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인간 본연의 약점(기억의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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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1-06 ㅣ No.548

[레지오와 마음읽기] 인간 본연의 약점(기억의 왜곡)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의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나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말들에서 보듯, 인간에게 “본다”는 행위는 아주 중요한 지각능력 중 하나이다. 하지만 보통 체격의 사람이 덩치 큰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와 작은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그 키가 다르게 느껴지는 착시 현상이 우리 모두에게 있고, 마술이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신기함에 놀라게 됨을 생각할 때, 우리가 본 것이나 보는 것 모두가 과연 믿을 만한 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이런 의문을 실험으로 풀어낸 학자가 있으니, 바로 20세기 유명 심리학자 중의 한 사람인 미국의 ‘엘리자베스 로푸스’이다. 그녀는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교통사고의 영상을 보여주고 질문에 답하게 했는데, 질문에 따라 그들의 답이 달라짐을 발견했다.

 

다시 말하면 그들에게 영상에 나오는 자동차의 속도를 어림해보라고 하면서, “차들이 박살났을 때”라고 질문했을 때와 “차들이 서로 부딪혔을 때”라고 했을 때, 그들의 속도 추정에는 큰 차이가 났다. 즉 “차들이 박살났을 때”라고 할 때가 “차들이 서로 부딪혔을 때”보다 차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고 기억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영상에는 없는 깨진 유리를 보았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녀는 실험의 결론으로, 기억이란 사건 발생이후 회상할 때 유도심문이나 허위정보 때문에 새롭게 조작될 수도 있다며, 목격자들의 증언이 과연 진실한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실제로 그녀는 조지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의 유죄 평결을 무죄로 만들었다.

 

이 사건은 조지 프랭클린이 딸 친구를 살해하는 것을 보았다고 그의 딸이 증언하면서, 그는 유죄가 되어 20년을 감옥살이를 하였는데, 이를 로푸스가 법정에서 그의 딸이 최면 중 암시를 받았고 기존의 아버지에 대한 무서운 기억과 그것으로 인한 분노와 슬픔이 조합되면서 완전히 거짓된 기억이 생겨났음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DNA검사법으로 뒤늦게 무죄가 확인된 수감자들이 75%가 잘못된 기억에 의한 증언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의 기억은 자주 왜곡된다.

 

 

주변 상황에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여 그것들만 기억

 

그렇다면 목격자들은 왜 그런 증언을 하게 될까? 그것은 바로 기억의 특성에 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우리는 비디오카메라처럼 보이는 모든 것을 저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상황에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여 그것들만 기억하는데, 특히 자신의 감정이나 동기 등과 관련된 것을 더 잘 기억한다. 그리고 이미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을 통해 사건이나 상황을 보고 이해하고, 그 생각의 틀에 맞추어 사건을 재구성하여 기억한다.

 

즉 중요한 새로운 정보를 기존의 지식과 신념에 통합하여 저장하는 것이, 미래의 행동이나 계획에 그 정보들을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어 환경 적응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 대로 들은 대로”라고 생각하는 기억조차도, 사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어떤 특정 단어를 통해 마치 실제처럼 기억에 남아 잘못된 기억을 만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기억한 것을 회상하는 과정에서도 기억이 재생될 때마다 뇌에서 다르게 회상하게 되어 기억은 조금씩 달라진다. 나란히 앉아서 같은 영화를 보고도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K자매는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남달라 사리분별을 잘했지만 자기주장과 자기과시가 강한 레지오 단원이었다. 평소에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를 자주 했지만 그게 맞는 말이기도 하여 다른 단원들은 싫어하면서도 그냥 받아들였다. 그런데 K자매와 비슷한 성향의 새단원이 들어오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K자매는 새단원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함께 활동을 했지만, 활동보고 때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K단원과 새단원이 본 것이 서로 다르고 평가 또한 달라지면서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되었고 사소한 오해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입교권면 활동 대상자가 갑자기 입교를 강하게 거부하자, 그 이유를 추정하는 과정에서 쌓인 감정이 터지면서 크게 다투었다. 결국 새단원은 탈단과 함께 성당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서기 회의록 낭독은 기억의 왜곡을 피하려는 기본적 장치

 

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내가 보는 것처럼 남들도 볼 것이며,  당연히 남들도 나와 같은 의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다 남들이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섭섭한 것을 넘어 그들이 무지나 편견에 사로잡혔다고 여겨지는가? 또한 누구라도 뭔가를 자신있게 말하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가? 기억의 왜곡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니 나만 옳다는 생각은 조심해야 한다. 이는 사소하지만 잦은 말다툼의 원인이 되고, 결국 큰 갈등으로 번져나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확신이 들더라도 만에 하나 내가 틀릴 수도 있고, 상대 또한 의도하지 않게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럴 때는 설명이나 판단으로 고쳐주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것이 먼저이다. 그렇지 않으면 화합은 어렵다. “레지오에서 말하는 능률도 결국 화합의 정신으로부터 비롯된다. 아무리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해도 화합을 깨뜨리면서 얻어낸 것이라면 그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다.”(교본189쪽)고 할 만큼 함께 마음을 모으는 화합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억의 왜곡은 피할 수 있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보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 광고 카피로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었다. 물론 기록이 기록자의 사견이 들어가긴 하지만, 대체로 객관적 시각으로 상황 그대로 기록된 것이라면, 기억의 왜곡에 대한 보완이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레지오 주회나 평의회 시간에 지난주나 달의 서기회의록을 낭독하여 수정을 할 기회를 갖는 것은, 기억의 왜곡을 피하여 화합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 각 개인 안에 잠재되어 있던 격정이나 고집, 자만심, 불신감 등이 불타오르듯 강렬해져서 모임의 한 구성 요소처럼 되어 버린다. 신자들만의 종교적 집회에서조차도 사람들은 집단을 이루면 얼마 안 가서 인간 본연의 약점을 드러내고 만다.”(뉴만 / Newman : 세속의 모습) <교본 243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11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한국독서치료협회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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