-신부, 우정과 계약의 이미지로 표현되기도 한다.19) 즉, 가나의 혼인 잔치(2,1-11),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신랑으로 언급하는 이야기(3,27-30), 사마리아 여인(12,1-8), 베타니아의 마리아(12,1-8) 및 막달라 마리아(20,1-2. 11-18)와 관련하여 신랑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구절들이 있다.20) 또한, 예수님과 베타니아 가족의 우정(11,1-46; 12,1-8), 사랑하는 제자가 등장하는 본문(13,23-25; 19:25-27; 20,1-10; 21,1-14; 21,2-24), 그리고 예수님의 친구들(15,3-15)의 우정이라는 주제로 말씀하고 있다.21)

 

이처럼 예수께서는 사랑을 제자들의 정체성에 관한 이상으로 삼고 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델이자 근원으로 삼아 그들 사이의 일치 속에 하느님에 대한 상호적인 사랑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사랑의 새 계명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 차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의 새 계명은 제자 공동체를 넘어 예수께서 ‘반석’ 위에 세우신 교회로 나아가는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새 계명에 대해 존스 바르게즈(Johns Varghese)는 이 새 계명의 오해 소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사랑의 계명이 이를 대체하는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새)계명을 대체 계명으로 이해하는 것은 예수님과 (새)계명이 두 개의 별개의 실체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를 통해 계명에 충실할 때, 제자들은 예수께서 물리적으로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을 때도 그분께 계속 애착을 두게 된다. 계명은 현존하지 않는 (육체적으로) 예수를 현존하게 만든다. 사랑의 계명 성취를 통해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 사이 사랑의 계약 관계는 외부세상에 열려 있다. 공동체 사이의 이 사랑은 그들 사이와 예수님과의 일치의 가시적 표징이 되며, 이는 외부(세상) 사람들을 예수께로 인도하게 된다.(요한 17,23 참조)22)

 

그리고, 이 계명이 전제하는 관계는 친밀함과 친교의 관계이며, 이 계명이 요구하는 사랑은 ‘목숨을 바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4. “나는 착한 목자이다”(요한 10,11)

 

예수께서는 “나는 착한 목자이다.”(요한, 10,11)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착하다’라는 단어는 칼로스(kalos)인데, 이는 ‘고상한, 아름다운, 훌륭한, 귀한, 올바른, 적절한, 적합한, 좋은’을 의미할 수 있다. 여기서는 ‘모범이신 목자’라는 이미지에 잘 맞는다. 또한, ‘경이로운 목자’라는 이미지는 예수님이 어떻게 신성과 인성을 지니셨는지, 일반적인 범주를 놀라운 방법으로 초월하시는지를 나타내는 방식이 포함되어 있다.23)

 

이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본받는 참된 목자가 되라는 사명을 받았음을 인지할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양 떼’를 돌보는 것이 그의 임무이다. 크리스토퍼 A. 포터(Christopher A. Porter)는 이 ‘양떼’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즉, 이러한 ‘양떼’의 비유는 “국가, 또한, 거짓 '목자'로부터 받는 심한 억압으로 매일 고통받는 남성과 여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한다.24)

 

이러한 유사성은 요한복음 21,15-17에서 베드로의 목자적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포드(David F. Ford)는 진정한 목자는 “정의와 권력의 사용과 남용; 계약; 두려움; 약자, 부상자, 실종자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 하느님 중심의 평화, 정의, 축복의 이미지에 동물과 물질적 창조물을 포함하는 것이 풍요로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25)

 

베드로는 “내 양을 돌보아라”(요한 21,15-17)라는 사명을 받았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목자의 임무를 보여 주시면서, 다른 양들도 데리고 와야 할 착한 목자 예수(요한10,16)의 의무, 즉, 다른 양 떼까지도 먹이고 돌보는 의무가 있음을 암시하신다. 이러한 목자의 사목적 의무에 대해 존스 바르게즈(Johns Varghese)는 에제키엘서 34,23에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즉, ‘나는 그들 위에 유일한 목자를 세워 그들을 먹이게 하겠다. 바로 나의 종 다윗이다.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에제 34,23). 그리고 요한복음 21,15-17에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양 떼를 먹이고(boske) 돌보고(poimaine) 양 떼의 목자가 되는 일을 위임하신다. 베드로는 훗날 순교의 삶을 바칠 때까지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양 떼의 참된 목자임을 드러낸다. (요한 10,11; 요한 21,22 참조).26) 이처럼 그리스도의 양떼를 먹이고 돌보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 사랑의 결과이다. 또한, 요한복음 21,15; 21,16; 21,17에서 “어린 양”과 “양” 그리고 “먹이”와 “돌보아라” 사이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데이비드 F. 포드(David F. Ford)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에 나오는 양들은 취약하고 특별한 보살핌과 보호가 필요한 것과 관련이 있다.(이사야 40,11; 53,7; 예레 11,19). 지도자는 약자, 젊은이, 소외된 자, '작은 사람들'의 성장에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그리고 그는 두 번째 변형에 관해서도 말한다. 이는 먹이를 주는 것 이상으로 이미지를 확장하고 광범위한 사목 업무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키게 한다.27)

 

이처럼 제4 복음서에서 양을 먹이고 돌보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데서 오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양치기의 일, 즉 그들을 먹이고 돌보는 일, 그들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요한복음 21,15-17의 연구는 교회의 사목 사명의 기초를 놓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제 다미안의 부르심과 응답을 고려하는 것도 그 사명 안에서일 것이다.

 

 

Ⅳ. 사제 다미안의 부르심과 사목적 삶

 

이 장에서는 사제 다미안의 삶과 사목 활동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그의 생애에 대한 짧은 역사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추종자로서 사랑과 봉사의 종이 되는 기본 측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벨기에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예수 마리아 성심 수도회 수도자로 선교 여행을 시작하여, 몰로카이의 나병 환자들 사이에서 죽을 때까지의 16년간의 삶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상의 사랑과 희생을 반영하는 사도적 소명을 엿볼 수 있다.

