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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학이 만난 영화: 자기 충족적 예언 - 매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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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4-23 ㅣ No.828

[심리학이 만난 영화] 자기 충족적 예언 매트릭스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예언자 ‘오라클’(글로리아 포스터)을 찾아간다. 자신이 인류를 구원할 유일자인 바로 그 사람, ‘더 원’(The One)이 맞는지 물어보려고 말이다. 긴장한 표정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간 네오 앞에는 마음씨 좋게 생긴 아주머니가 쿠키를 굽고 있다. 그녀가 바로 모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오라클이다.

 

대개의 예언자들이 그렇듯이 오라클도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애매한 말만 한다. 네오가 진짜로 듣고 싶은 것은 자신이 ‘더 원’이 맞는지 아닌지에 대한 속 시원한 대답이다. 그런데 그녀는 답을 주지는 않고 오히려 네오에게 되묻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네가 ‘더 원’이라고 생각해?”

 

네오는 솔직히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이때 오라클이 자기 집 방문 위에 걸린 현판을 손으로 가리킨다. 고개를 들어 현판을 바라보는 네오. 거기에는 라틴어로 쓰인 글귀가 하나 있다. ‘Temet Nosce’(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의 진짜 의미

 

주제 파악 못하고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는 바로 그 말이다. 오라클을 방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사람이라는 ‘모피어스’(로렌스 피쉬번)의 말에 거의 설득당한 네오였다. 오라클이 그 믿음에 방점을 찍어 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찾아갔던 것인데, 너 자신을 알라니.

 

오라클은 네오가 ‘더 원’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봐야겠다는 듯이 그의 눈과 입, 그리고 손바닥을 자세히 관찰한다. 마치 소의 건강을 확인하려고 눈과 치아 상태를 검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던 오라클이 네오에게 말한다.

 

“너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어.”

 

자기 눈을 쳐다보면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오라클에게 네오는 말한다.

 

“저는 ‘더 원’이 아니군요.”

 

1999년 워쇼스키 형제가 공동으로 제작한 ‘매트릭스’(The Matrix)는 믿음에 관한 영화다. 그 중심에는 네오가 인류를 구원할 ‘더 원’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런데 이 믿음을 가장 먼저 놓아 버린 사람은 바로 네오 자신이었다. 자신이 ‘더 원’이 아니라고 말하는 네오에게 오라클은 “Sorry.” 하고 대답한다.

 

오라클은 왜 네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것일까? 네오는 ‘더 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찾아온 자신에게 ‘더 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줘야 하니 오라클이  “미안하다.”고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라클의 “Sorry.”는 ‘안타깝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오라클은 네오가 ‘더 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네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것이다. 그가 바로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으라고 말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더 원’이 아니라고 말하는 네오가 안타까웠다. 그래서 “Sorry.”라고 했던 것이다.

 

오라클은 ‘더 원’이 된다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아무도 말해 줄 수 없고 스스로 온몸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면 누가 뭐라고 이야기한들 소용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라클은 네오가 안타깝고 안쓰러웠던 것이다.

 

네오에게는 자기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자신이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믿지 못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네오의 삶은 지금까지의 특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이고, 밤에는 컴퓨터 해킹이나 하던 그런 인생이었다. 그런 자신이 인류를 구원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니, 스스로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네오 곁에는 그가 인류를 구원할 존재라고 굳게 믿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서도 네오가 ‘더 원’이라는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사람은 바로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다.

 


트리니티의 입맞춤

 

‘스미스’ 요원(휴고 위빙)에게 붙잡힌 ‘모피어스’를 구하려고 매트릭스로 들어간 네오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보여 주지 못한 능력으로 모피어스를 구해 낸다. 네오가 ‘더 원’이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스미스 요원마저 제압하고 매트릭스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전화기가 설치된 303호 방문을 열어젖힌 네오!

 

놀랍게도 그곳에는 따돌렸다고 생각했던 스미스 요원이 총을 겨누며 네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총에 맞은 네오는 자신의 몸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본다. 자신도 결국 한 사람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는 죽음에 이른다. 모피어스를 포함해서 그동안 네오가 ‘더 원’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이들에게 그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모두가 네오의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였을 때 트리니티는 숨이 끊어진 네오에게 다가가 말한다, 자신이 사랑에 빠지는 남자가 바로 ‘더 원’이 될 것이라고 오라클이 예언했다고. 그러니 당신은 죽을 수 없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그러고 나서 네오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네오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네오는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부활한다. 트리니티의 믿음이 결국 네오를 진짜 ‘더 원’으로 만든 것이다.

 

 

자기 충족적 예언

 

사람들은 자신의 기대나 믿음을 품고 상대방을 바라보며, 상대방의 행동이나 미래를 예측한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대는 우리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우리의 변화된 행동 때문에 상대방의 행동이 변화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상대방의 행동과 미래는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 품은 기대와 일치하는 방향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고 한다. 곧 자신의 예언이 실제로 현실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자기 충족적 예언에 대한 고전 이론 가운데 하나로, 미국의 로젠탈과 제이콥슨의 ‘피그말리온 효과’가 있다. 이들은 한 초등학교의 전 학생을 대상으로 일종의 잠재력 검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아주 높은 점수를 받아서 앞으로 1년 안에 성적이 크게 향상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 누구인지 선생님들에게 알려주었다. 곧 학생들 중에 꿈나무가 누구인지 알려 준 것이다.

 

8개월 뒤 실시한 검사에 따르면, 꿈나무로 지목된 학생들은 평범하게 분류된 학생들보다 학업 수행은 물론 지능 검사에서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연구자들이 꿈나무로 지목한 학생들이 실제로는 처음에 실시한 잠재력 검사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은 이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잠재력 검사를 토대로 꿈나무를 가려낸 것이 아니고, 무작위로 학생들을 꿈나무와 보통 나무로 나누었던 것이다.

 

이 연구에서 꿈나무로 불렸던 학생들은 연구가 시작되기 전에는 보통 나무로 불렸던 학생들과 성장 잠재력이나 지능이 비슷했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믿음이 보통 나무를 꿈나무로 성장시킨 것이다.

 

 

개구리 왕자

 

네오와 트리니티의 관계는 개구리 왕자 이야기와 닮았다. 마법에 걸려 개구리가 된 왕자에게 공주가 입을 맞췄더니 왕자로 변한다는 이야기. 개구리에게 입을 맞춘다고 정말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이야기는 개구리처럼 생긴 남자의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개구리처럼 생긴 외모 때문에 잠재력은 평가 절하되고 남들이 다 무시하는 남자였지만, 공주는 그가 ‘더 원’이라고 믿고 지지해 주며 사랑했을 것이다. 덕분에 그는 공주의 믿음대로 실제로 왕자의 위치에 올라설 정도로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온통 우리를 좌절시키는 것들로 가득한 세상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스미스 요원과 하루하루 힘겹게 싸우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우선 자신의 잠재력에 대해 스스로 믿음을 가져야 한다. “너 자신을 알라.”의 의미를 기억해 두자.

 

하지만 이것만으로 스미스 요원의 주먹 세례를 견뎌 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사랑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나를 나보다 더 믿어 주는 사람의 사랑 말이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8년 4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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