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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힐링 노트: 두 가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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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18 ㅣ No.369

[하쌤의 힐링 노트] 두 가지 길

 

 

사람의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요? 의대생 시절 넉 달 내내 해부를 해 보아도 영혼이 어디 있는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뇌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두 발로 걷는 우리 인간은 신기하게도 하늘에 뿌리를 둔 나무처럼 생겼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결정하는 신경은 뇌에서 시작해 혀, 손끝, 발끝으로 여러 줄기 뻗어 있습니다. 뇌에서 내린 명령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돕는 행동을 하게 되고,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되며, 맛있는 요리를 하게 됩니다.

 

나무로 치면 뿌리에 해당되는 뇌를 구조와 모양에 따라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해마, 뇌간 등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그런 복잡한 구조까지 알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왜 늘 한결 같이 행동하지 않는지 왜 이유없이 불안하고 때로는 신체적 욕구에 충실하는지 두 가지 길만 알면 됩니다.

 

첫 번째는 ‘빠른 길’입니다. 뇌의 아래쪽 부분인 편도(amygdale)를 통과해서 명령을 전달하는 이 길은 우리 몸의 경보기입니다. 즉각적 감정이나 불안과 공포를 관리하는 곳입니다. 이 빠른 길은 우리 인간뿐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발달해 있습니다. 얼룩말이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가도 사자가 나타나면 갑자기 놀라서 도망가는 것은 이 빠른 길에 불이 켜져서 도망가라는 명령을 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위험해!”라고 외치고, 살아남기 위한 반응을 돕습니다. 뜨거운 냄비에 손이 닿았을 때 순간적으로 귀를 만지거나 마구 달려오는 차를 보고 잽싸게 피하는 것은 이런 빠른 길 덕분입니다. 대신 약간 부정확합니다. 예를 들어 전에 뱀을 보고 놀란 일이 있었다면 다음 번에는 꼬불꼬불한 나뭇가지를 봐도 무작정 뱀인 줄 알고 화들짝 놀래어 도망칩니다. 일단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고 도망가는 반응을 보이게 되죠.

 

두 번째는 ‘느린 길’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에게 특히 발달한 전두엽 등, 실제 뇌에서도 위쪽에 있는 부분이 이 느린 길에 해당합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뇌입니다. 앞서 말한 빠른 길이 고속도로라면, 느린 길에는 횡단보도가 있고 과속방지턱이 있는 지방도로입니다. 훨씬 정확하게 생각하고 잘못된 정보를 거르기 위해서입니다. 느린 길은 속도가 느리지만, 지식과 공감을 통해서 더욱 발전하는 부분입니다.

 

이 빠른 길과 느린 길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빠른 길은 원시적이고 동물적이라 느린 길이 더 우아해 보이지만, 느린 길만 발달시켜야 한다거나 유용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저 멀리서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돌진하는 상황을 그려 봅시다. 차에 치이는 것이 위험한 이유와 이후에 생길 수 있는 끔찍한 여러 가능성, 신호를 지키지 않는 차의 잘못된 점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한 다음 피한다면, 아마 때는 늦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 없이 우리가 스스로를 재빨리 찻길 밖으로 끌어내는 것은 빠른 길에 불이 켜지기 때문입니다.

 

반면, 느린 길로 가야하는데 빠른 길을 택한다면 그것 또한 문제입니다. 비합리적 공포와 불안도 여기서 나옵니다. 예전에 한번 놀란 적이 있는 자극에 대해서는 비슷한 자극만 보아도 의미 없이 빠른 길이 활성화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랍니다. 그러다 보면 사실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논리적 판단 없이 싫어하는 자극을 피하게 됩니다. 불이 났을 때 울려야 할 화재경보기가 요리만 해도 시끄럽게 울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비행기나 지하철을 탔을 때 공황발작이 생기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공황장애가 됩니다. 공황장애를 겪는 분들에게 당시에 무슨 구체적인 생각을 했냐고 하면(느린 길), 별다른 생각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쁘고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고합니다(빠른 길).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상황을 두려워하게 되고 빠른 길로만 가게 됩니다.

 

새로운 말씀을 들려주시는 예수님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뇌의 느린 길이 열리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은 느린 길을 통해 여러 번 거르고 세대를 거쳐 생각해도 가치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정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공포와 불안이 군중을 지배하는 모습을 봅니다. 사실 그 시대부터 지금까지 정치는 모두 빠른 길과 느린 길의 싸움입니다. 느린 길을 통해 판단할 수 있는 정책이나 합리적 주장, 이런 것보다도 빠른 길을 통해 불안을 유발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그에 따라 행동합니다. 세대를 관통하는 6.25전쟁의 기억은 전쟁을 일으킨 빨갱이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는 맹신을 불러 일으키며 결국에는 우리 행복을 모두 뒤집어 엎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만들어냅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빠른 길은 부정확하지만, 빠르기 때문에 거기에 동요되기 쉬운 것이지요. 느린 길이 어찌 해 보기 전에 다시 한 번 느껴버린 공포는 또 다시 빠른 길에 저장이 되어 ‘역시 세상은 위험해, 난 다시 그 일을 겪고 싶지 않아’라는 악순환으로 빠져듭니다.

 

요즘은 기능적 MRI 영상을 통해서 어떤 행동을 할 때 뇌의 어떤 부위가 활성화되는지 볼 수 있는데, 기도에 대한 연구도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세계평화, 환경 등을 위한 이타적인 기도를 하거나 묵상을 할 때에는 느린 길에 해당하는 부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한편, 기복신앙에 가까운 자신의 소원을 위주로 이야기하는 기도를 할 때에는 빠른 길 부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물론 하느님의 응답이나 영성적 본질을 이런 뇌영상으로는 보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하느님과 대화에 임하느냐에 따라서 뇌의 다른 부분이 활성화 된다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 인간은 두 발로 걷습니다. 즉 누워있을 때를 제외하고, 걷거나 먹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 뇌의 느린 길이 하늘에 더 가깝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에 뿌리를 둔 나무처럼 생긴 우리 인간, 우리를 정말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6년 겨울호(Vol. 36), 하주원 마리아 박사(연세숲정신건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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