 

1. 어린시절과 사제 성소

 

요제프 드 베스테르(Jozef de Veuster), 가족과 친구들에게 “Jef”로 알려진 다미안(Damien) 신부는 1840년 1월 3일 추운 겨울 아침 벨기에 트레멜로(Tremelo)에서 아버지 프란스 드 베스테르(Frans De Veuster)와 어머니 안나 카타리나(Anne Catherine) 사이에서 일곱 번째이자 막내로 태어났다.28) 프란스와 안나 카타리나는 중산층 로마 가톨릭 신자였다. 이들은 벨기에의 고요한 농촌 마을에서 생활하며 가족, 친구, 친척들 사이에서 단순함의 신앙을 실천하는 농부들이었다. 프란스와 안나 카타리나는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을 통해 종교적 경건과 그리스도교적 미덕을 지향하도록 신경썼다.29)

 

부모가 계획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배우고 성장한 그의 성공적인 어린 시절 이야기 뒤에는 형제 아우구스트(Auguste)[뒤에 팜필레 신부]와만 공유했던 사제가 되겠다는 개인적인 꿈과 비밀 목표가 숨겨져 있었다. “만약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그의 형은 언젠가는 성 다미안과 코스마처럼 형제 사제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여 하느님을 섬길 것이라고 장담했다.”30) 그의 형 아우구스트는 1853년에 집을 떠나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1858년에 예수 마리아 성심 수도회에서는 사제직 후보자나 합창단, 선교사 형제로 지망생들을 모집했는데 후자의 두 그룹은 학문적으로 덜 까다로운 편이었다. 그러나 다미안은 어디에도 합격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의 형 팜필레(Pamphile)는 다미안이 거절당한 것을 알고 벤체슬라우스 빈커(Wenceslaus Vincke) 신부의 도움으로 다미안을 합창단 형제로 받아들여지게 했다. 그리고 그해 1858년 성탄절에 다미안을 성가대 형제로서 종교수련을 시작하도록 격려와 축복과 허락을 받았다. 이에 다미안은 부모님에게 “오늘 다시 한번 당신을 사랑하고, 내 마음은 당신의 선하심과 친절한 행동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31) 그후 형 팜필레가 1863년 2월 28일에 사제 서품을 받고 선교사로서의 파견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큰 형 팜필레 신부가 장티푸스에 걸리면서 하와이에서 사목할 수 없게 되자 다미안은 형을 대신해 하와이 선교를 자원하게 된다.

 

2. 사제 성소와 선교 여정

 

1864년 4월 17일에 다미안은 다른 두 명과 함께 부제로 서품되었고, 4주 후인 5월 21일에 호놀룰루(Honolulu)에 있는 평화의 성모 대성당(Cathedral of Our Lady of Peace)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신부가 되겠다는 다미안의 꿈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사제 다미안의 첫 번째 사목 임지는 빅 아일랜드(Big Island)의 푸나(Puna) 지역에 거주하는 약 350명의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다. 그곳 푸나 성당은 원주민들이 손수 지었으나 신자 수는 줄어들고 있었다. 사제 다미안은 푸나 성당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도전으로 이곳 주민들의 가정을 방문하였고 환대와 친절을 받으며 그곳에 머물렀다. 이곳 신자들의 환대와 감사하는 마음에 대해 형에게 이렇게 썼다.

 

...그들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사람들입니다. 다정하고, 상냥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자기 풍요를 추구하지 않고, 세련되게 살거나, 옷을 잘 입으려고 하지 않으며, 매우 친절하고, 필요한 것을 주고, 그들과 함께 밤을 보내야 할 때 보호해 줍니다. 심지어 완고한 이교들도 사제가 그들 가운데 방문하면 아주 잘 대해줍니다…32)

 

1873년 5월, 그는 짧은 휴가로 코할라(Kohal) 지역을 떠나 마우이(Maui)로 갔다. 그곳에서 마이그레트(Maigret) 주교는 하와이섬의 가톨릭 선교가 직면한 문제를 토론하던 중 다미안 신부는 몰로카이(Molokai)섬의 수백 명의 가톨릭 신자들과 나환자촌의 200명의 나병 환자들이 상주 신부 없이 사목적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불만을 표명했다. 사제는 몇 주 동안 나병 환자 수용시설을 방문하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마이그레트 주교는 전염병에 대해 매우 우려했기 때문에 사제가 그곳에 상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미안 신부의 설득 끝에 마이그레트 주교는 상주 사제로 머물 수 있게 그의 제안을 승인하고 1873년 5월 10일, 다미안은 몰로카이에 도착했다. 그는 나병 환자들에게 매일 아침 미사를 거행하고 저녁에는 저녁 미사를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또한 아침 미사 후에는 병자들을 방문하고 이들이 성당에 오도록 초대할 것이라고 발표한 후 “다미안 신부는 잠시 묵념을 위해 눈을 감았다. 그가 기도하는 동안 그의 미소는 사라졌고, 눈을 떴을 때 그의 얼굴은 엄숙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모인 회중의 모든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우리 나병 환자들이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 나오니...’라는 말로 미사를 시작했다. ‘우리 나병 환자들’이라는 선언은 회중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모든 시선이 이 사제에게 쏠렸다.”33) 이 선언을 시작으로 몰로카이에의 삶이 시작되었다. 몰로카이섬은 하와이 군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고 넓이는 약 10평방 마일에 달하며 약 500피트의 '팔리(pali)'라고 불리는 높은 절벽이 솟아 있다. 삼면이 갑자기 바다로 떨어지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곳은 추방된 죄수들을 탈출할 가능성 없이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34)

 

다미안 신부는 나병 환자 정착촌에서 최초의 상주 사제로 사목했다. 그리고 그는 나병 환자들에게 성찬례 거행과 영적 돌봄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좌절과 비참함과 죽음의 고통 속에 죽어가는 나환자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분명했다. 그는 1873년에 자신의 부모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즉, “나의 가장 큰 행복은 다른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이 불쌍하고 병든 이들 안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을 천국의 길로 인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35)

 

또한, 그는 여러 날을 수많은 아픈 사람들의 요청 때문에 잠을 설쳐야했다. 이럴 때면, 최대한 빨리 말을 타고 출발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비탈 주르댕(Vital Jourdain)은 이를 서사적인 방식으로 설명했다.

