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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인물] 신약 성경의 인물: 헤로데 - 헤로데에게서 얻은 역설적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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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22 ㅣ No.3952

[신약 성경의 인물 – 헤로데] 헤로데에게서 얻은 역설적 깨달음

 

 

신약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수난과 돌아가심, 그리고 부활의 순간까지 참으로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놀라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 새롭고도 권위 있는 가르침에 신앙을 고백하며 그분의 제자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치유와 구마가 신기해서, 또는 그 기적에 경탄하여 마치 유명 인사를 뒤쫓듯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불치병이나 어쩔 수 없는 처지에 놓여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한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벌어진 이 놀라운 일들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협하고 유다교의 근간을 흔든다고 여기어 예수님을 없애 버리려는 자들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만나는 이 많은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이들은 복음사가들이 의도한 대로 예수님이야말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도록 우리를 이끄는 등장인물에 불과할까요? 예수님과 함께 삶을 이어 간 수많은 사람의 모습은 우리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당신을 따르겠다고 말하면서도 쉽게 무너지기도 하고, 심지어 주님의 존재를 의심하며 흔들리기도 합니다. 내키는 대로 주님을 이끌고 싶어 하는 마음 또한 우리 안에 있음을 알리는 것 같습니다.

 

이는 우리가 어떠한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깨닫게 합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고민하며 살고 있고, 주님 안에 머무르기를 바라며, 또 그들의 기억 속에 있던 신앙의 길을 바라보며 걸어갈 테니까요.

 

그 길을 따라 이들과의 여정을 함께 시작해 보시지요.

 


베들레헴 학살 사건의 주범을 찾다

 

먼저 헤로데를 다루고 싶습니다. 사실 헤로데가 신앙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는 초대 교회에서 꾸준히 등장하며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헤로데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바로 베들레헴의 학살 사건일 것입니다.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마태 2,16).

 

신약 성경에 가장 먼저 언급되는 헤로데는 ‘헤로데 대왕’이라고 일컬어지는 헤로데 1세를 말합니다(마태 2,1 참조). 로마 제국의 시절인 기원전 63년께부터 유다 지역을 다스린 임금입니다.

 

로마가 대제국으로서 기틀을 다질 때는 유다인들의 소요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등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로마 제국의 큰 신임을 얻게 됩니다. 로마의 원로와 유력 인사들과도 긴밀히 교류합니다. 급변하는 로마의 정치권력 아래에서도 적절히 처신하여 로마 황제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유다 민족의 최고 권력자로서 기반을 확고히 다집니다.

 

이런 헤로데를 유다인들이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그는 유다인의 순수 혈통도, 무엇보다도 왕가 혈통도 아니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에사우의 또 다른 이름으로 에돔을 설명합니다. 헤로데는 바로 이두메아를 근거지로 하는 에돔 민족의 유력한 가문 출신입니다. 다윗과 솔로몬, 바빌론 유배 시대를 거치며 유다 남부에 위치하던 이두메아 지역은 유다 왕국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요? 창세기부터 이어졌던 악연이 이제 또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헤로데는 권력의 기반을 다지려고 유다 하스몬 왕가의 미리암과 결혼하여 유다인들에게도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합니다. 로마 제국의 하수인으로 유다 왕국의 신임과 통치를 더욱 공고히 하려던 것이지요. 하지만 뛰어난 정치적 감각을 지녔음에도 권력의 집권과 유지에 집착한 헤로데는 점차 이성을 잃고 맙니다.

 

많은 분이 헤로데가 무죄한 아이들을 학살하는 장면에서 경악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어찌 그리 잔인한 결정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는지를 말이지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당시에 헤로데의 집착과 의심은 거의 병적인 수준임을 살필 수 있습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고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불안감에 싸여 자신의 왕권을 노린다고 의심되는 부인 미리암과 친아들들조차도 무참히 살해하는 자입니다.

 

그는 권력의 핵심부에서 세속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상 그의 삶은 불안과 두려움의 연속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헤로데의 곁에 있는 이들의 삶과 그 마음들은 어떠했을지 생각해 봅니다.

 

 

아르켈라오스와 본시오 빌라도

 

이스라엘 왕국은 아버지인 헤로데의 뒤를 이어 세 아들에게 나뉘어 통치됩니다. 하지만 유력한 승계권을 지녔던 두 아들은 그 뒤로 아버지 손에 처단됩니다. 그래서 왕국은 또다시 다른 아들들에게 분할됩니다.

 

당시 유다 왕국은 로마 제국에 속해 있었지만 아직은 자치권을 인정받을 때였습니다.

