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전례ㅣ미사

[미사] 엠마오의 두 제자와 성찬례, 가서 전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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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29 ㅣ No.1598

[빛과 소금] 엠마오의 두 제자와 성찬례, “가서 전하시오!”

 

 

엠마오의 두 제자가 걸었던 영적 여정의 마지막 단계는 주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명과 관계가 있다. 주님의 말씀으로 타올랐던 뜨거운 마음과 ‘눈이 열려’ 주님의 현존을 알아보았던 놀라운 체험을 간직한 채 제자들은 더 이상 엠마오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신앙 여정의 출발점이었던 예루살렘을 향해 다시 돌아갔다(루카 24,33).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과 친교는 엠마오의 두 제자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제자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절망과 한탄과 슬픔이 희망과 감사와 기쁨으로 바뀌어 어느덧 그들은 새로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골방이란 자기만의 고립된 세계에 갇혀 있던 비겁한 ‘제자’가 아니라 복음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세상 속에 파견된 존재, 곧 ‘사도’가 된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선물이었다. 제자들의 끝없는 슬픔을 치유한 것은 주님의 끝없는 사랑이었다. 예수님의 자비로운 시선과 조건 없는 사랑이 가져다준 이 경이로운 체험을 통해서 제자들은 무엇보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무엇을 하기보다는 주님께 잠자코 사랑받는 법을 배웠다.

 

이 사랑의 경험야말로 엠마오의 두 제자를 비롯한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을 신앙의 참된 증인으로 거듭나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사도가 된 바오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 5,14).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아무도 빼앗지 못할 이 사랑의 기쁨이 제자들의 닫힌 마음을 열고 생기 없던 그들의 삶에 불을 놓았다. 그리고 그들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선포하도록 이끌었다. 이처럼 ‘친교’와 ‘선교’는 서로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과 하나 되는 친교는 예수님께서 추구하시는 것을 추구하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고 싶은 강렬한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미사의 마침 예식에서 사제가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Ite, missa est)라고 말하면 신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Deo gratias)라고 응답한다. 어원적으로 ‘파견’을 의미하는 ‘미사’란 말은 복음의 기쁨을 나누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상기시키는 표현이다. 초기 제자 공동체의 마음을 충만히 채웠던 복음의 기쁨은 곧 선교의 기쁨이었다. 감사의 미사를 마치고 나올 때마다 우리도 사도들처럼 ‘파견’ 받은 존재로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수행해야 할 몫이 있음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사는 개인만을 위한 신앙 행위가 아니다. 또한 신앙 공동체 안에서 ‘우리’끼리의 일치와 만족만을 추구하는 행위는 더더욱 아니다. 만일 그럴 때 성찬례는 ‘나’ 자신의 안위만을 바라는 이기적인 행위이거나 교회 건물의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수동적으로 거행되는 ‘우리’만의 잔치로 남게 될 것이다. 미사의 영성체를 통한 예수님과의 깊은 일치, 그로 말미암아 공동체 구성원과 이루는 일치는 필연적으로 세상 속에서 우리의 이웃인 ‘그들’을 향해 나아가도록 촉구한다. 여기서 우리가 다가가야 할 ‘그들’이란 우선적으로 예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었던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 가장 보잘것없고 소외된 이들이다. “가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서 미사에서 파견될 때마다 우리는 교회의 문밖에서 울부짖는 그들 안에서 고통받는 그리스도를 알아 뵙고 그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도록 부름 받는다.

 

“우리가 언제나 복음의 아름다움을 적절히 드러낼 수 없다 하더라도, 결코 없어서는 안 될 하나의 표지가 있습니다. 곧 가장 작은 이들을 위한 선택, 사회가 저버린 이들을 위한 선택입니다”(「복음의 기쁨」, 195항).

 

[2017년 1월 29일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인천주보 4면, 김기태 사도요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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