 

소박하지만 열정이 넘치는 하느님의 사람 덕분에 몰로카이에는 교회의 종소리가 울렸고, 교회는 신자들로 가득 찼다. 종교적인 잔치는 신선한 즐거움을 누릴 기회를 제공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은 그의 방문을 통해 영적으로 위로받았고 때가 왔을 때는 그의 품에 안겨 죽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에는 적극적인 종교 생활이 있었다. 그들의 종교는 단순하고 위안을 주며 성화시키는 종교였다. 몰로카이의 작은 교회는 주님께 찬양을 드리고 자비로운 활동을 통해 신앙을 빛냈다.36)

 

이러한 다미안 신부의 노력은 정착지 생활의 성격을 바뀌어 놓았다. 그들은 음악을 좋아하고 시끄러운 축하 행사 등을 통해 환자들은 다시 한번 삶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슬픔에 찬 그들의 무관심은 사라졌고, 심지어 부분적으로 있었던 부도덕한 면도 사라졌다. 이기주의, 질투, 싸움은 건전한 기쁨으로 바뀌었고, 동정심은 같은 불행을 겪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게 했다. 이처럼 어둠의 그림자가 가득했던 정착촌을 정상적인 사회생활의 분위기로 조성하는 데에 다미안 신부의 헌신이 크게 작용했다.37)

 

3. 외로움과 고립, 그리고 왜곡된 시선들

 

선교 사제가 되고자 하는 다미안 신부의 열망은 자신의 내면을 계속 불타오르게 했고, 그것이 자신을 가족과 고국으로부터 분리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했고 오랫동안 가족들로부터 소식을 듣지 못함에 많이 힘들어했다. 자신이 고립되고 혼자라는 생각은 더욱 나병 환자들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얀 드 볼더(Jan De Volder)는 이렇게 말했다. 즉, “병이 나고 점점 더 돌아다닐 수 없게 되는 것은 활력 넘치는 다미안에게 끔찍한 시험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외로움이 더 컸다. 그는 선교사 생활의 대부분을 혼자 살았지만, 이제는 동료의 필요성을 더욱더 느끼게 했다. 1885년부터 다미안은 섬에 홀로 있었다.”38)

 

이처럼 그는 공동체 생활을 몹시 그리워했다. 극심한 외로움의 순간에 선교 사제 다미안이 형 팜필레에게 쓴 편지 내용에 대해 얀 드 볼더는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즉, “나는 거룩한 섭리에 굴복하고 유일한 동반자에게서 위로를 찾습니다. 즉, 나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성찬례 안에 계신 우리의 거룩한 구세주 안에 위로를 받습니다. 나는 종종 제단 아래서 고해성사를 하고, 거기에서 내적 고통의 완화를 청합니다.”39) 이처럼 그는 자신이 겪는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성체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님과 함께 머물렀다.

 

또한, 사제 다미안은 사목 초기부터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고립과 거부를 겪었다. 첫 번째 격리는 그를 나병 환자와의 접촉을 제한하는 분리법 때문이었고, 두 번째 격리는 나병 환자에게서 감염된 다미안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스러운 수준의 격리였다. 나병에 걸린 그는 어쩔 수 없이 격리에 직면해야 했고, 질병이 진행됨에 따라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40) 다미안은 언젠가 나병에 걸릴 거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나병 진단을 받았을 때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의료진을 비롯한 많은 사람은 환자들과 너무 밀접하게 접촉한 다미안의 부주의, 환자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은 것, 나병 환자 요리사를 둔 것, 그리고 개인위생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근 섬의 신부인 찰스 하이드(Charles Hyde)는 다미안이 나병 환자 여성들에게 부도덕한 행위를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는 다미안에게 쌓인 칭찬에 분개했다. 리차드 스튜어트(Richard Stewart)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이드 [신부]는 다미안 신부가 나병에 걸린 원인이 매독에 걸린 하와이 여성들과 동침한 신부의 죄악과 무분별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하이드 신부는 다미안 신부의 많은 공헌에 대해 가톨릭교회가 섬 전체에 이기적인 홍보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이드는 사제가 성취한 일은 보건국과 다른 사람들이 나병 환자들을 위해 행한 일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었음을 피력했다. 다미안 신부는 칭찬받을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잊혀야 할 타락한 신부인 것이다.41)

 

이 주장은 많은 나병 환자들에게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하고 전 세계적으로 보도되었지만, 곧 근거가 없는 거짓이라 판명되었다. 의학 전문가인 무르티즈 박사(Dr. Mourtiz)는 이를 믿지 않았다. 비탈 주르댕(Vital Jourdain)은 무즈티즈 박사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무르티즈(Mourtiz) 박사는 성관계를 통한 감염 이론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널리 퍼진 생각이 거짓임을 주장했다. 물론, ‘이 입증되지 않고 지지할 수 없는 가정은 많은 불행한 나병 환자들에게 마음의 가장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라고 덧붙였다. [...] 다미안 신부는 예방 조치와 위생이 부족하여 나병에 걸린 것이다”42)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함께 봉사했던 마리안 수녀(Sister Marianne) 역시 다미안이 “부주의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병 환자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기를 좋아했고, 설상가상으로 그는 나병 환자들에게 자주 파이프를 나누어 주곤 하였다. 사실 그는 손재주가 뛰어났다. 문제는 “자주 씻어주지 않아 나병균 감염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지적했다.43)

 

이러한 주장에 대해 헤르만 주교(Bishop Hermann)는 교회의 공식적인 견해를 밝힌다. 리차드 스튜어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여기 가톨릭 선교부의 수장으로서 제가 오랫동안 침묵을 지켜온 건 이번 공격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진술을 삽입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전의 다미안 신부의 도덕적 순수성에 반하는 하이드 신부의 진술에는 전혀 진실이 없음을 형식을 갖춘 가장 단호한 방식으로 선언합니다.’44)

 

마침내 다미안 신부의 명예와 명성은 회복되었지만, 그에게는 이 사건이 큰 아픔으로 남아 있었다. 또한, 이러한 주변 환경의 어려움은 그를 더욱 고통과 외로움의 끝으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44)

 

선교 사제 다미안은 1889년 4월 15일 몰로카이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나병 환자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하와이 반도의 나병 환자들에게 영원한 일몰과 같았다. 그는 이미 몇 년 동안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죽기 전 마지막 며칠은 꽤 힘들어했다. 3월 30일, 다미안은 벤델린(Wendelin) 신부에게 고해 성사를 받고 나서 “나에게서 당신은 우리 회원을 대표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총장님께 서신을 보내실 때 제가 성심회의 자녀로 죽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꼭 말씀해 주십시오.”라는 말과 함께 4월 15일에 생을 마감했다.45)

 

4. 선교 사제 다미안이 남긴 유산

 

