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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생활교리: 예수님 성탄은 왜 우리에게 기쁨인가?

512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12-08

[생활교리] 예수님 성탄은 왜 우리에게 기쁨인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성탄’은 비단 그리스도교만의 기쁨이 아니라 온 세상의 축제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기쁨의 의미가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왜 성탄을 축하하고 기뻐하는가?

 

첫째, 하느님께서 성탄으로 우리에게 어떤 분인지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누군가 “사랑은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는 것”(키르케고르)이라고 했던가. 성탄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던 분이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시어 사람들과 같이 되신 놀라운 사랑의 신비이다(필리 2,7-8 참조). 그렇다면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교회는 이렇게 고백한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곧 우리는 성탄의 신비로 하느님께서 세상과 분리되어 있거나, 인간의 삶과 동떨어져 계시는 분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보고, 느끼고, 만날 수 있도록 가까이 계셔주시는 분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쁨을 얻었다.

 

둘째,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하느님의 약속이 성탄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곧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고, 하느님이 아기가 되셨다는 것은 주님께서 임마누엘 하느님, 곧 우리와 함께하는 하느님이 되겠다고 하신 큰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다”(베네딕토 16세). 실제로 ‘함께 있겠다’는 말씀은 신구약 성경에서 일관되게 전해진 하느님의 약속이며(탈출 3,12; 사도 18,9; 마태 1,23; 28,20 참조), 무엇보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당신이 하신 말씀과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는 성실하신 분이시다(예레 1,12; 이사 55,11 참조). 사실 우리 신앙인은 ‘무엇’을 믿기 이전에, ‘누구’를 믿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폭풍우 같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버티며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바라는 대로 ‘무엇’이 꼭 이루어져서라기보다, 내가 믿는 ‘하느님’과 ‘그분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함께하심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이루어지는 성탄의 기쁨은 우리 삶의 고된 여정을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셋째, 하느님께서는 성탄을 통해 우리가 당신 사랑을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458 참조).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1요한 4,9). 정말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요한 3,16)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로 주셨다. 그래서일까! 예수님 탄생 앞에 마리아와 시메온 그리고 천사들은 하나같이 하느님께 찬미의 노래를 불렀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왜,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는가’라는 성탄의 근본적인 물음을 곱씹어보며,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예레 31,3)을 깨닫고, 그에 응답해 보자! 왜, 하느님 사랑은 이제 예수님 탄생으로 어디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서 ‘의식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니까!

 

[2024년 12월 8일(다해) 대림 제2주일(인권주일, 사회 교리 주간) 전주주보 숲정이 8면, 윤태종 토마스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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