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 (화)
(백)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전례ㅣ미사

[전례]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세례의 표징과 은총, 새로 남과 죄 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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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807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세례의 표징과 은총, 새로 남과 죄 사함

 

 

세례 때 쓰이는 재료는 ‘물’입니다. ‘물’ 하면, 어릴 적 동네 아주머니들의 수다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두레박이 길게 드리운 우물가가 떠오릅니다. “하늘은 희망이 고인 푸른 호수. 나는 날마다 희망을 긷고 싶어 땅에서 긴 두레박을 하늘에 댄다. 내가 물을 많이 퍼 가도 늘 말이 없는 하늘…”(이해인 수녀의 ‘긴 두레박을 하늘에 대며’에서). 이 시에서 떠오르는 물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신 그 물입니다. 그분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4)라는 말씀으로,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당신이심을 밝히셨습니다. 이제 그 물이 모든 이의 죄를 씻어 내고 성령을 선물로 주며 당신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세례의 샘이 되어 우리 삶 안에 들어왔습니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교로 들어오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성령을 통하여 ‘물’로 씻어 새로워지는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자비로 죄 많은 우리가 구원되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예식이 세례로서, 성령을 통하여 물로 씻어 새로워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티토 3,5).

 

그래서 교회는 세례성사를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이며, 성령 안에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가톨릭 교회 교리서》, 1213항)이며, 다른 성사들로 가는 길을 여는 문이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로마 6,8)

 

세례를 준다(baptizein)는 말은 본래 ‘물에 담그다’, ‘물에 잠기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물에 ‘잠김’은 세례를 받는 이가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 묻힘을 상징하며, 그가 그곳에서 나오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새 사람’(2코린 5,17; 갈라 6,15 참조)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로써 그는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악과 무의미를 배격하고 이 세상에 대해서는 죽어서 성공과 업적, 향락과 탈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느님의 모상인 자기 정체성을 되찾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귀중하고 위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어, 새 영세자들이 “그 약속 덕분에, 욕망으로 이 세상에 빚어진 멸망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2베드 1,4) 해 주셨습니다.

 

 

세례는 조건 없이 받아들여짐을 체험하는 자비의 성사다

 

세례는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 베풀어진 상(賞)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로 베풀어진 선물입니다. 카를 프릴링스도르프(Karl Frielingsdorf)는 《생존에서 생활로》라는 책에서 조건부로만 존재 이유가 있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아이들은 특정한 조건을 채울 때에만 자신이 받아들여짐을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성공한다면, 뭔가 이룬다면, 부모를 걱정시키지 않는다면,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다면, 그렇게 조건부로 받아들여질 때에만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생존 전략을 개발한다고 합니다. 잘 보이기 위해 늘 자기 의견을 누르고 슬픔과 분노도 참으면서 부모에게 걱정 끼치지 않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점점 더 큰 공적을 세우려 안간힘을 쓴다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 참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는 이러한 삶을 “생존”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례 때,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들었던 하느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딸)이다”(마태 3,17).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는 것은 조건 없이 우리를 자녀로 받아들이신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대한 자유로운 응답입니다.

 

 

새 인간은 성령에 따라 “세상의 빛”이 되는 사람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는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세례를 통해 새 인간이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잘 설명해 줍니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콜로 3,9ㄴ-10). 여기서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새 인간은 순수하고 흠 없으며 악과 간계와 부끄러운 일에서 해방된 그런 마음 안으로 성령께서 내려오시는 것을 뜻합니다. 영혼이 회개하여 죄를 미워하며 힘을 다하여 덕행의 길로 나아갈 때 영의 생명으로 변모되어, 그 안에서 은총을 받고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되며 새로이 창조된 것이 됩니다.”

 

또 사제가 부활초에서 세례 초에 불을 옮겨 건네주는 것은, 새 영세자가 “세상의 빛”(요한 8,12)이 되어 자신의 신비로운 가치를 깨닫고, 세상에서 하느님을 알아보는 새 인간이 되기를 기원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다

 

교회는 새 신자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또한 그들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새 영세자는 다른 신앙인들을 통해 믿음을 배우고, 또한 신앙 공동체 속에서 자기 삶의 신비가 무엇인지를 체험합니다. 가난, 학벌, 지역, 인종, 문화라는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평등하게 모든 이를 받아들이는 공동체가 바로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닮은 참된 공동체입니다. 왜냐하면 세례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음(창세 1,26 참조)을 확인시켜 주는 성사이기 때문입니다.

 

* 윤종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1995년 사제품을 받았다.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하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1월호(통권 476호), 윤종식 티모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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