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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 사각지대의 감정 노동자: 감정 노동자, 우리의 가족이고 이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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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2-28 ㅣ No.1455

[경향 돋보기 - 인권 사각지대의 감정 노동자] 감정 노동자, 우리의 가족이고 이웃입니다

 

 

웃다가 병든 사람들

 

겉으로는 미소 짓고 있지만, 마음은 병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기업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본디의 감정은 숨기고 기업이 요구하는 지침대로 고객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특정한 감정 표현을 하는 이들이 바로 감정 노동자입니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감정을 표현하거나 조절하는 행위를 ‘감정 관리’라고 한다면, ‘감정 노동’은 자신이 소속된 조직이 부여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상품화하여 고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의 노동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감정도 하나의 상품으로 기업들이 인식하고 있고, 이를 통해서 수익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비스 산업이 확대되면서 대형 할인점의 계산대 종업원처럼 고객을 직접 대면하거나 ‘콜센터’의 안내원처럼 고객을 대면하지 않는 직종에서 감정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도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임금을 받고 일하는 전체 노동자 가운데 대략 40%인 800만 명이 감정 노동을 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감정 노동은 ‘인권, 여성, 비정규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인권’ 문제는 문제를 일으키는 고객, 이른바 ‘진상 고객’으로부터 인격을 침해당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두 번째는 감정 노동을 하는 대다수가 ‘여성’입니다.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는 희생하고 봉사하는 역할이 남성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성이 적합하다고 여기고 있으며, 기업도 이러한 이유로 이 직종에서 여성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 번째는 대부분의 감정 노동자가 ‘비정규직’입니다. 일하는 여건, 즉 노동 조건이나 노동 환경이 매우 열악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권’, ‘여성’, ‘비정규직’의 아픔을 감정 노동자가 대변하게 된 것이죠.

 

 

감정 노동의 유발 원인

 

감정 노동을 일으키는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감정 노동은 기업의 요구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업은 서비스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고객에게 친절한 미소와 단정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지침을 만들어 직원들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기업은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진상 고객’이 나타나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들은 주로 상식 밖의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상대방의 인권과 인격을 침해하는 폭언과 성희롱, 심지어 폭행을 일삼아 과도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감정 노동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바로 요즈음 흔히들 말하는 ‘갑질’입니다.

 

그런데 감정 노동을 부추기는 부수적인 원인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감정 노동자가 속해 있는 기업 내의 상황입니다. 이를테면 고용이 불안정하거나 임금 등의 처우가 매우 열악한 경우, 경직된 조직 문화나 직장 내 괴롭힘이나 따돌림 같은 경우가 감정 노동을 가중하는 요인이라고 당사자들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종합하면 결국 ‘왜곡된 기업 문화’, ‘갑질’, ‘열악한 노동 환경’ 등 감정 노동자 주변의 다양한 말썽이 복합적으로 감정 노동을 유발하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일본의 ‘나스메 마코토’라는 대학교수가 감정 노동자들에게서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 많이 나타난다고 발표했습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일수록 직장 생활을 유지하려면 그저 ‘항상 미소 짓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타인에게는 항상 기분 좋고 밝은 모습만 보여 줘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분노나, 슬픔, 우울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 등도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는 감정입니다. 하지만 훈련을 통해 이를 의도적으로 숨기며 타인에게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 채 홀로 불안한 증상을 떠안고 있다 보니,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끼쳐 결국 병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감정 노동은 ‘내면 행위’와 ‘표면 행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내면 행위’는 자신의 본디 감정과 겉으로 표현하는 감정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표면 행위’는 이와는 달리 자신의 감정과는 다른 감정 표현을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표면 행위’에 주목합니다. 본디 감정을 절제하거나 숨기고 조직에서 요구되는 특정한 감정 표현을 함으로써 감정의 부조화가 생기게 되는데, 이는 감정적으로 매우 불편한, 곧 심리적 갈등상태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감정을 억지로 표현하는 ‘표면 행위’를 수행함으로써 발생하는 감정 부조화는, 곧 자신을 스스로 속이고 있다는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자아로 발전되기 쉽습니다. 더 나아가 자기비하는 물론, 자신과 타인에 대한 냉소주의적 태도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 노동자가 겪고 있는 불안정한 감정 상태가 때로는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원치 않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감정 노동을 수행하면서 발생하는 정신 질환이 산업 재해로 인정받아서 사회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비율은 여전히 낮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기준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적응 장애’, ‘우울병 에피소드’만 산업 재해로 인정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의학적으로 구분되는 정신 질환의 종류는 매우 다양합니다. 위의 세 가지 기준만으로는 감정 노동자가 감정 노동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산업 재해에 대하여 보호받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을 더욱 적합한 수준으로 확대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감정 노동자가 속해 있는 기업들이 최선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고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려고 무조건 친절을 강요하는 서비스 교육은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부 ‘진상 고객’을 응대하는 지침서를 마련하여 시행해야 합니다. 직장 내에서는 감정 노동을 예방하고 감정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 제도에는 ‘진상 고객 전담 부서 설치’, ‘진상 고객과 대면 시 업무 중지와 휴식권 보장’, ‘감정 노동자에 대한 심리 상담, 치유 서비스 제공, 감정 수당과 감정 휴가’ 등의 보상 체계가 포함됩니다. 감정 노동자의 주요 관심사는 ‘내가 속해 있는 기업이 나에게 얼마나 관심을 두고 응원과 지지를 보내 주고 있는가?’라는 점을 기업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기업들은 수익을 확대해서 이윤을 많이 얻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보니 사업장에서 일하는 자기 직원에 대한 지원과 응원은 대체로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뭔가 기업들이 강제적으로 책임지게 하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감정 노동 종사자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해 감정 노동자 보호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권고 의견을 ‘고용노동부 장관’과 ‘국회 의장’에게 전달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침내 금융권에서 일하는 감정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되어 현재 시행되고 있습니다. 시행 중인 감정 노동자 보호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행 중인 감정 노동자 보호법