 

비록 이복형제지만 형들을 죽이고 그 형들의 어머니마저 죽인 파렴치한 아버지를 바라봐야 했던 아들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이런 처지에 놓인 이들이 마음의 평화를 찾거나 주변 사람들을 살필 수 있는 여유를 갖기란 참으로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지역인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이두메아는 아버지 헤로데를 빼닮았던 아르켈라오스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이에 유다인들은 사절단을 보내어 그가 임금으로 임명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였지요.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왕권을 추인받은 아르켈라오스는 돌아오자마자 자신에게 맞섰던 이들을 피로써 앙갚음합니다. 그의 지속적인 폭정은 유다인들의 탄원을 불러일으켰고, 기원후 6년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영토를 몰수하고 그를 유배합니다. 그 뒤 유다와 사마리아에 임금 대신 총독을 파견하게 되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본시오 빌라도(기원후 26-36년)가 이런 연유로 총독이 되어 이 지역을 다스리게 됩니다. 총독은 보통 카이사리아에 머무르지만 3대 축제 기간인 파스카 · 주간절 · 초막절에는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혹시나 있을 유다인들의 소요 사태를 주시하며 감독하였습니다.

 

유다인의 성인 남성이라면 이 3대 축제 기간에 예루살렘에서 축제를 지내는 것이 의무였기에 당시의 예루살렘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파스카 축제 때 예루살렘에서 사형 선고를 받으신 것도 바로 이런 배경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로마는 유다 지역의 자치권과 함께 유다인의 고유한 정치적,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총독이 다스리는 경우 사형과 같은 중대한 결정은 총독에게 부여되었기에 유다 민족의 지도자들이 총독에게 예수님의 사형 선고를 요청하는 장면 또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헤로데 안티파스와 헤로디아

 

다음으로 살펴볼 인물은 필리포스인데, 그는 주로 북부 지역인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처럼 본디 이방인 지역이었던 곳을 다스렸습니다. 필리포스에 대해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그의 부인이 ‘헤로디아’라는 점이지요.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가 필리포스를 방문했을 때 헤로디아와 헤로데 안티파스는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필리포스의 형으로, 이는 곧 동생의 아내와 정분난 것이지요.

 

어찌 이런 일이 있었을까요? 어떤 이는 헤로디아가 그만큼 아름다웠다고도 말하고, 또 다른 이는 헤로디아가 헤로데와 미리암의 손녀이기에 그녀가 지닌 왕실의 혈통과 안티파스의 정치력의 결합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헤로디아는 필리포스뿐만 아니라 헤로데 안티파스라는 자신의 삼촌들과 혼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아버지 헤로데와 자주 혼동하는 이가 있는데, 그가 바로 헤로데 안티파스입니다. 그는 갈릴래아와 페레아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대부분은 갈릴래아 호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곳의 통치자가 바로 헤로데 안티파스였던 것이지요.

 

파스카 축제 때 예루살렘에 있던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을 보내서 심문하도록 하는 장면에서도, 그의 통치 지역이 바로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곳이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요.

 

헤로디아와 혼인한 헤로데 안티파스는 유다 사회로부터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지요. 그는 세례자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군중이 두려워 감옥에 가둘 수밖에 없었죠. 헤로데 안티파스는 세례자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였지만,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헤로디아는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딸 살로메를 이용하여 세례자 요한을 죽입니다. 그 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헤로데 안티파스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은 아닌지 여기며 불안해합니다.

 

이는 그가 세례자 요한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또 세례자 요한을 죽이고 난 뒤 얼마나 내적으로 갈등의 시기를 보냈는지를 알려 줍니다. 정도의 과함이지, 사실 헤로디아의 모습은 우리 삶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헤로데 아그리파스와 그리스도인

 

마지막으로 살펴볼 헤로데는 사도행전에서 헤로데로 표현하는 헤로데 아그리파스입니다. 그는 베드로 사도를 옥에 가뒀고, 야고보 사도를 순교에 이르게 한 인물입니다. 그 또한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어찌 보면 헤로데 가족의 이야기는 슬픈 역사의 한 장면 같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밀접하게 닿아 있던 그들의 삶은 실상 예수님의 공생활과 더욱더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자신들의 안위를 유지하려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권력만을 탐하던 헤로데 일가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탐욕의 말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옛날 예수님 시대에도 이런 정치권력형의 움직임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와 기적의 이면에는 시대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극단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이는 우리 삶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깨어 있음’의 의미와 더불어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주님께서는 헤로데 일가를 통해서 다시금 우리 모두에게 던지시는 것 같습니다.

 

* 최광희 마태오 - 서울대교구 신부. 가톨릭 청년성서모임을 담당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 대학원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하였다.

 

[경향잡지, 2018년 1월호, 최광희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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