나병은 성경이 증언하는 바와 같이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왔다. 그러나 나병 환자를 치료하고 보살피는 방식의 변화는 매우 느렸다. 나병 환자들을 섬기고 나병 환자로서 그들 가운데서 생을 마감한 사제 다미안의 영웅적 행위는 전 세계에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다. 특히 켈커타의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 of Kolkata)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다미안 성인을 통해 더욱 열심히 나병 환자를 섬기고 봉사할 수 있게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모든 공동체의 주보성인으로 추대할 수 있게 도움을 청하였다. 얀드 볼더(Jan De Volder)는 이 내용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1984년 5월 7일, 그녀는 자신의 공동체 구성원들이 사랑과 치유의 봉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성인을 요청했다. ‘다미안 신부님이 그 성자일 수도 있어요. 교황님, 우리 나병 환자들, 그리고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이 당신께 이 선물을 청합니다. 이 선물은 사랑의 성인이자 순교자이며 우리 수도자들에게는 아름다운 순종의 모범입니다.’46)

 

다미안 신부가 사망한 후 16년 동안 적어도 7개의 가톨릭 나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이 설립되었다. 또한, 데레사 수녀의 노력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승인은 교회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정부에서 운영하는 시설도 급격히 증가했다.

 

그밖에 가톨릭 사제가 활동하는 병원과 민간 및 정부 주도의 병원도 급격히 증가하였고 이에 종사하는 수도자들의 수도 증가하였다.47)

 

그러나 몰로카이 나병 환자 보호시설에서 그들을 섬겼던 영웅적 영웅담 뒤편에는 쓸쓸히 갈바리아 산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이는 나병 환자들을 섬기는 고된 육체적 노동, 이별의 감정적 투쟁, 외로움, 거부와 비판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나병 환자로서 극심한 육체적 고통은 십자가의 무게를 더하게 했다.

 

몰로카이에서 나병에 걸렸던 초기에, 다미안은 발과 다리에 일종의 따끔거림이나 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에 대해 비탈 주르댕(Vital Jourdain)은 이렇게 썼다. 즉, “1874년에 다미안은 발에 둔한 통증을 느꼈다. 그는 그것들이 너무 많이 타서 불안해했고 열로 인해 그것을 찬물에 담그기도 했으며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1876년에는 한쪽 팔에 마른 반점이 덮여 있어서 부식성 승화제로 처리해야 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것들은 누렇게 변했고, 사르사파릴라(sarsaparilla)를 마시자 조금 나아졌으나, 이를 멈추자 다시 나타났다.”48) 이처럼 다미안은 극심한 고통을 겪은 후 죽음을 맞이하며 갈바리아 산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한 고통의 여정을 입증했다. 1887년 11월 9일에 그는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나 자신은 오래전에 하느님의 섭리 때문에 이 혐오스러운 질병의 희생자로 선택되었습니다. 저는 이 은혜에 대해 하느님께 영원히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내 생각에는 이 질병이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의 나라로 가는 길을 조금 단축할 수도 있고, 심지어 더 직접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나의 희망이기 때문에 나는 이 질병을 나의 특별한 십자가로 받아들이고,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나도 거룩하신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 이를 짊어지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갈바리아 산꼭대기에 행복하게 도달할 때까지 인내하는 힘을 지닐 수 있도록 당신의 선한 기도로 도와주십시오.49)

 

이처럼 사제 다미안은 자신의 고통을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 산으로 가는 길로 묘사했다. 갈바리아와 십자가가 없는 그분의 이야기는 미완성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사제 다미안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견뎌냈다. 그의 유산 중의 하나는 바로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견디는 법을 보여 준 것이다.

 

 

V. 선교 사목 영성의 모델, 다미안 신부

 

이 장에는 요한복음 21,15-17을 기초로 하여 다미안 신부의 사목적 기초와 방향, 그리고 몰로카이에서 다미안의 사목 활동과 비교 방법론을 통해 다미안의 사목적 삶과 활동에서 구체적인 특징을 찾아내고 이 과정에서 그의 사목 영성을 발견해 보고자 한다. 요한복음 21,15-17의 예수님의 질문, 응답, 위임은 다미안 성인의 삶의 여정과 사목적 사명을 완수해 나가는 과정에서 하느님을 향한 응답을 통해 그분의 영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다미안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선교 사제가 되기 위해 가족을 떠났고, 최초의 상주 사제로 나병 환자들을 섬기기 위해 빅 아일랜드에서 몰로카이의 나병환자촌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본당 신부에서 나병 환자 신부로 나병 환자 형제들을 섬기며 그들 중 한 사람으로 죽기를 선택했다.

 

1. “다미안, 너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5-17에 나오는 베드로의 사명과 다미안의 삶의 여정, 즉 그의 삶과 사목 활동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너 나를 사랑하느냐?”(15절과 16절의 agapas me in vv. 15 & 16; phileis me in v.17)라는 질문과 대답은 다음과 같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알고 계십니다.”(philo se in vv. 15, 16,&17).” 특히, “사랑을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agapan과 philein)의 상호교환성”은 다미안의 사목 생활에 직접적인 의미를 지닌다.50) 즉, 이는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은 가장 우월하고 절대적인 사랑이었듯이 또한 다미안에게도 이와 같은 사랑을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요구하시는 사랑은 당신에 관한 절대적인 사랑에 기초한 친밀한 관계와 사랑의 삶에 관한 것이다. 예수께서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agapan)은 없다.”(요한 15,13)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절대적이고 최고의 사랑이 되는 것이다. 또한,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친구라고 부르신 제자들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요한 15,14-15) 아가페적인 사랑(agapan)을 완성하셨다. 또한, 사제 다미안은 나병 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하느님께 응답했다. 다미안은 가족, 직업, 조국, 친구, 세상의 안락함 등 모든 것을 희생하고 가장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그들 중 한 사람으로서 그들을 위해 죽음으로써 예수께 대한 사랑을 증명했다.

