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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성경] 히브리어 산책: 헤벨, 헛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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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19 ㅣ No.3548

[주원준 히브리어 산책] 헤벨, 헛것


한순간 날아가 버리는 헛된 것… ‘우상’을 표현해

 

 

헤벨은 한숨 또는 헛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반대말?

 

그리스도교 신자란 하느님의 신비를 깨닫고 그분의 친밀한 도구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하느님께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하느님을 향해 기도하고 실천한다. 하지만 때로는 하느님 반대편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 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독자들은 혹시 하느님의 반대말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셨는지?

 

하느님 반대편에 우상이 있다. 그런데 구약성경 히브리어로 우상을 가리키는 낱말은 여러 가지다. 오늘은 그 가운데 하나인 헤벨을 돌아보겠다. 이 말은 우상의 본질을 퍽 잘 드러낸다.

 

 

숨결

 

헤벨은 본디 숨결이란 뜻이다. 입을 떠난 숨결은 허무하게 사라진다. 시편 저자는 덧없이 흘러가는 나약한 인간의 본성을 헤벨에 빗대었다. “진정 사람이란 헤벨일 따름”이며 인간 모두를 “저울판 위에 올려놓아도 / 헤벨보다 가볍다”(시편 62,10)고 탄식한다. 영원의 시선에서 보자면 개인의 인생도 찰나와 같고 사람들의 인생 전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예레미야: “헛것임을 깨달으라”

 

- 하발림. 헤벨의 복수형이다. ‘우상들’이나 ‘헛것들’로 옮긴다.

 

 

그래서 헤벨은 한숨이요 헛것을 의미한다. 헤벨은 예언서와 시편에 자주 나오는데, 그중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헤벨을 즐겨 사용했다. 그는 국제정세가 복잡하고도 긴박하게 돌아가던 시대를 살았다. 고대근동 세계를 호령하던 신아시리아 제국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이때를 틈타 신바빌로니아 제국은 떠오르는 신흥 강자로서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그동안 맥을 못 추던 전통의 강국 이집트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격변기에서 우왕좌왕하였다. 야훼 하느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백성들도 늘어났다. 그들은 크고 풍요로운 나라의 신들에 마음을 뺏겼다. 요시야 등 현명한 판단을 한 임금도 없진 않았지만, 이스라엘은 결국 민족적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백성은 유배를 가야 했다. 예레미야는 이런 비극의 시대를 살았던 의인이었다.

 

예레미야는 흔히 ‘비탄의 예언자’로 불린다. 그는 하느님 외에는 모두 헛것임을 깨달으라고 홀로 고군분투하며 외쳤다. 다른 민족들의 신은 “이민족들의 헤벨(헛것)”이다(예레 14,22). 그것들은 모두 “헤벨(헛것)이요 조롱거리”일 뿐이다(10,15; 51,18). 강대국의 생활습관이나 신상 등이 화려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 백성들의 관습은 헤벨(헛것)이다”(10,3). 결국 최후의 심판날에 모든 민족들이 결국 하느님이 유일하신 구원자임을 깨닫고 그들의 조상들이 “정녕 쓸모없는 헤벨(헛것)만 물려주었습니다”(16,19)고 고백할 것이라고 예언자는 가르쳤다.

 

그들의 우상들. 다른 민족이 믿는 우상을 일컫는 말로써 ‘그들의 (헛된) 우상들’이란 뜻이다. 뒤에 붙은 ‘헴’(-hem)은 ‘그들의’를 의미한다(의존 대명사).

 

 

헛된 우상

 

이따금 헤벨은 ‘우상’으로 번역된다. 헤벨은 한숨이요 헛것이니, ‘헤벨 우상’이란 특히 ‘헛된 것’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하느님 백성이 남북으로 분단되고 북이스라엘은 정치가 안정되지 못하고 쿠데타가 잦았다. 오므리 왕조는 북이스라엘의 내치와 외교를 안정시키고 최대 강성기를 이끌었지만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하여 결국 멸망하였다. “헤벨들(우상들)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분노를 돋우었기” 때문이다(1열왕 16,26).

 

우상은 하느님께 향하는 인간의 선한 마음을 방해한다. 그런 것을 모두 우상으로 부를 수 있다. 돌아보면 우리는 갖가지 우상에 둘러싸여 있다. 사람들의 욕망은 끝이 없고,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나약한 우리는 탐욕, 이기심, 명예욕, 물신 등에 휘둘리기 쉽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신자유주의가 부추기는 물신과 이기주의를 경계하라고 강조하셨다.

 

헤벨은 우상의 본질을 잘 드러내는 낱말이다. 크고 화려하고 대단하고 매혹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사실상 우상은 헛것이요 허깨비다. 한숨처럼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헤벨을 좇다가는 그 인생 자체가 허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헤벨(헛것)을 따라다니다가 그들 자신도 헤벨(헛것)이 되었더란 말이냐?”(예레 2,5)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6년 12월 18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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