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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안과 밖이 다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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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7-21 ㅣ No.405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안과 밖이 다른 사람

 

 

부장 김기준은 너무 자상하다. 신입사원이 산더미 같은 서류를 들고 낑낑대는 모습을 발견하면, 바로 달려가 짐을 나눠 들어 주는 사람이다. 이런 상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인간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이 자자하다.

 

한편, 남편 김기준은 인정머리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자기는 조그맣고 가벼운 비닐봉지 하나 달랑 들고 앞서 걸어가면서,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자기보다 더 많은 짐 보따리를 들고 오느라 뒤처진 아내에게 “빨리 와!” 하고 소리치는 인간이다. 저런 남편이랑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두 김기준은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동일 인격체임에도 회사에서의 김기준과 집에서의 김기준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김기준은 공익광고협의회에서 만든 ‘가족 사랑 캠페인’ 광고의 주인공이다. 이 광고에는 김기준을 포함해 그의 아내, 아들, 그리고 딸이 등장한다. 광고에 등장하는 네 명의 가족 구성원의 공통점은 가족에게 행동하는 모습과 사회생활을 할 때의 모습이 너무도 다르다는 것이다. 마치 이중인격자처럼 밖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고 다정한 모습을 보이려고 최선을 다하다가도, 집에 돌아와서는 정작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가족에게는 무관심하고 냉정하게 변해 버린다.

 

“당신은 안과 밖이 다른 사람인가요?” “밖에서 보여 주는 당신의 좋은 모습, 집안에서도 보여 주세요!”로 마무리되는 이 광고는 우리가 지금 가족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광고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우리 삶의 모습이 광고 속 가족과 닮았기 때문이다. 광고를 접했던 많은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광고에서 발견했다고 고백하곤 한다. 광고를 보면서 죄책감이 들었다는 사람도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만면에 미소를 짓다가, 집에만 들어가면 아주 작은 일에도 화를 내던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다정하고 어른스러운 친구였지만, 집에만 돌아오면 짜증 부리는 아이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봤다고 고백하는 학생도 있다.

 

이 광고는 우리 자신의 행동을 객관화시켜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광고 덕분에 많은 사람이 지금까지 자기가 가족에게 했던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광고는 ‘모든 문제는 개인에게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당신은 안과 밖이 다른 사람인가요?”라는 이 광고의 카피(문안)는 사회와 가정에서 이중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바로 당신 개인이 고쳐야 하는 문제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과연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있는 것일까?

 

 

두 얼굴의 사나이로 만드는 사회

 

직장에서는 마음이 넓고 성격이 원만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집에서는 속 좁고 화도 잘 낸다는 핀잔을 듣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들은 심지어 남들에게만 따뜻하고 가족에게는 냉정한 이중인격자라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한다. 왜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좋았던 성격이 집으로 돌아오면 나빠지는 것일까?

 

상냥한 사원, 친절한 꽃집 주인, 쾌활한 친구, 그리고 자상한 부장이 되려면 자기 자신을 잘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곧, 욕 나오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해서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시키고, 심지어 미소까지 지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회사나 학교에서 성격과 인간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다.

 

이런 자기 조절과 통제 과정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문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양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대다수 직장인과 학생은 직장이나 학교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에너지가 완전히 방전된 상태로 가정에 복귀하면,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넘길 정도의 약한 스트레스에도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지 못한 채 짜증이나 화를 낼 가능성이 커진다. 최악의 경우에,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정신적 맷집이 아주 약해져서 사소한 스트레스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는 ‘두 얼굴의 사나이’로 불렸던 헐크처럼 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성적이고 친절한 과학자인 브루스 배너도 처음에는 몇 번이고 참는다. 하지만 참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고갈되는 순간 헐크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헐크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에너지가 고갈되면, 직장이나 학교에서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되고 만다.

 

구성원들의 에너지를 모두 고갈시켜 버리는 ‘밖’의 조건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개인만의 노력으로 ‘안과 밖이 같은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은 개인에게 불가능한 작전을 수행하기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밖에서 보여 주는 좋은 모습을 집 안에서도 보여 주려면 개인의 이러한 결심이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도 함께 갖추어져야 하는 것이다. ‘가족 사랑’은 가족 구성원만의 노력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보약

 

미국 플로리다대학교의 로이 버마이스터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자기조절과 통제를 위해 사용하는 에너지는 혈당이라고 한다. 혈액 내에 존재하는 포도당이라고 할 수 있는 혈당이 바로 뇌가 자기 조절과 통제를 위해 사용하는 에너지 또는 일종의 연료인 셈이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는 설탕이 들어간 레모네이드를 마신 사람들이 무설탕 레모네이드를 마신 사람들보다 자기 통제를 더 효과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우리가 혈당을 획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균형 잡힌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의 남편이나 아내가 당신에게 날카롭게 대한다면, 배우자를 비난하기 전에 먼저 배우자의 영양과 건강상태를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배우자는 당신에게 일부러 못되게 구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잘 대하려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에게 인간성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먼저 몸의 균형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첫 단계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 곧 휴식을 취할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또한 잠이 보약이라고도 한다. 건강한 식사와 휴식은 육체의 보약이기도 하지만 정신적 맷집을 키워 주는 마음의 보약이기도 한 것이다.

 

 

몸, 마음, 그리고 사회

 

우리의 몸과 마음은 독립적으로 기능하지 않고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몸이 변하면 마음도 변하고, 마음에 변화가 오면 몸도 변화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잘 조절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사람의 몸에 있다. 몸의 불균형이 마음의 균형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려면 먼저 내 몸이 평화를 찾아야 한다. 더 나아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평화를 찾게 해야 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환경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7년 7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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