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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협ㅣ사목회

지금 여기 평신도: 평신도 희년을 어떻게 지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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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22 ㅣ No.61

[지금 여기 평신도] 평신도 희년을 어떻게 지내야 할까

 

 

한국 천주교회는 지금 ‘평신도 희년’을 지내고 있다. 이는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한국평협) 설립 50주년이 되는 2018년을 평신도 희년으로 지내게 해 달라는 한국평협의 요청을 주교회의가 승인한 데 따른 것이다.

 

정확하게는 지난 평신도 주일인 2017년 11월 19일부터 2018년 평신도 주일인 11월 11일까지가 평신도 희년이다. 희년이란 무엇인지, 평신도 희년을 지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평신도 희년을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희년이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레째 되는 날 곧 안식일에는 쉬어야 했다. 안식일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그래서 안식일은 하느님께 바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너희 소와 나귀가 쉬고, 너희 여종의 아들과 이방인이 숨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탈출 23,12).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은 여섯 해 동안 밭에 씨를 뿌리고 포도원을 가꾸어 소출을 거두지만 일곱째 해, 곧 안식년에는 밭에 씨를 뿌려서도 안 되고, 포도원을 가꾸어서도 안 되었다. 저절로 자란 곡식을 거두거나 열매를 맺은 포도를 따서도 안 되었다(레위 25,1-7 참조). “일곱 째 해에는 땅을 놀리고 묵혀서, 너희 백성 가운데 가난한 이들이 먹게 하고, 거기에서 남는 것은 들짐승이 먹게 해야 한다”(탈출 23,11). 안식년에는 또 남에게 돈을 꾸어 준 사람은 그 빚을 탕감해 주어야 했다(신명 15,1-6 참조).

 

희년은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뒤에 맞는 50년째 되는 해를 말한다. 이 희년에는 안식년에 지켜야 할 일을 그대로 지켜야 할 뿐 아니라 안식일과 안식년 규정의 의미가 더욱 확장되어 적용된다(레위 25,8-55 참조). 그래서 희년은 쉼과 휴식을 넘어서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해,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하는 해, 자유를 주고 해방을 선포하는 해, 기쁨의 해이자 거룩한 해다.

 

희년이 거룩한 해인 것은 하느님께 바쳐졌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바친다는 것은 하느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에 모든 것을 다시 하느님께 돌려 드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소와 나귀를 쉬게 하고 땅도 쉬게 하는 것, 빚을 탕감해 주고 땅을 원소유주에게 돌려주는 것, 종이나 몸 붙여 사는 이를 풀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를 주고 해방하여 본디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 한마디로 제자리 찾기, 원상회복을 뜻한다.

 

 

희년이 실현되다

 

이 희년 제도는 모든 것의 원주인이 하느님이시라는 신앙을 바탕으로 가난하고 억압받으며 소외당하는 이들을 보호하려는 제도였다. 그러나 실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이 희년이 온전히 시행된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은 희년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충만히 실현되었다고 믿으며 고백한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초기에 나자렛 회당에서 이렇게 선언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18-19.21). 그리고 당신의 말씀과 행동으로 완전히 실현하셨다.

 

그래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렇게 단언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빼앗긴 자들에게 자유를 선사하시고, 억압받는 자들을 해방시키시고,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제삼천년기」, 11항).

 

 

평신도 희년을 지내는 이유

 

한국평협이 설립 50주년을 맞아 평신도 희년을 지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희년을 맞은 이 땅의 모든 평신도가 제자리를 찾아 원상을 회복하고 그리스도께서 충만히 실현하신 희년의 기쁨을 선포하는 가운데 희년의 정신을 실천함으로써 참다운 화해와 일치, 자유와 평화의 사도로 나서자는 것이다.

 

평신도의 제자리, 곧 원상(原狀)은 무엇일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이라 했다. 하느님의 백성은 성직자와 평신도, 수도자로 이루어진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 삶의 양식과 신분이 다르지만 똑같은 품위를 지닌 한 하느님 백성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평신도는 “교회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바로 교회라는 더욱 분명한 의식을 지녀야 한다”( 「평신도 그리스도인」, 9항).

 

평신도는 이렇게 한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를 이루지만, 평신도에게는 평신도만이 지니는 고유한 특성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를 “세속성”( 「교회 헌장」, 31항)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하느님 백성의 일원인 평신도는 교회의 지체로서 성직자를 도와 교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면서, 각자의 고유한 조건에 따라 세속의 현세 질서를 복음 정신으로 비추어줌으로써, 사회의 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사명을 지닌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를 마치 “누룩처럼 내부로부터 세상의 성화에 이바지하는 것”( 「교회 헌장」, 31항)이라고 설명했다.

 

 

평신도 희년을 뜻있게 지내려면

 

우리 평신도는 어떻게 희년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새롭게 고백하고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고백하는 하느님, 곧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우주만물의 근원이시며 주인이시고,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며 완성으로 이끄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심을 참으로 믿고 고백하는가? 그래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온전히 믿고 의탁하며 거기에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가?

 

우리 신앙에 대한 성찰은 올바른 믿음의 회복으로 이어져야 한다. 올바른 믿음의 회복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을 섬긴다면서도 자신의 부와 권세와 영예를 우선적으로 섬겼다면 이제 그런 관계를 청산하고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올바른 관계의 회복은 하느님과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여러 이유로 단절되거나 어긋난 이웃과의 관계, 동료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나아가 자신과의 관계까지 올바로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먼저 용서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필요하다. 희년 전대사는 죄로 멀어진 하느님과 이웃과 자신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내적이고 영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평신도 희년이 희년 전대사의 은총으로 다양한 차원에서 관계를 새롭게 회복하는 기쁨의 해가 되기를 바란다.

 

희년의 기쁨은 또한 구체적인 행위로 드러나야 한다. 구약의 희년에서처럼 빚을 다 탕감해 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더라도, 적어도 희년 기간에는 돈을 꾸어 준 신자라면 이자를 조금이라도 줄여서 받았으면 좋겠다. 집을 전세나 월세로 빌려준 신자들 또한 집세를 올리지 않거나 조금 줄여서 받는다면 이 또한 희년의 기쁨을 나누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주위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보는 것, 북한 이탈 주민과 중국 동포들, 이주 노동자들을 차별 없이 대하는 것도 희년의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희년이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시는 은총의 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하자면 희년은 인간적인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주시는 선물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고 그 기쁨을 제대로 누리려면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하고 그래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히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분단과 대립에서 화해와 일치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희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상황에서는 주님의 은총과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풀어 나갈 길이 없어 보인다.

 

한국평협은 평신도 희년을 시작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날마다 바치기로 다짐했다. 모든 평신도가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를 바쳤으면 한다.

 

평신도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주교회의가 평신도 희년을 선포하고 교황청이 희년 전대사를 부여한 사례는 세계 가톨릭교회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하다. 평신도 희년이 말이나 행사에 그치지 않고 정신의 실천을 통해 한국 천주교회의 쇄신과 발전에 기폭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이창훈 알폰소 - 가톨릭평화신문 기자.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8년 1월호, 이창훈 알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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