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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행복한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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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31 ㅣ No.1232

[행복한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루가 복음서 안에서 병행구가 없는 이 행복 칭송은 깨끗한 행실과 순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주님의 산에 올라가 거룩한 그곳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시편 24,3-5을 연상케 한다. 깨끗한 마음은 주님의 집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자 그분의 현존에 다가가기 위한 조건이다. 마음은 성경에서 하느님 앞에 선 인간 전체를 의미한다. 마음은 한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의 중심이다. 그 중심 안에서 인간은 완전히 그 자신이다. 마음은 사람 앞에서는 감출 수 있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감출 수 없는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의 층이다.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하느님은 속마음을 보신다.”(사무엘상 16,7) 유대인들은 ‘마음’을 말할 때 자신들의 모든 원의와 느낌과 사고와 함께 내면의 삶을 ‘하나’(일치)로 느낀다.

 

이사야 예언자는 성전에서 하느님을 보았을 때(이사 6,5) 자신의 마음이 더러움을 깨달았다. 시편 작가 역시 하느님께 자기 안에 깨끗한 마음을 지어달라고 간청했다(시편 51,11). 깨끗한 마음은 하느님의 자유로운 행위이며 창조적인 행위이다. 예배의 성격을 띤 외적순결과 내적순결은 엄연히 구분된다. 예수님께서는 외적순결을 지나치게 중시한 바리사이들에게 오히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셨다(마태 15,18: 15,1-20; 마르 7, 1-13 참조).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그의 실존이 감추어진 내면까지 깨끗하고, 개방적이고 순수하며, 가면을 쓰지 않고 마음이 갈라지지 않는 자다. 그래서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8)고 한 행복칭송은 이러한 ‘내적순결’을 의미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깨끗한 마음은 올바른 마음에서 오는 행위, 특히 솔직한 말,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진실과 충실, 이웃들과 맺는 거짓 없는 관계(시편 15,20)이며, 간계한 속마음과 순수치 못한 꿍꿍이 속이 없는 솔직하고도 순수한 마음자세이고, 하느님의 신뢰, 자비, 성실을 믿으며 따르는 삶의 자세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봉사하고 이웃들과 진실한 관계 안에서 사는 자다. 이렇듯 자기 자신과 하느님에게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뵐 수 있게 되고’, 하느님을 뵙게 되는 가운데 ‘구원의 풍요와 행복’이 그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하느님을 뵙게 되는 행복은 죽을 때에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깨끗한 자’에게만 유보된다.

 

깨끗한 마음은 모든 것을 벗어 버리는 정화의 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하느님께로 다가가는데 방해되는 것들을 끊어버림으로써 마음이 깨끗해진다. 정화가 투철히 이루어질수록 궁극적인 것과 본래의 것에 대한 개방성과 투시력이 생기어 모든 것을 그 깊이까지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갖추거나 또는 모든 것 안에서 그것을 지탱하고 움직이는 비밀을 알아차린다.

 

마음이 정화되어서 깨끗하고 순수한 이는 그 이면을 꿰뚫어보고 그 안에서 풍요와 가치를 발견한다. 반면에 마음이 정화되지 못하고 순수하지 못한 이는 다만 외적인 것만을 보거나 받아들이고, 그 이면의 것들은 그냥 지나쳐버린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다는 말이 있듯이, 마음이 깨끗한 이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타인을 비판・오해・판단하지 않고 개방적이며 너그럽다. 반면에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이는 타인에게 패쇄적이고, 좋은 면을 보려하지 않으며 무감각하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 안에서 온갖 거짓과 여러 가지 나쁜 성향들을 일체 없애려고 노력한다. ‘깨끗한 마음’과 ‘깨끗한 행실’은 하나다. 깨끗한 마음은 내적자세이고, 깨끗한 행실은 이 내적자세에 부합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이는 참된 생명을 잃어버리거나 참된 생명이 있는 하느님께 다가가기 어렵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마치 햇살이 가장 깊은 심연까지 내려쬐는 맑은 호수와 같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눈부시도록 찬란히 비치는 햇살조차 투명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아 수면 위에 머문 채 반사되고 마는 뿌연 물에 비교할 수 있다.

 

모세 교부는 수도생활의 목표는 하느님 나라이지만 직접적인 목표나 목적은 ‘마음의 순결’이라고 했다. 마음의 순결, 곧 순결한 마음은 깨끗한 마음과 일맥상통한다. 마음의 순결은 수도여정의 목표라 하겠다. 그러므로 수도생활에서 행하고 추구하는 것들은 무엇이나 다 마음의 순결, 깨끗한 마음을 목적으로 삼는다. 수도자가 모든 것을 행하고 모든 것을 인내하며, 가족, 친척, 명예, 부, 이 세상의 기쁨과 온갖 쾌락, 모두를 가벼이 여기는 것은 곧 마음의 지속적인 순결을 얻기 위함이다. 이런 의미에서 짧게나마 마음의 순결을 언급하고자 한다.

 

에바그리우스 교부는 수도자의 수행목표를 ‘아파테이아’(Apatheia)라고 했다. 이는 평안, 즉 내적 고요와 평정의 상태, 내적 자유, 통합된 상태이다. 아파테이아는 사랑으로 들어서는 입구이고, 사랑은 관상에 들어서는 입구이다. 에바그리우스는 아파테이아를 마음의 순결(puritas cordis)이라고 했다. 마음의 순결은 개방된 내적식별과 순결, 사랑의 상태이다. 마음의 순결에 이르려면 투쟁해야 한다. 단식, 밤샘, 홀로 있음, 성경 말씀의 묵상, 이 모든 수행은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므로 사랑은 모든 수행의 잣대가 된다. 수덕의 목적은 사랑에 이르는 것, 마음의 순결에 이르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포기가 아니라 욕정을 거슬러 이김으로써 획득하는 사랑이다. 욕정을 대적하는 전투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정신적 무기는 확고한 신앙과 확실한 가르침이다.

 

참된 수덕의 기준이며 자신의 내적 평안을 유지하는 길은 무엇보다 남을 심판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알면 남을 판단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잘못과 어두운 면까지도 알고 받아들인다. 참으로 자기 자신을 아는 이는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했기 때문에 타인에게 자비롭다. 침묵은 자기 마음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는 길이며 자기 만남의 길이다. 침묵은 선입견 없이 타인의 판단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영성의 지름길이다. 외적침묵이 아닌 마음의 침묵이 더 중요하지만, 마음의 침묵은 외적침묵으로 인도한다.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한 침묵은 끊임없이 골몰하는 생각과 원의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거짓 자아를 떠나고 참 자아를 만나는 일은 하느님께로 가는, 그리고 하나(일치)가 되는 첫걸음이다.

 

마음의 순결, 깨끗한 마음은 수도자의 삶 안에서 사랑의 성령께서 이루시는 지고한 행위이다. 그러기에 수도자는 끊임없는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고독과 침묵, 고요 속에서 하느님이 모든 것 안에 모든 것이 되시고 그리스도 홀로 마음의 보화가 되시어 성령의 유대로 성부와 성자와의 일치가 이루어지도록 협력해야 한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7년 겨울호(Vol. 40), 정하돈 안나 마리아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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