 

마찬가지로, 베드로의 삼중 사명은 다미안의 사목적 사명과 유사하다. 베드로에게 주어진 삼중 사명: “내 어린 양을 돌보아라”(21, 15, boskein arnion); “내 양을 돌보아라”(21,16, poimainein probaton)와 “내 양을 돌보아라”(21,17, boskein probation)는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보스케인(boskein)과 포이마이네인(poimainein)은 모두 같은 동의어이다. 그러나 레이먼 브라운(Raymond Brown)은 poimainein은 다소 더 넓은 분야의 의미를 포괄한다고 말한다. 즉, 보스케인(Boskein)은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데 비유적으로 또는 문자 그대로(에제 34,2) 사용된다. 포이마이네인(poimainein)에는 문자 그대로(루카 17,7) 사용되기도 하고, 비유적으로(에제 34,10; 사도,20, 28; 1베드 4,2)사용되는데, 이 단어는 ‘통치하다, 다스리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51)

 

이처럼 사제 다미안은 두 가지 의미 모두에서 자신의 사목적 사명을 완수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즉, 보스케인(boskein)이라는 의미에서 그는 나병 환자들에게 영적 양식과 현세적 양식을 모두 먹인 것이고, 포이마이네인(poimainein)이라는 의미에서 그는 그들을 인도하고, 상담하고, 옳은 길로 이끌어 주었다. 동시에 그는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셨고, 어떤 해로운 것으로부터도 보호해 주었고, 그들에게 음식과 의복을 제공해 주었고, 그들을 위해 집을 지어 주었고, 그들의 상처를 보살펴 주었고, 버려지고 고립되었다는 감정적 낙인을 위로해 주고, 무덤을 파 주었고, 관 상자를 만들어 그들이 죽으면 묻었다. 한마디로 그는 예수님의 양 떼를 위해 보스케인부터 포이마이네인까지 모든 일을 다 했다.

 

요한복음 21,15의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은 베드로가 자신의 직업인 고기잡이에 관한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보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낸 것처럼, 다미안도 예수께 대한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사목 활동, 나병 환자 또는 다른 어떤 것에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는 사제로서 나병 환자들을 섬겼지만, 이 삶의 과정에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내맡겼다. 그러므로 그의 삶의 유일한 목표는 하느님과 완전한 결합이었다. 이 최고의 사랑 안에서 다미안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과 완전히 일치하였다. 다미안은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대로 ‘당신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라’는 소명에 집중했다. 이에 대해 로저 데이비드 오스(Roger David Aus)는 이렇게 말했다.

 

목자이신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양들을 먹이거나 돌보라고 세 번이나 명하신 후, 요한복음 21장의 저자는 이 제자가 나중에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를 지적한 후, 단원의 마지막 구절인 19절에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라’(akolouthei moi). 여기서 ‘나를 따르라’는 akoloutheo의 2인칭 단수 현재 명령형으로 ‘나를 따르라’는 ‘그를 따르라’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나를 따르라’는 뜻은 ‘나의 제자가 되라’는 뜻이므로, 그리스어 독자는 예수께서 여기서 의미하신 뜻인 ‘나에 대한 사랑을 다시 확인한 후에 나의 제자가 되라’라는 인상을 준다. 네가 이전에 나를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나는 티베리아스(Tiberias)에서 부활하여 너에게 나타나 내 양들의 새로운 목자로서 그들을 먹이고 돌보라고 위임했다.52)

 

다미안 자신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대가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결코 이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님의 사랑에 사로잡혀 있었다. 다미안이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데는 육체적, 정서적 고통의 강렬한 기간을 포함하는 많은 단계가 있었다. 이는 마치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기 전에 그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열정을 경험하는 것과 같았다. 그는 공동체 형제들 없이 시간 대부분을 혼자 있었기 때문에 고립과 외로움 속에서 스스로 죽어가야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부모에게 이렇게 썼다. “비록 나는 형제들과 완전히 떨어져 있고 고해성사를 받으려면 40-50리그를 가야 하지만 나는 호아하나우(Hoahanau 나의 가족)이라고 부르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53) 또한, 그는 거짓 비난과 비판에 직면하여 수치심과 굴욕 속에서 죽어가야 했다. 그리고 그가 나병 환자로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을 때 큰 괴로움 속에 죽어가야 했다.

 

그는 나병 진단을 받았을 때 문자 그대로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었고 그곳에 남아 나병 환자로서 그들과 함께 죽기로 했다. 이로 인해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나병 환자들과 함께 날마다 성찬례 예식을 통해 예수께 희생제를 바쳤고, 그들 중 한 사람으로서 몰로카이에서 자신의 삶과 봉사를 하느님께 호의적인 봉헌으로 바쳤다. 사제 다미안은 1866년 12월 20일 총장에게 보낸 편지에 대해 패트릭 브래들리(Patrick Bradly)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신하여, 나는 고민하지 않고 모든 일에 활기차게 나아갑니다.”54) 이러한 그의 편지 내용을 보면서 패트릭 브래들리(Patrick Bradley)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런 종류의 믿음은 그의 끊임없는 기도와 파스카 신비에 깊이 들어간 결과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자신 밖의 어떤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몸 안에서 살아야 할 신비로 받아들였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그의 신앙생활은 점차 스승과의 내적 동일시가 되었다.55)

 

이처럼 그는 성심회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명령하신 일을 이행하는 나병 환자들의 선교 사제로서 예수님을 위해 죽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버렸기 때문에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상을 받았고 인간의 기억 속에 불멸의 존재로 남아 있다.

 

2. “나를 따르라”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놀라운 믿음은 감탄스러울 정도이다. 그는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말하였고 예수가 메시아임을 고백한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시몬 바르요 나야, 너는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것을 하느님의 계시로 확증하셨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가르쳐 주셨다.”(마태 16:17). 이 베드로의 놀라운 믿음 위에 예수께서는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교회를 세우시기로 하셨다. 또 “내가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8-19).

 

베드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권위와 권세를 받았다. 베드로는 사랑으로 예수를 따르기 위해 계속 성실함을 드러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사랑하지 않은 뒤 믿음이 산산이 부서졌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 떼를 위한 사명을 맡기시기 전에 당신의 끊임없는 ‘사랑’을 강조하면서 그에게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물으셨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로저 오스(David Roger Aus)는 이렇게 말한다. “즉, 시몬 베드로가 그분의 후계자가 되어 새 목자가 되기 위해 (…) 부활하신 분은 (…) [어떤 자격이나 기술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여기서 언급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는 유일한 기준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56)

 

교회의 기초와 베드로의 사명을 함께 보면 교회의 기초는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 자신의 믿음이고 그의 사랑은 사목적 사명의 기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사랑은 그분께서 사목적 사명을 위임하는 초석이 된다.

 

이처럼 예수께 대한 사랑은 예수님의 양 떼에 관한 목자의 의무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은총을 끌어내는 사목적 사명의 중심이다. 그러므로 목자는 무엇보다도 주님에 대한 믿음과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지닌 지도자이어야 한다.

