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이스라엘 성지: 행복선언 산과 기념 성당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0-10 ㅣ No.1790

[예수님 생애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성지] 행복선언 산과 기념 성당

 

 

- 참행복선언 기념 성당 전경.

 

 

갈릴래아 호수와 그 일대는 예수님 활동의 주 무대여서, 호수 주변에는 예수님이 자취를 더듬을 수 있는 유적지와 기념 성당이 곳곳에 있습니다. 유적지와 기념 성당이 있는 곳은 특히 호수 북쪽 지역입니다.

 

호수 북단 ‘예수님의 도시’라고 하는 카파르나움에서 남서쪽으로 3km가량 떨어진 곳에 행복선언 산이라고 부르는 산이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말씀과 기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지요. 그 군중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산에 올라 자리를 잡으셨고, 제자들이 다가오자 참 행복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마태 5,1-10 참조). 행복선언 산은 예수님께서 참 행복을 선언하신 바로 그 산이라고 합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이 산이 예수님께서 참 행복을 선언하신 산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4세기에 한 순례자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일곱 개의 샘’이라는 뜻을 가진 ‘타브가’ 위 언덕 능선에서 주님께서 행복선언을 가르치셨다는 전승이 가파르나움의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부터 전해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타브가는 이 언덕 능선 자락을 타고 내려가면 갈릴래아 호수와 맞닿는 곳에 일곱 개의 샘이 솟아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이 산의 또 다른 이름은 에레모스 산입니다. 에레모스란 ‘고독한’ ‘사람이 살지 않는’이란 뜻을 가진 그리스 말입니다. ‘언덕 능선’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이 산은 산이라기보다는 경사가 완만한 넓은 구릉지에 가깝습니다. 땅은 돌멩이가 많고 여기저기에 바위가 있어 경작지로는 적합하지 않은 곳입니다. 경작지로 쓸모가 없으니 사람이 살지 않고 인적이 드문 땅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에레모스’란 말은 그런 연유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넓고 평평한 능선이라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에 적당한 곳이기도 하지요.

 

 

여덟 가지 참 행복을 상징하는 팔각형 모양의 성당

 

사실, 행복선언 산은 험준한 바위산도 아니요, 숲과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산도 아닙니다. 듬성듬성 모습을 보이는 큰 나무들 사이로 겨자나무 같은 다년생 풀들과 이름 모를 풀들이 돌투성이 땅을 가리고 있고, 봄이면 개양귀비와 아네모네 같은 꽃들이 화려하게 수놓는 능선이기도 합니다.

 

이 행복선언 산에서 보면 주변의 풍광이 일품입니다. 눈 아래에는 갈릴래아 호수가 활짝 펼쳐져 있어 가슴을 탁 트이게 합니다. 멀리 왼쪽으로는 시리아 땅인 골란 고원이, 오른쪽으로는 이스라엘 국립공원에 속한 아르벨 절벽이 호수를 감싸듯이 지키고 있습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갈릴래아 호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늑한 평화가 어느새 마음을 촉촉이 적시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느낌 속에 눈을 감으면 예수님의 말씀이 산들거리는 바람 속에 허공을 타고 들려오는 듯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의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10)

 

- 참행복선언 기념성당 내부 천장.

 

 

행복선언 산에는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수많은 군중 앞에서 여덟 가지 참 행복을 선언하신 그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고 순례자들에게 참 행복의 길을 되새기게 해주는 아름다운 성당이 있습니다. 1938년 프란치스코회 계열의 한 수녀회가 지은 참 행복선언 기념 성당입니다. 여덟 가지 참 행복을 상징하는 팔각형 모양의 성당 건물과 건물 사방에 만들어놓은 회랑은 위압적이지 않으면서도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보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성지의 여러 성당을 설계했다고 해서 ‘성지의 건축가’라는 별명을 지닌 이탈리아의 건축가 안토니오 발루치(1884~1960)의 작품입니다.

 

자그마한 성당 안에 들어서면 역시 팔각형 기둥 안에 제대가 있고, 제대 위 팔각형 형태의 벽면 유리창에는 여덟 가지 참 행복이 라틴어로 쓰여 있습니다. 제대가 있는 정면에 감실이 있고 그 반대쪽에 커다란 십자고상이 있는 구조도 특이합니다. 성당 안에 들어온 순례자들은 팔각형 모양으로 돌면서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펴놓고 참 행복선언 말씀을 묵상하기에도 좋습니다. 순례자들의 부산한 움직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행복선언은 세속의 유혹에 중심을 바로 잡으라는 강력한 호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참 행복은 참으로 도전적인 가르침입니다. 행복선언은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관을 뒤엎어 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신자들도 이해하기 힘든 가르침이 행복선언입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곰곰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행복하다고 하시는지, 왜 예수님께서는 슬퍼하는 사람을 행복하다고 하시는지를….

 

언젠가 어느 신학자의 글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오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한 이유는 마음이 가난해야 하느님께서 그 마음에 들어가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슬퍼하는 사람이 행복한 이유는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의 슬픔을 거두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 하느님의 영을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 신자들입니다. 하지만 일상 삶에서 하느님과 얼마나 함께하고 있는지요?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행복선언은 늘 세속적 가치들을 받아들이라는 유혹 속에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심을 바로 잡으라는, 마음가짐을 올바로 하라는 강력한 초대이자 호소입니다.

 

행복선언 산에서 호숫가로 걸어 내려가는 비탈에는 호수를 향해 나 있는 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러 산에 가셨을 때 이용하신 굴이라고 합니다(마태 14,23 참조). 그 굴에 들어가 눈 아래 펼쳐져 있는 갈릴래아 호수를 바라보며 잠시 묵상에 잠길 수 있다면, 행복선언 산과 기념 성당 순례 여정에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축복일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10월호, 이창훈 알퐁소(가톨릭평화신문 기자)]

 



2,74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