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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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8-07 ㅣ No.532

[레지오 영성]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

 

 

본인은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1991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보좌신부로 2년7개월을 사목한 후 군종사제로 파견되어 19년을 군종사제로 살다가 2012년 말일부로 전역한 뒤 서울대교구로 복귀하였다.

 

신자들로부터 왜 그렇게 군 생활을 오래 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군종사제로 파견된 이유는 사실 본인이 원해서라기보다는 동료 사제들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원해서였다.(지면 사정상 다 말하기가 힘들다)

 

군대는 계급별 직능을 수행하는 곳이라 상급부대는 거기에 맞는 계급이 가서 사목을 해야 하는 원칙이 군종에게도 적용된다. 따라서 그 ‘누군가’는 장기복무를 해야 하고 진급을 해서 상급부대로 보직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공군에 있는 모든 사제들이 나에게 장기복무을 강하게 권하였고, 나는 이런 저런 조건을 달면서 피하려고 했었지만, 또 어쩔 수 없이 그 ‘누군가’는 해야 할 장기복무를 하게 되었다. 장기복무는 10년을 근무하는 조건이었다.

 

군종사목은 쉽지는 않지만 나름 젊은이 사목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곳이고, 어렵기는 했지만 의미도 있고 보람도 있는 사목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군종사목을 10년쯤 하던 어느 날, 군종교구장님께서 부르셨다. 쉽지 않겠지만 후배들을 위해 군복무를 조금 더 해달라는 청이셨다.

 

정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대답을 할 수가 없어서 한참이나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그리고 나름대로 나의 계획과 현재의 상황 등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이제는 군을 떠나서 ‘다른 사목’을 하고 싶다는 얘기와 일 년 후배 사제가 나보다 훨씬 잘하고 있으며, 그 친구는 군에 더 있고 싶어 하니 그 친구를 더 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등의 얘기였다.

 

그러나 주교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계획과 마음을 굳히신 듯, 거듭 내가 더 있어주었으면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정말 곤혹스럽고 답답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주교님! 당장 답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주일만 시간 좀 주십시오. 기도를 하고 오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집으로 와서 한 주간을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도대체 이 뜻이 무엇인지? 왜 이런 결정을 내리셔서 제게 명하시는지를 생각하며 난 도대체 어떻게 응답해야 할 것인지를….. 며칠을 기도하며 성체 앞에 머물러 앉아 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말씀이 난데없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 말씀은 신학교 도서관 앞에 돌에 새겨진 말씀인 ‘Omnibus Omnia’!!(1코린 9,22) 그런데 사실 특별히 중요하게 묵상해 본 적이 없었던 말씀이었는데 그 말씀이 머리를 스치며 드는 생각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란 ‘필요한 이에게 필요한 것을’ ‘필요한 자리에 필요한 자의 모습으로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필요한 이에게 필요한 것을’ ‘필요한 자리에 필요한 자의 모습으로 있는 것’

 

사제가 도대체 무엇인가?

 

사제는 그리스도의 성사적 대리자이고, 교회 공동체의 장상인 주교님의 사목적 협력자요, 파트너가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필요로 하시고 ‘그 분’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 나의 몫이 아닌가? 이것이 내가 신학교에서 그동안 배웠고, 순명하겠노라고 다짐했던 내용이 아닌가? 사도 바오로의 결의에 찬 다짐과 각오의 이 한마디는 바로 내가 살아야 할 복음의 말씀이 아닌가?

나는 일주일 후 주교님께로 갔고, 주교님께 순명하겠노라는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이어서 7년의 생활을 더 군종사제로 살았다.

 

사실 죽을 만큼 힘든 시간도 있었고,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며 우울해하던 시간도 많았다. 신자들과 웃고 울며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사제로서 보다 군 조직 안에서 때로는 하나의 행정가로, 한 직능을 가진 보직자로서만 살아간다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살아야 할 순명이고 사명이었기에 버티고 또 버티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군으로 부터도 교회로 부터도 무척 많은 선물을 받았고 ‘모든 것을 선으로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의 커다란 은총의 선물을 얻었음을 고백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의 군대’다.

 

그렇다면 군인으로서 지휘관에 순명하고 사명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레지오 단원이라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나를 손길과 눈길 그리고 나의 시간과 나의 배려를 원하는 그 누군가에게 나는 구원의 삶을 사는 또 하나의 바오로, 또 한 분의 주님의 역할을 사는 복음의 도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사는 ‘복음적 인간’, ‘레지오 마리애’ 단원의 자세일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8월호, 조정래 시몬 신부(서울대교구 방배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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