 

사제 다미안은 몰로카이의 나병환자촌에서 예수님의 양 떼인 나병 환자들의 목자로서 사명을 완수했다. 그의 믿음은 확고했고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강하고 깊었다. 이에 대해 비탈 주르댕(Vital Jourdai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873년 5월 10일 몰로카이의 나자렛을 침공한 그 남자는 관심을 끌만큼 좋은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정력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높고 필수적인 의무에 어떤 장애물도 참지 못했다. 그는 결점을 찾는 사람도, 반항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었다.’ 양 떼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성격은 명랑하고 유쾌했다. 그는 약간의 익살이 담긴 욕설을 좋아했다. 때때로 그는 진심으로 웃었다! 그것은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이고 거대한 것이었다. 사실 그는 그렇게 나쁜 성격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한 마디로, 그는 나병 환자들, 즉 그의 형제들과 자녀들을 향한 순수하고 불타는 열정으로 가득 찬 행동하는 사람이었다.57)

 

이처럼 사제 다미안은 예수께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예수님을 따르기로 했다. 그는 나병 환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시고 그들을 사랑했다. 다미안이 나환자촌에서 한 일을 보면, 그가 자신의 행동을 통해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는 믿음이 분명했다. 그는 계명 중 첫째이자 가장 큰 계명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임을 알고 있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 대한 가장 훌륭하고 견고하며 설득력 있는 증거는 바로 그의 열정이었다. 그는 예외 없이, 아낌없이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바쳐야 하는 열정의 척도는 예수님을 향한 강한 열성의 힘이었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다미안의 사랑은 나병 환자들을 위한 자선 활동과 봉사로 입증하였다.58)

 

이처럼 사제 다미안은 모범적인 삶과 노력, 그리고 모든 사람의 필요에 따라 다가가려는 정신을 가지고 살았다. 그는 존 패로우(John Farrow)가 말한 것처럼 예수님과 나병 환자에 대한 사랑으로 쉬지 않고 일했다. 그중 한 예는 다음과 같다. “다미안 신부님! 그의 교구민 중 한 명이 물었다. ‘쉬세요?’ 그는 ‘할 일이 너무 많고 내 시간은 너무 짧으니 쉴 때가 아닙니다!’”59)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사제 다미안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그분 일을 하도록 임명하셨다는 확신에서 기쁨을 찾았다. 그는 삶의 희망과 존엄성을 되찾고, 자신을 믿고 하느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나병 환자들의 삶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무척 기뻐했다. 이러한 그의 친절과 애정은 그의 부모님에게서 왔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부모님께 다음과 같은 감사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즉, “내가 당신들을 사랑하고 내 마음이 당신들의 선하심과 친절한 행동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 말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60) 이처럼 다미안의 친절과 호의는 부모로부터 사랑받던 기억에서부터 나왔다. 이러한 그의 기쁨과 희망에 대해 비탈 주르댕(Vital Jourdain)은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그의 편지에서는 ‘나는 행복하고 만족스럽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충실한 종을 위로하셨다. (…) 그와 함께 보육원에 있는 레오폴디나(Leopoldina) 수녀는 ‘그는 항상 즐거웠고 결코 인간적인 만족을 구하지 않았으며 그의 모든 희망을 하늘에 두었다’라고 말한다. 그의 빛나는 기쁨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슬픔을 몰아냈다. 그는 주님께 이렇게 말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좋은 씨앗을 뿌렸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나는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도덕적, 육체적 비참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불쌍한 나병 환자들의 용기를 지켜주기 위해 늘 행복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합니다’61)

 

이처럼 사제 다미안은 아침부터 밤까지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비참함과 고통 속에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즐겁고 유쾌했다. 그의 기쁨은 나병 환자들에게 기쁨과 용기를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도구로 사는 것이다. 왜냐하면, 목자가 절망에 빠지면 양 떼도 절망에 빠지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모든 아픔과 괴로움을 마음속에 가둬둔 채, 다미안은 계속해서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나병 환자들을 섬기며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에 매일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 뒤를 따랐다.

 

3. “내 양을 먹이고 내 양을 돌보아라”

 

그의 부모는 다미안이 가족을 먹일 수 있는 농장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를 향한 더 큰 계획을 갖고 계셨다. 하느님은 그를 부르셔서 버려진 나병 환자들을 먹이고 돌보게 하셨다. 그는 나병 환자들을 먹이기 위해 들판에서 열심히 일했고, 그들이 절대 굶주리지 않게 다양한 방식으로 식량을 확보했다.

 

마치 우리를 돌보시는 아버지처럼 그는 나병 환자들을 먹이는 목자가 되어 그들을 먹이는 사명을 다했다. 그리고 그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들에게 인간적, 영적 자양분을 주기 위해 사랑과 친절과 공감으로 그들을 먹이는 것이다.

 

이처럼 양들을 먹이고 돌보는 그의 사목적 사명은 전적으로 그의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의 확고한 믿음은 그를 사랑하게 만든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나병 환자에 대한 사랑이다. 따라서 믿음은 사랑과 분리될 수 없다. 신앙의 실재는 사랑의 비옥한 땅을 찾을 때 발전한다. 제4복음서의 사랑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 세상에 주신 최고의 선물, 곧 그분의 아들로 정의된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62) 그리고 이 사랑의 정점은 생명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희생과 사랑의 행위를 전제로 한다.

 

예수께서 새 계명을 주실 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분께서 먹이시는 행위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특히 베드로에게 당신 양들에 대한 위임에서 예수께서는 다른 제자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내 양을 먹이라. 내가 너희를 먹인 것처럼 너희도 내 양에게 먹이를 주고, 내가 너희를 위해 죽은 것처럼 너희도 내 양을 위해 죽어야 한다. 이에 대해 로저 데이비드 오스(Roger David Aus)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62)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음식을 먹은 시몬 베드로는 이제 그리스도 공동체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영적으로 먹이고 양육하라는 사명을 그분에게서 받았다. 그러므로 이것은 선교하라는 사명이 아니다(…). 오히려 시몬 베드로는 여기에서 그리스도교 공동체 모든 사람의 영적 지도자가 되라는 권위 있는 사명을 받았다. (…) 마찬가지로 요한복음 10장의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21,15-17에서 시몬 베드로에게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먹이고 돌보는 일에 그분의 후계자가 될 권위를 부여하셨다. 그는 그들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 그들을 믿음으로 양육해야 한다.63)

