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전례ㅣ미사

[미사] 전례의 숲: 아버지, 성령을 보내주소서!(일치 성령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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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06 ㅣ No.1578

[전례의 숲] 아버지, 성령을 보내주소서!(일치 성령 청원)

 

 

“성령 청원”은 교회가 하느님께 성령의 힘을 내려 주시기를 비는 장엄한 기도입니다. 그리스어로 “에피클레시스”(“불러냄” 또는 “기원”)라고 하는데, “위”라는 뜻의 “에피”(epi)와 동사 “칼레인”(부르다)에서 나온 “클레시스”(부름)의 합성어입니다. 전례에서 “에피클레시스”는 특별히 성령의 내리심을 기원하는 기도를 일컫습니다. 우리말로 “성령 청원”이라고 옮깁니다.

 

동방 교회의 감사기도문(아나포라)에는 이 기도에 언제나 “성령”이란 말이 들어 있지만 로마의 감사기도문에는(로마 전문, 지금 1양식)에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뒤에 새로 만든 감사기도문들에서 “성령”이란 말을 넣었으며, 둘로 나누어 “성찬 제정” 앞과 뒤에 넣었습니다. 동방에서는 하나로 묶어 “성찬 제정” 뒤에 바칩니다.

 

이 기도는 두 가지 목적으로 바칩니다. 하나는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도록 간구하는 것이고(예물 축성을 위한 성령 청원), 다른 하나는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신자들의 일치를 위한 성령 청원).

 

한편, “축성 성령 청원”에는 주례와 공동집전 사제들이 빵과 포도주에 두 손을 얹는 동작이 있지만 회중에게 하는 “일치 성령 청원”에서는 아무 동작도 없습니다. 빵과 포도주 “축성”에 집중하는 신학의 결과로 보입니다.

 

두 기도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두 얼굴을 가진 하나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세기 초 “사도전승”의 감사기도에서는(지금 2양식의 조상) 성찬 제정과 기념 뒤에 하나의 기도로 나타납니다. 동방 교회에서는 지금도 고대 전통에 따라 하나의 기도로 배치하여 두 목적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냅니다.

 

“다시 당신께 이 영적이고 피 없는 제사를 바치나이다. 

그리고 당신께 간구하나이다. 당신께 기도하나이다. 당신께 간청하나이다. 

저희와 여기 있는 예물 위에 당신의 성령을 보내주소서.” 

(비잔틴 전례, 요한 크리소스토모 감사기도).

 

거듭 말하여, “축성 성령 청원”은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기도고, “일치 성령 청원”은 신자들을 거룩하게 하는 기도입니다. 성령께서 빵과 포도주 위에 내리심으로 그것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면, 같은 성령께서 다시 신자들 위에 내리심으로 그들은 거룩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 참된 하느님 백성, 교회로 변합니다. 미사 때마다 성령께서 계속하여 교회를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거룩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미사를 통해 교회는 더 교회다운 교회, 더 예수님 닮은 교회로 변합니다. 거룩하게 된 신자들은 이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적인 음식과 음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일치 성령 청원”이 감사기도의 정점에 있어

 

새 감사기도문들은 먼저 한 솥 밥을 먹는 밥상 공동체를 떠올리며 “일치 성령 청원”을 시작합니다. “성자의 몸과 피의 식탁에 참여하고”(2양식), “성자의 몸과 피를 음식과 음료로 먹고 마시며”(3양식),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받고”(4양식, 화해1), “구원의 잔치에 참여한 저희”(화해2)라는 표현들입니다. 이어서 중심 주제인 일치를 위한 기원을 바칩니다. 대표적으로 “한 몸”, “한마음 한 몸”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2양식과 4양식, 화해 감사기도에서는 양떼와 같은 무리와 관련이 있는 낱말을(congregemur, congregati)를 써서 “한데 모이다”의 역동성을 강조합니다(우리말로는 단순하게 “한 몸”으로 옮겼음).

 

화해 감사기도에서는 그 주제에 맞게 “온갖 분열을 이겨내고”, 또는 “갈라놓은 모든 것을 없애고” 한 몸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기도하고, 기원 감사기도에서는 “이제와 영원히 주님 자녀의 대열에 들게 하소서.” 하며 일치와 교회의 주제를 넌지시 표현합니다. 한편, 위에서 말한 대로 1양식에는 “성령”이란 낱말이 없고, 주제도 일반적입니다. “하늘의 온갖 은총과 복을 가득히 내려주소서.”

 

“일치 성령 청원”이 감사기도의 정점 또는 목적지의 자리에 있습니다. 미사의 근본 효과와 목적이 무엇인지, 나아가 구원이 실제적으로 무엇인지 밝혀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온 세상이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한 가족이라는 주제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근본 흐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을 베푸시어 흩어진 백성을 한데 모으십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고, 바빌론에 귀양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을 다시 불러 모으십니다. 하느님은 모든 민족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 소유인 것처럼, 이집트도 하느님 백성이고, 아시리아도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신 백성입니다(이사 19, 25).

 

이 위대한 업적은 예수님을 통하여 완전하고 결정적으로 실현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십자가에서 팔을 벌려 거룩한 백성을 아버지께 모아들이셨습니다.”(2양식 감사송). 이것이 하느님 사랑이고 우리 구원입니다. 여기에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제 “유다인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한 몸입니다.”(1코린 12, 13) 다시 말해 한국이든 일본인이든, 보수든 진보든, 노동자든 기업인이든 아무런 차별 없이 한 가족입니다.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이 사명을 계속하십니다.

 

 

미사 참여하여 신자들은 예수님과 하나가 돼

 

미사 참여하여 신자들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예수님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됩니다.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은 각자 예수님처럼 살아 있는 제물이 되라는 초대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기도에서는 “성자의 모습을 닮음”(기원), “영원한 제물”(3양식), “산 제물”(4양식)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고대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란 말을 들으면,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성체보다는 먼저 교회 공동체를 떠올렸습니다. “교회”(에클레시아)라는 말 그대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모인 신자들, 특히 미사 회중, 고대 교회의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치프리아노)라는 말도 성경과 전례 전통에 따르면 본디 사람은 자기를 벗어나 다른 사람과 가족을 이룰 때, 곧 친구가 있을 때 행복할 수 있다는 뜻과 연결됩니다. 이 가족은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하느님 백성,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살아 계신 공동체, 참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자기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 원수가 모두 사라지고 모든 이가 친구로 변하는 것.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는 것, 주인이 되어 자유롭고 당당하게 사는 것이지요. 이것이 하느님께 받은 구원의 선물이고 하느님께 드리는 참된 찬양입니다.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받으려는 모든 이가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루고

그리스도 안에서 산 제물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소서. (4양식)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1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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