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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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콜베 성인과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 성 프란치스코 수녀회: 콜베 성인과 창립자 미로하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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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1-07 ㅣ No.615

[콜베 성인의 벗들] 콜베 성인과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 성 프란치스코 수녀회


콜베 성인과 창립자 미로하나 신부님

 

 

월간 「성모기사」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은 후 고민이 많았다. 특별한 글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잘 쓸 수 있을지 두려웠고, 그럴 만한 자격이 되는지도 의문이었다. 여전히 걱정이 앞서지만, 원죄 없으신 성모님과 콜베 성인과 창립자이신 미로하나 신부님이 도와주실 거라고 믿으며 용기를 내 본다.

 

 

성모기사회 100주년을 돌이켜 보며

 

2017년 10월은 성모기사회가 창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제 또 새해를 맞이했으니 성모기사회도 102살이 되는 셈이다. 성모기사회 창립 100주년! 왠지 모를 감동으로 마음이 뭉클해진다. 한 세기를 이어 내려온 성모기사회의 영성은 분명 하느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활동해 온 성모기사회의 역할을 되짚어 보는 한편, 교회 안에서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성모기사회원들의 사명감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재정립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더욱이 갈수록 진화하는 미디어의 발달로 인간의 지적 능력에 다양한 형태로 시시각각 영향을 주고 있는 시대임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자칫 영적으로 무방비한 상태에 놓인다면 언제든 그리스도의 삶에서 멀어지는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심지어 우리는 때로 커다란 신앙적 오류를 범하거나 헤어 나오지 못할 불행한 사실을 접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모기사회원이자 그 영성을 토대로 살아가는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 성 프란치스코 수녀회(통상적으로는 ‘성모의 기사 수녀회’로 불린다)의 일원으로서의 개인적 삶을 반추함과 동시에, 성모기사회원들과 함께 수도회의 영성을 나누고 협력자로서의 도움 또한 청해보고자 한다.

 

 

스승과 제자

 

콜베 성인과 수녀회의 창립자이신 미로하나 신부님의 관계를 한마디로 정립하면 사부(師父)와 제자의 관계이다. 미로하나 신부님은 성인의 애제자였고, 신부님 또한 평소 콜베 성인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콜베 성인에 대한 흠모가 얼마나 컸던지, 미로하나 신부님은 가족이자 사제인 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국을 떠나 성인과 함께 낯선 땅인 일본의 선교 활동에 망설임 없이 참여하셨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미로하나 신부님은 평소 존경하던 콜베 성인을 무작정 쫓아가고 싶으셨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참 순수한 모습이다. 한편으로는 문득 이런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언뜻 보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신앙이나 지적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뛰어난 사람들로 넘쳐나는 오늘날 한 사람이나 형제자매에 대해 진정한 존경을 표하는 이러한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까? 아무튼 콜베 성인의 자서전에서도 보면, 1930년 성인과 함께 일본 선교 여정에 오른 신학생이 둘 있었는데 그중 한 분이 바로 수녀회의 창립자이신 미로하나 신부님이다.

 

미에치슬라오 마리아 미로하나 신부님(Mieczyslaw M. Mirocha, 1908~1989)은 생전에 수녀님들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우리 수도회는 내가 창립한 것이 아닙니다.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이 창설하신 것입니다. 나는 단지 콜베 성인의 뜻을 받들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콜베 성인께서는 철저한 프란치스칸이기도 했지만 성모님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크고 확고하셨기에, 평소 특별히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회(M.I.)’ 정신으로 봉헌된 수도회를 창립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 안에서의 성모신심과 폴란드 국민의 깊은 성모신심을 생각한다면, 콜베 성인과 미로하나 신부님의 성모님 사랑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당시 성모님을 열애하는 콜베 성인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동료 수사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선교지에서 콜베 성인의 사도직을 돕는 가운데 미로하나 신부님은 1935년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의 회원으로서 사제품을 받으신 후, 1936년 콜베 성인이 폴란드로 돌아가자 그 뒤를 이어 소신학교 교장, 수도원 원장, 수련장 등을 역임하면서 일본의 수도회 회원을 양성하는 데 주력하셨다.

 

 

신부님의 유언

 

창립자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콜베 성인으로 연결된다. 성모의 기사 수녀회의 창립자이지만 단 한 번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신 적이 없었다. 늘 콜베 성인이 창립자라고 말씀하셨다. 신부님의 그러한 단순함과 겸손의 미덕을 본받으면서, 회원들은 콜베 성인을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 성 프란치스코 수녀회의 영적 창립자로 받들며 그 영성으로 봉헌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기서 나는 어느 원로 수녀님의 말이 떠오른다. 창립자 신부님은 인간적인 단점도 지니셨지만 매우 단순하고 영적으로 맑으셨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동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아쉽게도 미로하나 신부님을 직접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수녀님들이 기억하는 신부님의 행적들을 통해 지극히 프란치스칸적이며 사부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성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1989년에 귀천하신 신부님의 세 가지 유언을 통해서도 헤아릴 수 있다. 수도회 회원들이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 정신으로 완전하게 봉헌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셨는지 말이다.

 

“성인이 되시오.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의 정신으로 살아가시오.

나는 천국에서 모든 자매들을 도와주겠소.”

 

성인이 되는 길, 콜베 성인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길. 이 모든 것이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 대한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봉헌의 길임을 알기에, 오늘도 수도회 회원들을 위해 성모님과 콜베 성인 곁에서 항상 전구해 주고 계실 신부님을 상상하며 힘을 얻는다.

 

[성모기사, 2019년 1월호, 오정순 비비안나(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 성 프란치스코 수녀회 수녀, 해외 선교 사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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