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성경자료

[신약] 거룩한 독서: 부자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부자와 라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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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04 ㅣ No.3642

[이달의 거룩한 독서] 부자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19-31).

 

 

읽기 Lectio - 본문을 자세히 읽고 살핀다

 

이달의 말씀에는 부자와 라자로가 나옵니다. 현세에서 부자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반면 거지 라자로는 종기투성이 몸으로 그 부자의 집 대문 앞에 앉아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부스러기는커녕 개들이 몰려와서 그의 종기를 핥았습니다. 그런데 지상의 삶이 끝난 다음에 상황은 역전됩니다. 라자로는 아브라함의 식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지만, 부자는 물 한 방울이 아쉬운 곳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비유의 주제를 ‘회개’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부자는 무엇을 회개해야 했던 것일까요? 비유를 아무리 찬찬히 읽어 보아도 부자가 딱히 죄를 지었다는 대목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율법을 어겼다는 말도, 부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다는 구절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자기가 지닌 재력으로 다른 사람을 짓밟거나 탈세를 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라 규정되었고 저승에서 고통받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그가 저지른 잘못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무관심입니다. 빵 부스러기라도 얻길 간절히 바라는 거지 라자로의 어려움과 아픔을 함께 아파할 줄 모르는 ‘불감증’을 부자는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자기 집을 오가며 그는 라자로를 분명히 보았을 것입니다. 개들이 그의 종기를 핥는 모습까지도 말입니다. 그럼에도 부자는 자기 집 대문 앞에서 라자로의 목숨이 꺼져 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습니다. 라자로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으로 전혀 다가오지 않았고 거기에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죄입니다.

 

 

묵상하기 Meditatio - 본문의 의미를 우리 삶에서 바라본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필리핀 방문 중에 청년 3만여 명과 함께 집회를 연 적이 있습니다. 이 집회에 집을 잃고 거리에서 지내다 교회 시설에서 생활하게 된 12살 소녀도 참석했는데, 그 소녀가 교종에게 물었습니다. “많은 아이가 마약과 성매매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왜 하느님은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두는 걸까요?”

 

교종은 울먹이는 소녀를 먹먹한 표정으로 바라봤습니다. 이윽고 이 소녀를 꼭 끌어안아 준 뒤 미리 작성했던 연설문을 미루고, 즉석에서 답을 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자신이 슬퍼할 줄 알고, 눈물 흘릴 줄 아는지 말입니다.”

 

또한, 그날 오후 빗속에서 열린 미사에서도 이런 취지의 말씀을 다시금 하였습니다. “세속적인 동정은 무의미합니다. 예수님처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눈물 흘리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먹고 살기에 급급하고 하루하루가 빠듯한 우리네 삶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관심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눈물 흘리는 법을 서서히 잊어 가는지도 모릅니다. 심지어는 ‘억울하고, 힘겹고, 외롭고,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시끄럽고 귀찮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장 제 코가 석 자라고 자신을 위안하면서 말이지요.

 

탤런트 김혜자 씨가 쓴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 따르면 지구 상의 60억 인구 중 1억 5천 명의 어린이가 집도 없이 길거리에서 먹고 자며 살아가고, 전쟁과 굶주림으로 4초에 한 명씩 어린이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또 12억 인구가 하루 1000원 미만으로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 등을 해결한답니다. 이런 내용도 나옵니다. “여러분은 부자라고 생각합니까? 가난하다고 생각합니까? 만일 여러분의 집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고, 현재 여러분의 몸에 옷이 걸쳐져 있고, 머리 위에 잠을 잘 수 있는 지붕이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 45억의 사람들보다 잘살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 여인이 하느님께 항의했습니다. “왜 당신은 이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가요?” 그러자 하느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널 보내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굶어 죽고, 고통받는 것에 대해 하느님의 책임을 묻는 것은 비겁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가진 것을 아주 조금만 나누어도 세상의 고통을 덜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실천할 길이 참 많습니다. 한 푼, 두 푼의 작은 정성을 절실히 기다리는 곳도 많습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조그마한 정성으로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기도하기 Oratio - 묵상한 것을 바탕으로 하느님께 말씀을 건넨다

 

저희의 아픔을 모른 체하지 않으시고 당신 아드님을 저희에게 내어 주시어 지희와 똑같이, 아니 저희보다도 더 큰 고통을 겪게 하신 하느님, 저희가 회개하게 하소서.

 

그동안 저의 걱정에만 매달려서 다른 이의 궁핍함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저의 고통에만 아파하며 다른 이의 눈물을 외면하였습니다.

 

제 가족에게만 신경을 쓰느라 다른 이들의 처지에 무관심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들을 때마다 저 자신이 부자와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 다른 이의 아픔에 무감각해진 제 불감증을 깨뜨려 주소서. 당신 아드님께서 보여 주신 ‘가엾은 마음’이 제 마음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의 얼굴이 자비로운 당신의 얼굴을 닮게 하소서. 아멘.

 

 

관상하기 Conteplatio -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 안에 머무른다

 

1. 거지 라자로가 부자의 집 대문 앞에 앉아 지냈던 세월을 상상해 봅시다. 온몸에 돋아난 종기를 핥는 개들의 모습에 부르르 떨었던 그의 몸짓, 부자가 집을 드나들 때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부자를 쳐다보던 그의 눈빛, 기력마저 떨어져서 부자의 집에서 새어 나오는 잔치의 흥겨운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해야 했던 그를 떠올립시다.

 

2. ‘내’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을 떠올립시다.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아주 작게라도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는 곳이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 한재호 신부는 제주교구 소속으로 2002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로마 우르바노 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성서와함께, 2016년 9월호, 한재호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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