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7성사ㅣ 준성사

[성사] 하느님을 알아 가는 기쁨: 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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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3-04 ㅣ No.294

하느님을 알아 가는 기쁨 (11) 성사


“주 예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1코린 16,23)

 

 

우리가 성사를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정의가 바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 은총의 가시적 표현”이라고 하는 문장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 보이시는데,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인간이 알아챌 수 있는 방법으로 전달하신다는 것이 그 설명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더 깊이 생각해보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은총을 내려주심에 있어서 그것을 인간이 알아챌 수 있는 방법으로 전하신다는 것은 한없는 자비이며, 복된 기회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곁을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짐으로써 하느님의 은총 속에 머무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충분히 느끼고 깨달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하느님의 구원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나자렛 생활과 공생활 동안 그분의 말씀과 행위는 이미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가 지닌 능력을 미리 보여 주었으며,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때 교회에게 주어질 것을 예고하고 준비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생애가 드러내는 신비들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의 봉사자들을 통하여 성사 안에서 나누어 주시는 것의 기초가 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115항)

 

예수님께서는 참 하느님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으며 또한 참 인간으로서 인간다움의 모든 일들을 온전히 겪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보여주신 말씀과 행적이야 말로 오늘날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성사들의 표본이자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온전히 세상에 드러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성사의 근원이신 원성사(元聖事, Original sacrament)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베푸는 성사들을 통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신 바로 그 예수님께서 교회의 성사들을 통해 오늘도 우리와 함께 머물고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과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신 그 마음 그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함께 머물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교회의 성사들에 참여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은 큰 감사와 사랑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2018년 12월 16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왕태언 요셉 신부(백석동 협력 사목)]

 

 

하느님을 알아 가는 기쁨 (12) 교회의 성사들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1코린 2,7)

 

 

“성사(聖事)”라는 말은 성경에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톨릭교회는 성사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가르치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연 “성사(Sacramentum)”라는 말은 어디에서 비롯된 말이며, 그 중요성과 가치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성사”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는 말은 그리스어로 ‘뮈스테리온(μυστήριον)’ 즉, ‘신비’를 일컫는 단어가 2~3세기 고대 라틴어 번역 성경에서 ‘Sacramentum’이라는 단어로 번역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본래 ‘신비’를 일컫는 ‘μυστήριον’이라는 단어는 공관복음을 통틀어 세 번 사용되었습니다.(마르 4,11 : 마태 13,11 : 루카 8,10)

 

그리고 이 ‘신비’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심오하고 감추어져 있던 지혜”(1코린 2,7)를 의미하며 바로 그 지혜가 “십자가에 처형되신 그리스도”(1코린 1,23)를 통해서 실현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신비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참조: 한국가톨릭대사전 7권 “성사”)

 

따라서, 가톨릭교회의 성사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실현하시고 교회에 맡기신 하느님 사랑의 신비이며, 구원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 따라 가톨릭교회는 일곱 가지의 성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성사의 개수는 12세기 전까지 30개 정도 되었는데, 12세기에 들어 성사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리의 필요성이 부각되었고 이에 ‘생 빅토르 후고’라는 신학자의 설명에 따라 가시적인 표징, 그리스도에 의한 제정, 은총의 포함이라는 세 가지 필수요소에 부합하는 일곱 가지로 고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사의 갯수가 일곱 가지로 정리되었다고 해서 일생에 단 일곱 번만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곁에 머무르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성사로부터 시작해서 병자성사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일곱 가지 성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우리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순간에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고 있으며, 바로 이 성사들을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신앙의 여정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일곱 성사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중요한 모든 단계와 시기에 관계됩니다. 성사들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을 탄생시키고 성장시키며, 치유하고 사명을 부여합니다. 이 점에서 자연적인 삶의 단계들과 영적인 삶의 단계들은 어느 정도 유사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10항)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사들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사랑 안에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2018년 12월 23일 대림 제4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왕태언 요셉 신부(백석동 협력 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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