 

은행법 제28조의 3(고객 응대 직원에 대한 보호 조치 의무)

① 은행은 이 법에 따른 업무를 운영할 때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직원을 고객의 폭언이나 성희롱, 폭행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다음 각호의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1. 직원이 요청할 경우 해당 고객으로부터의 분리 및 업무 담당자 교체.

2. 직원에 대한 치료 및 상담 지원.

3.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직원을 위한 상시적 고충 처리 기구 마련.

4. 형사 고발 또는 손해 배상 소송 등 필요한 법적 조치.

5. 그 밖에 직원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치.

② 직원은 은행에 대하여 제1항 각호의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③ 은행은 제2항에 따른 직원의 요구를 이유로 직원에게 불이익을 가하여서는 아니된다.

 

은행법 시행령 제24조의 6(고객 응대 직원의 보호를 위한 조치)법 제52조의 4 제1항 제4호에서 “법적 조치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치”란 다음 각호의 조치를 말한다.

 

1. 고객의 폭언이나 성희롱, 폭행 등(이하 "폭언 등"이라 한다)이 관계 법률의 형사처벌 규정에 위반된다고 판단되고 그 행위로 피해를 입은 직원이 요청하는 경우: 관할 수사 기관 등에 고발.

 

2. 고객의 폭언 등이 관계 법률의 형사 처벌 규정에 위반되지는 아니하나 그 행위로 피해를 입은 직원의 피해 정도 및 그 직원과 다른 직원에 대한 장래 피해 발생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관할 수사 기관 등에 필요한 조치 요구.

 

3. 직원이 직접 폭언 등의 행위를 한 고객에 대한 관할 수사 기관 등에 고소, 고발, 손해 배상 청구 등의 조치를 하는 데 필요한 행정적, 절차적 지원.

 

4. 고객의 폭언 등을 예방하거나 이에 대응하기 위한 직원의 행동요령 등에 대한 교육 실시.

 

5. 그 밖에 고객의 폭언 등으로부터 직원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사항으로서 금융위원회가 정하여 고시하는 조치.

 

 

법보다도 중요한 것

 

무엇보다도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상대방이 누구든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 문화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관심을 두고 노력을 해야 하겠지요.

 

한 음식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의 티셔츠에는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티셔츠를 입고 일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본 고객들은 아마도 ‘누구든 서로서로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겠죠.

 

어느 커피숍의 메뉴판을 보면서 ‘감정 노동 이야기’를 마칩니다.

 

“커피 한 잔” - 6천 원

“커피 한 잔 주실래요?” - 4천 원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만 주실래요?” - 2천 원

 

우리는 어떤 언어를 선택해야 할까요?

 

* 이성종 -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집행위원장으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기획실장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7년 12월호, 이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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