 

사제 다미안은 나병 환자들을 먹이고 돌볼 수 있으려면 먼저 자신에게 영양을 잘 공급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의 자양분의 원천은 기도였다. 그는 얀 드 볼더(Jan De Volder)가 기술한 것처럼 다미안 신부는 강렬한 기도 생활을 했다. 즉, 그가 “아침 6시에 성찬례를 거행할 때는 이미 45분 동안 아침 기도와 묵상을 한 상태였다. 아침 식사 후에 그는 자유롭게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성경을 공부하려고 노력했다. 저녁에는 병자들을 방문한 후 저녁기도를 바쳤고, 저녁 식사 후에는 묵주와 성무 일도를 바쳤다. 10시에 잠이 오지 않으면 신약성경을 읽었다.”64) 또한, 그는 나병 환자들을 먹이고 돌볼 수 있도록 매일 자양분을 받기 위해 하느님의 은총을 구하며 성체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또한, 백성을 양육하는 사목자의 의무는 성경의 다양한 이야기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지만, 베드로의 위임에 잘 나타나 있다. 나병환자촌에서 사제 다미안의 주된 임무는 예수님의 양 떼인 나병 환자에게 영양을 잘 공급하는 것이었다. 그는 물질적인 음식과 영적인 음식으로 그들을 양육해야 할 필요성을 즉시 인식하였다.

 

상처받고 아픈 양들을 돌보는 사제 다미안의 특별한 성격은 그가 베푸는 자, 즉 자선의 사람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유일한 소망은 그들을 사랑하고 돕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기대 없이 베풀었다. 그와 함께 생활했던 레오폴디나 수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병 환자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무제한이었습니다. 그는 고통받더라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고, 자신의 도움에 대한 감사를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이웃을 위해 자신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고통을 받든, 자신이 가난하든, 자기 자신이 질병에 걸리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유일한 소망은 가난한 나병 환자들을 사랑하고 돕는 것이었습니다.65)

 

또한, 사제 다미안은 자신과 나병 환자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모든 격차를 메우려고 노력했다. 상호 수용과 소속감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가족, 하나의 무리를 이루도록 노력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에 대해 패트릭 브래들리(Patrick Bradley)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그들과 완전히 동일시했고, 그들의 내면을 알기 시작했고, 그들 세상의 모든 비참함을 이해했고, 또한 당신 백성의 위대한 잠재력과 존엄성을 인정했다. 그는 그들과 함께 걸었고, 함께 식사하고, 그들과 함께 웃고 울었다. 그는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나눴다. 그는 그들 중 하나가 되었고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메시지는 소외된 외부 상황이 아닌 내부로부터 그들의 마음에 스며들 수 있었다.66)

 

이처럼 사제 다미안은 버림받은 곳이자 절망과 죽음의 땅이었던 나병 환자 정착지를 예수님의 양 떼를 위한 ‘양우리’로 바꾸었다. 그곳에서 나병 환자들은 보호와 생명의 존엄성을 찾고 보살핌을 받았다. “그는 격려의 말로 어디서나 기쁨과 희망의 빛을 가져왔다. 그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67) 고용인이었던 다미안은 몰로카이의 착한 목자가 되었다.

 

이처럼 사제 다미안은 그의 사목 활동을 통해 보듯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거룩한 소망을 따르는 양 떼의 목자였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는 다미안이 요한복음 21, 15-17에 있는 베드로의 사명을 실천하는 데 있어 한 치의 남김도 없이 이행한 진정한 사목자라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하느님과 나병 환자에 대한 사심 없는 사랑과 나병 환자로서 고난과 죽음을 통해 그는 부활의 영광을 그분과 함께 나누기를 희망했고,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과 전적으로 하나가 되었다. 이처럼 그분의 삶과 영성에서 보듯이, 그분은 이 시대에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의 양 떼를 양육하는 목자들의 빛나는 모델로 남아 있다.

 

 

Ⅵ. 맺음말

 

본 연구는 오늘날의 사목자들에게 더 깊은 영적 삶과 헌신적인 사목 사명을 갖도록 격려하기 위해 몰로카이의 선교 사제 다미안의 영적 삶과 사명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그러기 위해 요한복음 21,15-17에 대한 주석적 연구가 제시되었다. 이 본문은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이야기(요한 10,1-42), 고별 담화(요한 13-17장), 그리고 착한 목자의 사명은 예수님의 명령인 내 양을 돌보고, 먹이고, 치라는 말씀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사랑으로 실천으로 옮긴 사제 다미안의 삶은 벨기에 트레멜로(Tremelo)에 있는 독실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족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의 부모는 그가 농부가 되어 아버지의 곡물 사업을 물려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고 이에 응답하는 결단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학문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하느님의 섭리와 형 팜필레 신부의 도움으로 예수 마리아 성심회의 선교 사제가 되어 하와이섬의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그후 몰로카이의 나환자촌에서 사제 다미안은 강하고 열성적으로 나병 환자들을 섬겼다. 병자 방문, 간호, 나병 환자에게 음식, 의약품 구매 및 그들을 위한 집을 짓고 무덤을 파고 도로를 건설하는 등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려고 하였으며, 특히 나병 환자의 영적 양식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몰로카이에서 그는 시간 대부분을 혼자 지내야 했기에 외로움과 고립, 비난에 시달렸고 일부 거짓 주장에도 직면해야 했다. 그러나 사제 다미안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는 확고한 믿음과 인내로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견디기 위해 성찬례를 자신의 힘의 원천으로 삼았다. 종국에 그는 나병 환자가 되었지만 계속 그곳에 머물면서 그들을 섬기고 그들의 일원으로 선종했다. 그분께서는 자신을 나병 환자라고 부르셨고, 사랑의 행동으로 그들에게 희망의 빛과 생명의 존엄성을 가져다주었다. 

 

사제 다미안의 인생 여정은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던진 세 가지 질문과 비슷한 세 가지 인생의 통로로 제시된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첫째, 가족에서 선교사 신부가 되기 위해 이동 한 점, 둘째, 상주 신부인 빅 아일랜드에서 나환자촌으로의 이동한 점, 셋째, 상주 신부에서 선교사로의 내적 이동이다. 이는 사제 다미안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신비에 더 깊이 들어가고, 그분의 부르심에 계속해서 몸과 마음으로 따랐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착한 목자로서, 선교 사제로서, 자신의 전 존재를 하느님 백성과 예수님을 위한 희생 제물로 봉헌한 점은 그분 영성의 깊이와 하느님 사랑의 정수를 느끼게 해준다.

