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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일상 속 영화 이야기: 갈등(Confl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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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2-28 ㅣ No.986

[일상 속 영화 이야기] ‘갈등’(Conflict)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한다. 지난 호에서 말했듯이 ‘이야기’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창조해서 전달하는 것이 영화이다. 단순히 감독, 배우, 카메라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를 창조하는 시나리오 작가, 그 이야기를 영화적인 언어로 창조하고 배우들의 연기를 이끌어내는 감독, 그 영화가 구체화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프로듀서, 촬영현장을 통제하는 조감독, 영상을 만들어내는 카메라 팀, 조명 팀, 오디오 팀 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해야 하는 공동 작업이다. 그래서 영화제작현장에서 ‘팀워크(Teamwork)’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많은 감독들이 이전 그의 작품에 함께 했던 프로듀서, 배우들, 그리고 제작팀들과 다시 함께 작업하는 것은 호흡을 함께하면서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준비해야 할 큰 일 중에 하나가 ‘팀(Team)’을 꾸리는 일이다.

 

마지막 졸업 작품을 앞두고 함께 작업할 사람들을 만나보고 선택하는 것으로 고민이 많았던 2년 전 봄, 식당에서 우연히 같은 반 친구를 만났다. ‘준 쾅’이라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으로 늘 성실하고 열심한 친구였다. 많은 중국 유학생들이 같은 중국사람들끼리 어울리고 함께 작업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그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 친구들과도 많이 어울리고 작업도 함께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작품에 함께 일할 팀 구성 때문에 고민한다고 말하자 준 쾅은 “뭐가 가장 걱정이니?”라고 물었다. 나는 “Conflict(갈등)”라고 대답했다. 준 쾅은 씩 웃더니 “Life is conflict.(인생이 갈등이지.)”라며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의 대답은 나도 의식하지 못한 내가 팀을 구성하는 기준을 깨닫게 했다. 그것은 ‘갈등을 피하는 것’이었다. 영화를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팀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피하고 싶은 데에 마음이 온통 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영화제작현장에서 갈등이 심각해지면 작업이 진행되는데 지장을 주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갈등 자체가 없는 현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보이는 이야기(Visual Story)’다. 그 이야기가 진행되기 위해 반드시 나오는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갈등’이다. 모든 영화에는 갈등이라는 요소가 있다. 액션영화는 주인공과 악당 간에 갈등, 가족영화는 가족들 간에 갈등, 사회비판영화는 사회구성원들 간에 갈등 등 모든 장르의 영화는 갈등이라는 요소 없이 진행될 수 없다. 그래서 ‘갈등’이라는 요소에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도 볼 수 있다.

 

‘갈등’은 ‘다름’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다를 때 충돌이 일어나고 감정이 불편해진다.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서도 일어나는 갈등으로 인한 불편함을 우리는 자주 경험한다. 그래서 ‘갈등은 곧 불편함’이라는 부정적인 것으로만 여긴다. 그러나 영화에서 ‘갈등’은 불편함이라기보다는 이야기를 상승시키고 흥미와 재미를 더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준 쾅의 말대로 ‘인생은 갈등의 연속’이다. 준 쾅이 다른 중국 유학생들과 달리 다른 나라 학생들과 잘 어울리고 함께 작업한 이유는 갈등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 피하지 않고 인생에서 당연히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갈등에 대한 그의 자세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일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는 성실함으로 드러나 누구나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로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갈등’을 부정적인 요소로만 보고 그것을 피하려고만 하는 태도는 결국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영화제작 현장에서 팀 내부에 여러 가지 다른 의견들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감독이 갈등에서 오는 불편함이 두려워서 ‘좋은 게 좋다.’ 혹은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으로 회피한다면 현장은 엉망이 되고 제대로 된 영화가 나올 수 없다. 영화제작현장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사에서 이러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직장, 학교, 그리고 교회 안에서도 갈등은 매 순간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이며 일상이다.

 

성경 안에서 우리는 갈등 상황 안에 계신 예수님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 율법학자들과의 갈등, 심지어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과의 갈등, 그리고 겟세마니 동산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 앞에서 느끼는 당신 내면과의 갈등까지 예수님의 삶 또한 우리처럼 갈등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갈등을 피하지 않으셨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적당히 타협하지도 않으셨고, 제자들 간의 갈등도 외면하지 않으셨으며, 당신의 내면 안에서의 갈등에서도 피눈물을 쏟으실 만큼 그 자체를 직면하셨다. 그래서 유다교 지도자들의 위선이 드러났고, 부르심에 대한 제자들의 태도는 정화되었으며, 십자가 죽음을 통한 부활로 구원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갈등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내가 너희에게 평화를 주러 온 줄 아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진다. 심각한 가족들 간의 갈등상황까지 이어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이 갈등이 결코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다. “이 불이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루카 12,48)는 말씀을 통해 갈등의 불이 단순히 다름에서 일어나는 충돌에서 빚어지는 것이 아닌, 신앙적 선택의 여정에서 오는 당연한 과정임을 드러내신다.

 

영화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갈등을 통해 진행되고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관객들을 설득한다. 그래서 좋은 영화는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 나가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배우가 수상소감에서 말했듯 영화를 뛰어넘는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 또한 삶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피할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올바르게 해소시켜 나갈 때 좋은 영화처럼 우리를, 교회를, 사회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월간빛, 2017년 2월호, 한승훈 안드레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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