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함께 교리 문해력 높이기36: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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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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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함께 “교리 문해력” 높이기 (36) 교회
예비자 교리 초반부, 본격적인 신앙 고백의 내용들에 대해 다루기 전에 반드시 다루게 되는 주제 중 하나는 개신교 덕분에 잘못 알려져 있는 용어 문제입니다. ‘기독교’부터 시작해 ‘하느님과 하나님’, ‘야훼와 여호와’, 그리고 ‘성당과 교회’ 등입니다. 특히 교회에 대해서는 천주교는 성당을, 개신교는 교회를 다니는 걸로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여전히 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교회’, 라틴어로 ‘Ecclesia’는 ‘불러모음’을 뜻하며,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성격을 지닌 백성의 집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특히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하느님 앞에 모인 선택된 백성들의 집회를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되었고, 그리스도교 초기 공동체는 자신들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이어 하느님께 선택된 백성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교회’라고 불렀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751항).
그리스도교 용어에서 교회는 전례적 집회를 가리키나 지역 신자 공동체를 가리키기도 하고, 온 세계 신자 공동체 전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온 세상에서 모으시는 백성이며, 미사와 같은 전례적 모임으로 실현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751항).
교회는 일반적으로 잘못 알려진 것처럼 개신교 예배가 이루어지는 건물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며, 단순하게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미사와 같은 전례적 모임만을 지칭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신경에서 우리는 하나이고 거룩한 교회를 믿는다(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고 고백합니다. 교회의 의미가 전례적 집회, 지역 또는 온 세계 신자 공동체라는 걸 생각하면 신앙 고백의 내용 중에 교회가 들어 있는 것은 마치 신자들이 자기들 스스로를 믿는다는 말처럼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신앙 고백 내용들,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대한 고백과 그 뒤에 이어지는 교회에 대한 믿음 사이에 존재하는 분명한 차이를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은 그분을 우리 신앙의 대상으로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이어진 하나이고 거룩한 교회를 믿는다는 의미는 교회‘를’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어떠하다’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이는 성모님께 대한 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라틴어로는 이를 “Credo(나는 믿습니다) in Deum(하느님을)”과 “Credo Ecclesiam(교회를)”으로 목적어 앞에 “in”을 쓰거나 쓰지 않는 것을 통해 분명히 구별합니다.
교회에 대한 신앙 고백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다루는 교의 신학을 일반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눌 때 그중 한 부분을 담당할 만큼 중요합니다.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가 스스로를 무엇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의 모습은 무척이나 다양하게 나타나고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교황으로부터 주교, 사제로 이어지는 하나의 수직적인 제도로 교회를 주로 바라보던 과거에 비해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를 모두 포함하는 ‘하느님 백성’이라는 개념 아래에서 교회를 하나의 수직적 제도가 아닌 하느님 백성의 모임으로 바라보도록 그 시각을 바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교회는 엄청난 변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최근 강조되는 시노달리타스 역시도 교회를 무엇으로 바라보느냐에 대한 물음에서부터 출발합니다.
QR코드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이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교리서 320~322쪽, 748~752항을 함께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2024년 12월 8일(다해) 대림 제2주일(인권주일, 사회 교리 주간) 춘천주보 4면, 안효철 디오니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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