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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국전쟁 70년, 갈등을 넘어 화해로21: 주교단 방북과 민족 화해 기도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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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6-23 ㅣ No.1206

[한국전쟁 70년, 갈등을 넘어 화해로] (21) 주교단 방북과 민족 화해 기도 운동


일희일비하지 말고 형제 향한 조건 없는 사랑 실천하자

 

 

염수정(오른쪽에서 두 번째) 추기경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2014년 5월 21일 개성공단 방문 전 남측 군사분계선에서 이산 가족과 남북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평양교구장 서리를 맡고 있는 서울대교구장이 북한 땅을 밟은 것은 처음이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2014년 5월 21일 하루 일정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염 추기경의 개성공단 방문은 남북관계 경색으로 어려움을 겪던 개성공단 신자공동체를 격려하고자 비공개로 추진했다. 하지만 평양교구장 서리인 염 추기경의 첫 방북에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그리고 1년 반 뒤인 2015년 12월 1일, 3박 4일 일정으로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대표단(단장 김희중 대주교)이 분단 70년 만에 처음으로 방북했다. 한국 주교단의 방북은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남북이 삶을 나누는 개성공단

 

“이곳에 하루빨리 평화가 올 수 있도록 성모 마리아께 전구를 청합니다.”

 

염 추기경은 남측 군사분계선에서 이산가족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개성공단 방문 길에 올랐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주관한 염 추기경 개성공단 방문에는 서울대교구 황인국(평양교구장 서리 대리) 몬시뇰과 정세덕(민족화해위원장) 신부 등 8명이 함께했다. 염 추기경 일행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공단 현황을 설명듣고 개성공단 신자공동체인 로사리오회 회원 40여 명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어 신자들이 운영하는 공장 몇 군데를 둘러보고 남으로 돌아왔다.

 

이 짧은 사목 방문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남북 교류가 주로 일회성 만남에 그친 것이었다면 개성공단은 남북한 주민들이 어울려 삶을 나누는 곳이며 통일된 남북의 미래 모습을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염 추기경의 개성공단 방문을 남측과 북측 모두 승인한 것은 끊어질 듯 위태로운 관계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는 남북한 양측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평가됐다. 남북한 당사자들이 모두 겉으로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염 추기경을 통해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 것이다.

 

염 추기경은 개성공단 방문 후 기자회견에서 “남과 북이 협력하는 개성공단에서 남북 분단의 아픔과 슬픔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며 “선의의 뜻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하면서 진실로 노력하면 평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 교회 주교단이 2015년 12월 1일부터 나흘간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분단 70년 만에 성사된 주교단의 첫 방북이라는 상징성이 컸다. 평양애육원을 방문해 아이들과 함께 기념 촬영하는 방북단.

 

 

한국 주교단 방북

 

2015년 12월 1일, 한국 교회의 주교들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광주대교구장) 대주교를 단장으로 한 방북단에는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김운회(춘천교구장) 주교와 위원인 조환길(대구대교구장) 대주교, 이기헌(의정부교구장) 주교, 박현동(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 아빠스가 함께했다. 김운회 주교는 함흥교구장 서리를, 박현동 아빠스는 덕원자치수도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다. 한국 주교단의 방북은 북한의 강지영(바오로) 조선카톨릭교협회 위원장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한국 주교단은 조선카톨릭교협회 강지영 신임 위원장의 안내로 평양양로원과 평양애육원 등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했다. 특히, 주교들은 방북 셋째 날인 3일 평양 장충성당에서 70여 명의 북녘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남북 화해를 상징하는 성화를 선물했다. 이날 미사에 참여한 북녘 신자 중에는 연로한 이들도 있고, 어떤 경로로 입교했는지 알 수 없으나 젊은이들도 있었다.

 

주교들은 미사 중에 북녘 신자들이 지닌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풀어주고 하나의 신앙을 고백하는 의미로 사도신경을 함께 바쳤고, 성찬례와 영성체를 거행하면서 신자들을 격려하고 축복했다. 북녘 신자들도 시종 밝은 목소리로 함께 성가를 부르고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영성체하는 기쁨을 가졌다. 나흘간의 일정을 마친 주교단은 북한 복음화의 희망을 품고 귀국했다.

 

방북 동안 한국 주교단은 조선카톨릭교협회와 주님 부활 대축일과 주님 성탄 대축일 등 4대 축일에 서울대교구 사제가 평양 장충성당을 방문해 북녘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합의했다. 실로 큰 성과였다. 하지만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북한 복음화의 희망은 또다시 멀어져갔다.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2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박근혜 정부는 2월 10일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를 단행했다.

 

 

남북 화해의 열쇠는 끊임없는 사랑

 

북녘의 형제와 갈라진 지 75년,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며 피를 흘린 지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남북 관계는 늘 알 수 없다. 남북이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며 모든 게 끝났다 싶으면 남북 정상과 북미 정상이 만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통일이 멀지 않았다는 기대가 피어오르면 북한의 무력시위로 또다시 끝이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남북 관계가 경색돼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다. 또 지속적인 기도와 평화ㆍ화해 교육, 상호 교류를 통한 형제애 증진에 힘쓰고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19년 12월 1일 대림 제1주일부터 오는 11월 28일까지 펼치고 있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밤 9시 주모경 바치기’ 기도 운동이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무엇이 부족한가?” “북한이 바뀔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염수정 추기경은 올해 1월 1일자 가톨릭평화신문 신년 인터뷰에서 남북 평화를 위해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염 추기경은 “분단의 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된 만큼 같은 곳의 상처가 다시 찢겨 나가고 덧나며 갈등이 켜켜이 쌓여 왔다”며 “모든 문제가 한순간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우리 교회는 인내심을 갖고 사랑을 선포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고 강조했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형제를 향한 조건없는 사랑 실천을 당부한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을 배반하여 죄를 짓고 결국 고통과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당신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받은 우리가 할 일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를 닮아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께 배우고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는 바로 ‘사랑’입니다.”

 

염 추기경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끊임없는 사랑이 한국 교회가 우리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모든 희생을 치르는 동력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6월 21일, 백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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