 

따라서 본 연구가 오늘날의 선교 사제 혹은, 본당 신부 또는, 수도자로서 사목하는 이들에게 사제 다미안의 하느님에 관한 믿음과 하느님 백성에 대한 애정, 열정, 사랑, 헌신과 노력이 사목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그분의 신앙과 삶 중 어느 한 부분이라도 각자 사목의 표본이 되기를 바란다.

 

* 이 논문은 2024년 가톨릭 대학 성신교정 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이다.

 

참고문헌

 

주석서

Brown, Raymond E.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xiii-xxi) Introduction, Translation, and Notes, The Anchor Bible. New York: Doubleday & Company, Inc., 1970.

 

교회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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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만민에게」 AD GENTES DIVINITUS,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3(제3판), 2항, 516.

2) John Paul II, Encyclical Letter “Redemptoris Missio”, 7 Dec. 1990, 1항.

3) Ibid., 89항.

4) 요한 21,15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참조.

5) “Redemptoris Missio”, 21항.

6) 요한 20,21.

7) Bradford B. Blaine. Jr. Peter in the Gospel of John: The Making of an Authentic Disciple. (Atlanta: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2007), 168.

8) John Wijngaards, The Gospel of John & his letters, (Wilmington: Michael Glazier Publications, 1987), 264 - 280. http://www.johnwijngaards.com/publications/joy/johncont.shtml

9) David F. Ford, The Gospel of John: A Theological Commentary (Michigan: Baker Academic, 2021), 423 - 424.

10) Thomas Instituut te Utrecht, The Divinity of the Word: Thomas Aquinas Dividing and Reading the Gospel of John (Leuven, Paris, Bristol CT: Peeters, 2022), 146.

11) Donald Senior, C.P. & Carrol Stuhlmueller, C.P., The Biblical Foundations for Mission(New York: Orbis Books, 1983), 280-292. 

12) Kenneth E. Bailey, The Good Shepherd: A Thousand-Year Journey from Psalm 23 to the New Testament (Illinois: IVP Academic, 2014), 211.

13) Andreas J. Köstenberger,“Jesus the Good Shepherd Who Will Also Bring Other Sheep(John 10:16): The Old Testament Background of a Familiar Metaphor”, in Bulletin for Biblical Research 12.1 (2002), 71.

14) Kenneth E. Bailey, The Good Shepherd, 236.

15) Ibid., 244.

16) Ibid., 247.

17) David F. Ford. The Gospel of John, 424.

18) Johns Varghese. The Imagery of Love in the Gospel of John (Rome: Gregorian Biblical Press, 2009), 17-18.

19) Johns Varghese, The Imagery of Love in the Gospel of John, 30.

20) Ibid., 235.

21) Ibid., 270-271

22) Ibid., 356.

23) David F. Ford, The Gospel of John, 208.

24) Christopher A. Porter, “Of Sheep, Shepherds, and Temples: A Social Identity Reading of the Good Shepherd Paroemia on the Way to a Destroyed Temple,” 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2021), 163.

25) David F. Ford, 207.

26) Johns Varghese, The Imagery of Love in the Gospel of John, 359.

27) David F. Ford, The Gospel of John, 425.

28) Richard Stewart, Leper Priest of Moloka’i: The Father Damien Story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26), 15-24

29) Ibid., 17.

30) Ibid., 18.

31) Father Damien’s Letters, no.7. (Rome: Congregaton of the Sacred Hearts SS.CC., 2017).

32) Father Damien’s Letters, no, 18.

33) Richard Stewart, Leper Priest of Moloka’i, 94.

34) Omer Englebert, The Hero of Molokai: Father Damien Apostle of the Lepers (Boston: The Daughters of St. Paul, 1962), 112.

35) Vital Jourdain, The Heart of Father Damien, 151.

36) Ibid., 198.

37) Ibid., 138.

38) Jan De Volder, The Spirit of Father Damien: The Leper - A Saint for Our Times (San Francisco: Ignatius Press, 2010), 101.

39) Ibid., 102.

40) Vital Jourdain, The Heart of Father Damien, 366.

41) Richard Stewart, Leper Priest of Moloka’i, 365.

42) Vital Jourdain, The Heart of Father Damien, 251.

43) Richard Stewart, Leper Priest of Moloka’i, 372.

44) Ibid., 384.

45) Vital Jourdain, The Heart of Father Damien, 374

46) St Jozef Damien De Veuster (1840-1889), Vatican News. https://www.vatican.va/news_services/liturgy/saints/2009/ns_lit_doc_20091011_de-veuster_en.html

47) Vital Jourdain, The Heart of Father Damien, 389.

48) Ibid., 249.

49) Damien Letters, no. 299.

50) Raymond E. Brow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xiii - xxi), 1102-1103.

51) Ibid., 1105.

52) Roger David Aus, Simon Peter’s Denial and Jesus’ Commissioning of Him, 239.

53) Damien’s Letters, no. 26.

54) Patrick Bradley, Fr. Damien: SS.CC. Missionary (Vatican Polyglot Press, 1990), 57.

55) Ibid., 57.

56) Roger David Aus, Simon Peter’s Denial and Jesus’ Commissioning of Him, 264.

57) Vital Jourdain, The Heart of Father Damien, 102.

58) Ibid., 231.

59) John Farrow, Damien the Leper (New York: Doubleday & Company, Inc., 1937), 161.

60) Damien's Letters, no. 7.

61) Vital Jourdain, The Heart of Father Damien, 237.

62) Johns Varghese, The Imagery of love, 365.

63) Roger David Aus, Simon Peter’s Denial and Jesus’ Commissioning of Him, 262.

64) Jan De Volder, The Spirit of Father Damien, 62.

65) Vital Jourdain, The Heart of Father Damien, 232.

66) Patrick Bradley, Fr. Damien, 32.

67) Stephen Debroey, Fr. Damien, 58.

 

* 이 논문은 2024년 가톨릭 대학 성신교정 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이다.

 

[학술지 교회사학 제25호, 2025년(수원교회사연구소 발행), 지재구(가톨릭대학 성신교정 조교수)]

 

원본 : http://www.casky.or.kr/html/journal_1.html?pageNm=article&journal=1&code=456764&issue=34746&Page=2&year=2024&searchType=title&search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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