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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18: 카파도키아의 괴르메 동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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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08 ㅣ No.359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18) 카파도키아의 ‘괴르메 동굴 교회’


기암괴석 아래 동굴에 만든 작은 천상 세계

 

 

- 괴르메 야외 박물관. 넓은 곳에 흩어진 30여 개의 바위 동굴 교회와 수도원으로 구성돼 있다.

 

 

터키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기암괴석의 지형 때문에 세계인들이 찾는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카파도키아는 ‘아름다운 말[馬]이 있는 곳’이라는 뜻의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터키 중남부에 위치한 이곳은 실크로드의 중간 거점으로서,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해발 1000미터 이상의 고원 지대에 탑이나 첨탑, 돔이나 피라미드처럼 다양한 형태의 모습을 보이는 바위들은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낸다. 이 지역은 약 300만 년 전 화산 폭발과 지진활동으로 생겨난 응회암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오랜 풍화 작용을 거쳐 오늘날의 특이한 암석군을 이루게 됐다. 

 

카파도키아의 바위산을 둘러보면 하느님께서 만드신 자연보다 위대한 예술품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이곳에는 하느님의 빼어난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카파도키아에는 하느님의 아름다운 작품과 함께 사람들이 만든 오래된 주거지 흔적, 동굴 마을과 저장소, 교회와 수도원, 지하 마을과 도시가 있다. 

 

이곳은 특이한 바위산으로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만, 교회 역사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카파도키아 주민에 대해서는 이미 사도행전 2장 9절에 언급돼 있다. 성령 강림 때 예루살렘에 살던 독실한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들 가운데는 카파도키아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로마제국 시대에는 4세기 초까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카파도키아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307~337년 재위)가 313년 그리스도교를 공인하자, 이곳에는 더욱 많은 신자가 몰려들었다. 

 

동굴 교회 내부 제단 주변 벽화. 비잔틴 양식 성당을 축소해 놓은 듯 거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카파도키아에서 처음으로 수도생활을 했던 흔적은 인근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바실리오 성인(329~379년)의 지도를 따르던 작은 은수자 공동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바위 동굴에 수도원을 만들어 거주하며 기도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사람들은 전쟁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거나 거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카이마클리(Kaymakli)와 데린쿠유(Derinkuyu) 같은 몇 개의 지하 도시를 만들어 살았다. 여러 층으로 구성된 지하도시는 적군을 방어하기에 용이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설계됐다.

 

카파도키아의 괴르메(Goreme)에는 신기하게 생긴 바위가 많은데, 그 안의 동굴에는 집이나 저장소, 교회나 수도원이 자리한다. 화산재가 굳으면서 만들어진 응회암은 부드러워 동굴을 만들기가 쉬웠다. 괴르메는 300년부터 1200년까지 교회 수도원의 중심지가 됐다.

 

괴르메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괴르메 야외 박물관’이다. 이곳은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넓은 곳에 흩어진 30여 개의 바위 동굴 교회와 수도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 박물관에서는 ‘성화상 파괴 논쟁’(726-843년) 이후의 비잔틴 미술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843년 이후에는 밝게 색칠한 구상화로 교회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괴르메 계곡의 여러 동굴 교회에서는 9세기 후반에서 13세기까지의 뛰어난 프레스코 벽화를 볼 수 있다.

 

- 벽화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사랑을 나누는 성모자상’ 벽화.

 

 

교회 내부는 비잔틴 양식의 성당을 축소해 놓은 것 같아 거룩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사람들은 그 안의 벽면에 예수님이나 성모 마리아, 사도들과 존경받던 성인들을 그렸다. 교회의 전면 벽에는 ‘옥좌에 앉아 만민을 축복하시는 전능하신 그리스도’를 즐겨 그렸다. 예수님 주변과 발아래에는 성인들을 그려 넣어 동굴이 작은 천상 세계임을 알려준다. 예수님과 조금 떨어진 벽에는 성경의 주요 장면을 묘사해 신앙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벽화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랑을 나누는 성모자상’인데, 교회의 반원형 벽에 그려졌다. 성모 마리아께서 아기 예수와 얼굴을 맞대며 서로 간의 사랑을 드러내는 성화다. 믿는 이들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 뿐 아니라 신앙에 충실한 모든 이를 품어 하느님께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비잔틴 시대의 이콘과 같은 유형이지만 이콘보다는 훨씬 큰 규모여서, 보는 사람들에게 생동감을 더 잘 전해 준다. 

 

동굴 교회의 벽화도 격동의 세월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11세기 후반에는 카파도키아에 이슬람교가 들어왔지만 그리스도교와는 평화적으로 공존해 교회 건축이 파괴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떤 이슬람교도들은 동굴 벽화를 망치나 정으로 쪼아 훼손했기 때문에, 원형이 잘 보존된 벽화는 몇 군데 남아있지 않다.

 

괴르메에서는 소박한 동굴 교회와 그 안을 장식한 아름다운 벽화를 볼 수 있다. 또한 하느님의 선물인 자연에 최소한의 손을 대어 교회를 만들고, 벽화를 통해 하느님을 찬미하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이 얼마나 하느님을 찬미하며 살았는 지는 동굴 교회에 들어가 성화 몇 점을 바라보면 절로 알게 된다.

 

*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5월 7일,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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